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우일 Aug 22. 2022

액션과 곡예

-정병길 감독의 영화 <카터> (2022)

  연출은 곧 스타일이다. 같은 소재와 내용이라고 해도 어떤 감독이 연출을 맡느냐에 따라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들을 떠올리면 그의 영화가 가진 연출 스타일이 짐작되는 것처럼 감독들에게 스타일이라는 것은 관객들에게 자신만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보면 영화 <카터>는 정병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작 <악녀> (2017)에서도 그랬지만 정병길의 연출 스타일은 내러티브가 주는 드라마적 요소보다 액션의 움직임과 그것들의 합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이미지의 아름다움에 공을 들인다. 영화 <악녀>에서 배우 김옥빈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총을 들고 의자를 버팀목 삼아 총구를 적에게 겨누는 장면은 완벽한 카메라의 각도와 화면의 비율로 조형되는 시각적인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정병길 감독은 영화 <악녀>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그대로 신작 <카터>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악녀>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려보자. 어떠한 설명도 없이 여주인공 숙희가 어떤 범죄 조직에 침투해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FPS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연출과 카메라 무빙을 통해 관객들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끝없을 것 같은 학살이 끝나면 왜 그녀가 범죄조직에 침투해 학살을 벌였는지가 이유가 설명되고 자신을 배신한 킬러 조직의 보스이자 남편인 중상과 대결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영화 <악녀>의 내러티브는 액션을 위한 최소한의 보조 장치로 활용된다. 그로 인해 내러티브의 개연성이 떨어지게 되고 관객들에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액션들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정병길 감독의 연출스타일은 시나리오의 내러티브가 주는 이야기의 매력보다 카메라의 역동적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합의 아름다움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 미학이라고 관객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영화 <악녀>에서 보여준 액션의 역동적 이미지의 참신성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 영화 <카터>의 경우는 어떤가. 어떤 모텔에 카터를 살해하려는 인물들이 모여들고 기억을 상실한 카터는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의지해 적들을 학살해 나간다. 갱스터들이 모인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카터가 낫을 하나 들고 적들의 목을 베고 눈을 찌르며 섬멸해가는 모습은 GTA와 같은 게임 속의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미 전작 영화 <악녀>에서도 그랬듯 정병길 감독은 자신의 연출이 지닌 장기를 관객들에게 펼쳐보여주고 카터가 수행한 학살이 임무 수행을 위한 것이었다는 최소한의 설명을 덧붙인다.


  문제는 영화 <카터>도 전작 <악녀>에서 보여주었던 결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연성을 찾기 힘든 내러티브의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감각적인 카메라의 무빙이 영화를 보는 동안 서서히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의 연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해야 할 서스펜스가 부족해진 데에 원인이 있다. 내러티브가 그저 액션을 위한 보조 장치로 떨어진 상태에서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는 액션이 어떠한 재미를 줄 수 있을까. 짧은 호흡의 공연이라면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지만 이미 계속해 반복되는 액션에 불과하다면 관객은 그 안에서 어떠한 즐거움을 찾아야할지 난감해진다.


  예컨대 이정범 감독의 영화 <아저씨> (2010) 관객들의 마음을 설득할  있었던 것은 단지 태식이 보여주는 화려한 액션 때문이 아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남은 인생을 포기하고 은둔자로 살아온 태식이 자신의 규칙을 깨고 소미를 구할 것인지  것인지 극적 선택을 한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식이 갱스터들에게 납치된 소미를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을 관객이 공유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요한 극적 특성  하나가 바로 사건을 전진시키는 위기이다.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액션도 곡예에 불과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故) 강수연을 추모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