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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Sep 25. 2021

떠도는 자들의 가장자리

-이금이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 (2020)

  이금이 작가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이민한 조선 여성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다. 가난하고 못 배운 것이 한(恨)이 된 버들과 남편이 요절해 과부가 된 홍주 그리고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송화가 사진결혼을 통해 하와이로 이민을 가면서 겪게 되는 수난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사진결혼이란 1908년 이후 하와이에서 있었던 사진신부 제도를 말한다. 신랑신부가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을 교환하고 서로 결혼할 것을 합의하면 신랑 측이 여비를 보내와 하와이로 신부가 이민을 가는 형태의 결혼이다.  


  소설에 따르면 신부가 중매쟁이가 보여준 사진 속의 신랑 얼굴만 보고 하와이로 건너갔다가 사진 속의 인물과 전혀 다른 육십 노인을 남편으로 맞이해야 하는 사기 결혼도 많았던 것 같다. 이 작품에서 홍주나 송화의 처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럼에도 신랑이 조선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준 돈 때문에 도망도 가지 못하고 같이 살기를 택하는 홍주와 송화를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당시에 있었다는 사실이 비극적일 뿐이다.


  조선이란 곳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버들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가난을 물려줄 뿐이고, 홍주는 과부라는 이유로 평생 혼자 살 것을 강요받는다. 또한 송화는 비천한 무당이라는 사실 때문에 돌팔매질을 당한다. 조선은 이 세 여성에게 무엇도 제대로 준 것이 없다. 이곳을 떠나면 저들의 삶이 달라질까? 하와이에서의 새로운 삶은 축복이 될까? 여지없이 부푼 꿈을 안고 떠난 세 여성들의 마주한 현실은 사기결혼으로 인한 늙은 신랑과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가난 그리고 언어적 단절로 인한 고립감이다.    


  소설에서 대부분의 한인들은 지주의 토지를 빌려 소작을 짓거나 아니면 세탁소와 임대업 그리고 식당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알고 보면 한인들은 미국령인 하와이에서 최하층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이 조선에서의 삶과 달리 극적으로 좋아질리 없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암담하다. 덕분에 하와이 이민자 1세대가 형성하고 있는 한인공동체 사회는 나름의 끈끈한 연대감을 지니고 있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함께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끼리의 동료애인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조선에서의 삶이 준 가난과 비참 때문에 하와이로 이민을 온 조선인들이 여전히 조선의 해방을 기대하고 그를 위해 분투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달아도 조선은 이민자들에게 무엇도 해준 바 없고, 여성들의 경우 가족들에 의해 하와이로 팔려버린 것과 다름이 없지 않는가. 그들이 그럼에도 조선의 독립을 열망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줄기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은 그럼에도 그곳에 나의 부모와 형제와 자식들이 머물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애달프게 다가온 것은 버들의 남편 태완이 독립운동을 위해 가족을 남겨두고 중국으로 건너갈 때이다. 아내와 자식을 두고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태완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그가 떠난 이후에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그렇다고 남편이 남겨둔 재산이라도 있어야 궁핍한 삶을 이겨내며 살아갈 것이 아닌가. 갑작스럽게 남편 태완이 중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혼자서 자기 삶을 지켜내고 자식들을 길러내는 버들의 모습은 어떠한 독립운동의 서사보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지금까지 우리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죽어간 독립 운동가들의 생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그들이 떠나고 난 이후 홀로 남겨진 자들의 삶이란 얼마나 막막한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십 년 동안 연락도 없던 남편을 기다리며 삶을 이끌어가는 한 여성의 모습이란 얼마나 치열하고 숭고한가.


  이 작품의 다른 매력은 한인 1세대 이민자의 삶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제공해준다는 점과 하와이 한인 이민자 사회에 끼쳤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와이 한인 사회에 있었던 독립 운동의 열기와 이승만과 박용만 사이의 파벌 다툼으로 분열된 한인 사회의 모습은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라서 흥미로웠다. 교육과 외교를 통해 조선의 독립을 이루어내어야 한다는 이승만 세력과 항일무력단체를 만들어 직접 일본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박용만 세력 사이의 파벌 다툼이 한인 이주민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중립적인 버들의 시선을 통해 잘 전달되고 있다.


  또한 소설은 결말부에 이르러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버들의 아들 정호가 군대에 자원입대하는 장면은 참 많은 것을 상징한다. 한인 1세대 이민자들이 자신의 조국인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전쟁을 치렀다면, 한인 2세대 이민자들의 경우 미국의 시민권자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과 전쟁을 치르는 것은 같지만 그 이유와 양상은 달라진 것이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될 것에 대한 암시와 함께 한인 2세대 이민자의 삶도 결코 녹록지 않을 것임을 독자는 알아차리게 된다.


  이 소설은 한인 1세대 이민자인 버들, 홍주, 송화라는 세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자신들의 기구한 인생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버들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약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절망하지 않은 내면의 힘이 가진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버들의 앞에 펼쳐진 문제들을 완전히 봉합하지 않는다. 정호의 군 입대가 보여주는 것처럼 여전히 이민자들의 삶은 변화하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모든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버들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아픔과 삶 속에서 사건을 마주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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