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철학자 두 사람 중 한 명은 안경을 깎으며 <에티카>라는 책을 썼고, 다른 한 명은 친구 엥겔스의 등골을 빼먹으며 <자본론>을 썼다.
또한 근대 시기 이태준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토끼를 키웠고, 현진건은 형이 감옥에 갇히자 닭과 돼지를 기르며 1930년대를 버텼다.
모던보이 박태원은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다가 경성의 도시를 전전했고, 박봉의 기자 채만식은 가난 때문에 다리 밑에 집을 짓고 돈을 벌고자 쉬지 않고 글을 썼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나 문학가들은 대부분 삶이 불우하다. 생활과 예술은 불일치하고 생은 불안의 연속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을 지탱했던 것은 글쓰기 그 자체였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것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무의미한가.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삶이다. 그럼에도 배를 밀듯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살면서 성공이란 것을 바란 적이 없다. 그저 마지막까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이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마저 이기적인 것이라면 나중에 언젠가 죽어서 속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