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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Oct 25. 2022

사랑의 발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

  때로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일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게 하고는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눈앞에 놓인 사과의 전체상을 한꺼번에 바라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자신의 시각적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철학자 존 버거는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뇌가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이고 무의식적인 작용의 소산이다.


  이런 점에서 카메라의 발명은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 장치는 나와 타자가 바라보는 대상과 관점을 물질화시켜주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우리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분절하고, 사진을 통해 기억을 불러오거나 생산하도록 도와주고, 인간의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주고는 한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기에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저장하지만, 카메라는 그 기억들이 담아내지 못한 것을 포착하고 보관한다.


  인간의 경험 안에는 비자발적 기억이 환기되는 순간들이 있다. 예컨대 소설가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으며 콩브레를 떠올리는 것처럼, 혹은 어느 시인이 양파 냄새를 맡으며 가난한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던 어머니의 손에서 나던 냄새를 떠올리는 경험과 같은 것들이다. 카메라의 힘도 이와 유사하다. 한때 무심코 찍어두었던 사진 속에서 내 지나온 과거가 환기될 때 고정된 현재의 견고한 세계를 무너뜨리는 강도 높은 정서적 체험을 하게 된다. 나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힘들이 쌓여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잠재적 힘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유명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에서 주인공 료타는 한 병원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료타는 병원 측의 실수로 케이타와 자신의 친아들이 바뀌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가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된 료타는 케이타를 원래 친부모에게 데려다주고, 다른 가정에서 자라고 있던 자신의 친아들 류세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자신만의 가치 규범을 강조하며 살아온 료타는 이전 가정에서 자유롭고 사랑받으며 자랐던 류세이와 갈등하게 되고, 뒤바꾼 아이를 키우며 애를 먹는다. 그 사이 료타는 케이타가 집을 떠나기 전 찍었던 카메라 속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한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료타의 극적 변화의 순간을 언어가 아닌 부모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케이타의 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사진들이 하나씩 무심하게 슬라이드로 스쳐 지나갈 때마다 사진과 사진 사이의 비어있는 행간에는 무수한 복잡한 정서적 얽힘이 발생한다. 그렇게 료타를 바라보는 케이타의 시선과 료타의 시선이 일치하는 순간 드디어 변화는 시작된다.


  케이타를 사실상 내면에서 지워버리고 살아가던 료타가 무심코 살펴본 카메라의 사진들 속에서 버려진 아들이 남겨둔 사랑의 기호를 발견하는 순간 자신이 부정하고자 했던 케이타와의 시간들이 다시 반복되어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반복의 시간, 부정하고 비워낼 수 없는 영원의 순간들에 대한 발견은 료타에게 자기 삶에 대한 기적 같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준다.


  영화 라스트씬에서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료타와 케이타가 거리를 둔 채 함께 걷는 장면은 아버지와 아들의 닿을 수 없는 거리처럼 보이지만, 결국 둘은 그 어색함의 시간 끝에 하나의 소실점에서 만난다. 거리를 두고 앞만 보고 걷던 부자가 서로의 내면이 맞닿는 순간 둘 사이에는 화해가 이루어진다. 어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하나의 소실점에서 화해하고 만날 수밖에 없는 관계임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생각과 같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마지막에 봉합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를 기꺼이 즐겁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버지 료타의 마음을 끝까지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케이타의 사랑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역전되어 있다. 아들을 부정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부정을 사랑의 태도로 수용하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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