2020년 12월 27일
이제는 보편적 상식이 되었지만 자크 라캉은 전체 아님(not-all)을 이야기하며, 현실을 봉합하고자 하는 환상을 가로지르는 외상으로서의 실재를 항상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결핍 혹은 과도한 잉여로 나타나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결합에 새겨진 불일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체로 환원할 수 없는 부분, A와 B가 결코 A=B로 환원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차이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제나 낙후된 것으로 고통스러운 것으로 나타나는 현실은 우리 앞에 존재하며 내 증상의 핵심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남루함으로 인해 현실 정치의 A와 B의 차이는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수렴되고 부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남는 것은 현실의 남루함에 대한 혐오와 전체 부정(all-not)의 시선이 아닌가.
우연히 한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현실의 당파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현실 인식이란 고도의 추상화를 동반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보수적 무책임과 현실의 딜레마에 대한 회피로 귀결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 정치란 결국 주어진 조건 안에서의 선택이고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딜레마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현실 정치가 괴물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맞지만 동시에 괴물과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면 그 괴물을 손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 분연히 일어서 내가 먼저 괴물이 되겠다고 미움받을 용기도 없으면서 당신들의 정치가 틀렸다고 무조건 비난을 할 수 있을까? 역사가 가르쳐주듯 현실은 급격히 변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역사적 과정이 보여주듯이 A와 B 사이 차이만큼 우리는 나아가고 쇠락한다. 비록 그 차이가 무의미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의 차이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작은 한 걸음을 위해 지금의 현실과 싸울 수 있고 현재를 긍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