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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an 07. 2021

사랑의 기억과 아이러니

2021년 1월 6일

그 겨울의 일요일들     


-로버트 헤이든 ( Robert Hayden)     


아버지는 일요일에도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 옷을 입고

날마다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갈라져 쑤시는 손으로

재 속에서 불씨를 찾아 살려 놓았다

하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잠에서 깨면 추위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이 따뜻해진 뒤에야 아버지는 우리를 부르셨고

그제야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주어 입고

오랜 시간 쌓인 집안의 분노가 두려워    

 

아버지에게 건성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추위를 녹여 주고 내 신발까지

닦아 놓은 아버지에게 말이다

내가 그때 어찌, 어찌 알았을 것인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사명을      


: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것만 같다. 밤사이 내린 눈으로 세상이 마치 지워진 것만 같다. 바람과 싸늘한 추위 그리고 정적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추위를 뚫고 문밖으로 나서 노동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 고통은 로버트 헤이든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얼마나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사명”인가.  


   아버지는 "날마다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갈라져 쑤시는 손"으로 재 속에서 불씨를 찾아 살려놓지만 “하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누구나 철없던 시절, 아버지의 고통과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시간을 넘어서 과거의 한 순간을 회상하는 화자는 비로소 그것이 "내가 그때 어찌, 어찌 알았을 것인가/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사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가장의 책임, 가족들을 위한 말 없는 사랑과 희생 전체가 내포되어 있는 구절이다.  


  난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사랑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그것이 실패하고 난 이후에야 그 의미가 도래하기 마련이다. 모든 불씨를 태우고 나서야 순정한 것으로 찾아오는 것, 사랑은 끝난 이후에야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사랑의 운명에 관해서라면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가 하나의 예증이다. 주인공 이츠키가 동명이인이었던 남자 이츠키 그림엽서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받고나서야 둘의 사랑은 순정한 사랑으로 도래한다.


언제나 사랑은 떠난 이후에 찾아오는 엽서 같은 것, 도달할 수 없기에 그것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프루스트의 순간처럼 영원한 경험으로 가슴의 두근거림과 함께 묻어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도래하는 순간 나는 아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이것이 사랑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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