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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n 27. 2021

삶의 중력과 힘의 의지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2000)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은 한 마리 폐계(廢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동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인생의 알레고리를 우화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게 되어 양계장에서 버려진 폐계(廢鷄) 잎싹이 닭 무덤 속에서 살아남아 새끼오리의 어미가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잎싹은 양계장의 마당을 벗어나 들판의 위협을 견디며 자신의 새끼가 아닌 오리를 지극 정성으로 키워내고 겨울철 굶주린 어미 족제비의 먹이로 자신을 내어주면서 끝난다.


  잎싹이 폐계로 버려지기 전에 살아가던 양계장은 알을 얻기 위해서 닭을 키우는 규칙화되고 획일화된 공간으로 그려진다. 오로지 닭에게 산란을 유도해 ‘알’이라는 성과만을 요구하는 곳으로 정해진 존재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잎싹은 폐계가 되어 가차 없이 양계장에서 버려진다. 버려진 암탉들의 무덤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들판을 유목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잎싹은 자신이 바라던 자유를 얻지만 대신 족제비라는 대상의 위협을 죽을 때까지 견뎌내야 하는 불안의 삶이다.      


  이 작품에서 양계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사회의 환유이고, 들판이란 일상의 사회적 삶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도주로(逃走路)를 의미한다. 그러나 들판은 현실과 분리된 초월의 공간이거나 이상(理想)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규칙화된 공간에 정주(定住)하는 삶과 대비되는 유목(遊牧)적 삶의 공간이다. 들판은 잎싹이 족제비에게 쫓기며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해야만 하는 수동적 공간이며, 존재자에게 자기 존재의 변화를 요구하는 힘이 작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예컨대 처음 잎싹은 양계장에서 버려진 폐계이었지만 곧 갈대밭에서 알을 품은 암탉으로 변신하고 다시 한 마리 새끼오리의 어미가 되어 양계장 오리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존경받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겨울철 자신의 새끼들을 길러내기 위해 사냥하던 어미 족제비에게 늙은 자신의 육신을 내어줌으로써 잎싹은 닭이라는 존재의 틀을 벗고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른다. 즉 잎싹은 죽음의 단계를 통과해 완전한 자유의 완성에 도달한다.        


  이러한 잎싹의 모습은 철학자 니체가 말했던 초인(超人)의 개념을 연상시킨다. 초인이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세계를 대면하고 현실에 절망하기보다 기성의 자신을 초극해가려는 의지를 지닌 자를 의미한다. 니체의 초인 개념에는 어떻게 눈앞에 펼쳐진 삶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을 지속해나갈 것인가. 다시 말해 삶의 심연에 뿌리내린 허무를 깨달았음에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삶의 긍정을 지켜낼 것이라는 물음이 깔려있다. 니체는 비극적 세계 인식에도 불구하고 생의 절망에 침잠하기보다 자기 삶의 고통마저 수용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긍정을 말한다.    

    

  이처럼 이 작품이 지니는 아름다움은 마당을 나온 한 마리 암탉의 고난과 죽음을 상실의 경험이 아니라 한 존재자가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에 있다. 잎싹의 죽음은 생명의 상실이 아니다. 바로 그가 바랐던 자유로운 삶의 완성이자 존재의 성숙을 의미한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잎싹은 끊임없이 죽음과 삶의 불안을 회피하지 않았고 자신을 배제하고 모욕하는 사회와 투쟁하였다. 그리고 끝내 자신을 떠나가는 새끼 초록머리를 바라보다가 굶주린 족제비에게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잎싹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겨울철 굶주린 족제비에게 늙은 육신을 내어주는 숭고한 자기희생으로 그려진다.      


  잎싹이 겨울철 먹이가 없어 굶주리고 있는 족제비에게 자신을 잡아먹으라고 속으로 말을 되뇔 때, 드디어 그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마지막 생의 미련을 끊어낸다. 초록머리가 천둥오리 무리와 함께 잎싹의 곁을 떠나면서 더는 삶을 지속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잎싹은 죽음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꿈을 이룬다. 바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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