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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Oct 25. 2022

현재와 미래의 충돌   

- 박희곤 감독의 영화 <명당> (2018)

  풍수지리사상은 삼국시대에 들어와 신라말 도선 대사에 의해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하는 전통 촌락이 취하고 있는 구조는 풍수지리사상에 토대한다. 풍수지리는 땅의 기운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결정된다는 환경결정론적 사고에 기초한다. 실제 근대 이전까지 자연환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활과 운명에 있어서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화 혹은 극복의 대상이었다.


  상식적으로 축축한 땅보다는 볕이 잘 들고 기름진 땅에 씨를 뿌릴 때 많은 수확량과 삶의 윤택함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분명 땅의 형세와 방위 그리고 환경적 요인을 철저히 따지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일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서 풍수지리사상이 조상숭배사상과 만나면서 묘택풍수로 변모한다. 풍수지리적 지식이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의 풍요와 안정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묘지로 쓸 땅을 선정해 후손들의 길흉화복을 점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풍수지리는 인간의 욕망을 위한 도구적 지식으로 떨어진 것이다.


  영화 <명당>은 풍수지리가 조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흥미로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실제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할 때 풍수지리에 따라서 도읍을 정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조선의 마지막 운명이 다시 풍수지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상상은 매력적이다. 적어도 영화에서 풍수지리의 힘은 단순한 길흉화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영향력을 지니는 것으로 나타난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풍수지리를 매개로 전개되고, 조선말 혼란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꿈과 이상을 품은 박재상과 흥선의 갈등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극적 선택으로 귀결된다.


  영화는 장동 김씨 가문의 세도정치의 권력이 풍수에서 나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은 왕의 묘지에 몰래 자기 조상들의 채백을 이장해 묻고 이 사실을 감춘다. 그로 인해 왕을 능가하는 권세를 얻는 장동 김씨 가문은 이제 풍수지리에 힘입어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을 품는다. 하지만 새로운 왕을 만든다는 명당을 찾을 수 없는 장동 김씨 가문은 명당을 찾기 전까지 자신들의 비밀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장동 김씨 가문에 밉보여 처와 자식을 잃었던 박재상은 복수를 위해 철종을 뒤에서 보좌하던 흥선과의기투합해 장동 김씨 가문의 비밀을 밝혀내고 왕에게 밀고한다.


  문제는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장동 김씨 가문을 역모죄로 처단하기 위해 의금부의 군사들과 쳐들어가지만, 정작 왕은 자신이 실권이 하나 없는 허수아비라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한다. 역모가 확실하고 증거가 있음에도 왕마저 장동 김씨 가문을 처단할 수 없다면 박재상과 흥선이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인가? 실제 영화 <명당>이 지닌 극적 특성은 여기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영화는 실제 역사적 인물인 흥선의 선택에 초점을 모은다.


  이 작품에서 풍수지리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실질적 힘을 지니며, 장동 김씨 가문이 찾았던 이대에 걸쳐서 왕을 만들어내는 명당은 분명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제 자신이 모시던 왕이 더 이상 부패한 조선을 바로 세울 수 없다면, 자기 스스로 왕을 대신하기로 흥선은 결심한다. 문제는 흥선의 결심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서 영화 <명당>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다 관객이 납득할 수 있도록 흥선이 자신의 욕망을 구체화하고 정당화하는 극적 계기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랬어야 이 작품의 끝부분에 폭발하는 흥선의 광기를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흥선의 선택이 구체화 되지 못하자 그의 광기가 갑작스러운 개인적 욕망의 폭발로 떨어지고 만다.  


  사실 영화 <명당>에서 흥선과 박재상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흥선은 현재의 조선을 살아가는 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흥선은 장동 김씨 가문의 횡포로부터 현재의 조선 왕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왕의 탄생을 막고 있는 절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박재상은 미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한다. 장동 김씨를 중심으로 하는 세도정치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흥선의 선택으로 조선이 멸망한다면 그의 행위는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두 입장의 충돌은 흥선이 절을 태우고 그 장소에 자기 조상의 채백을 이장하는 것으로 끝난다. 과연 흥선은 조선을 멸망으로 이끌어간 간신인가, 아니면 조선을 구하고자 한 영웅인가?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이 점에서 영화 <명당>은 풍수사상을 매개로 현재와 미래의 갈등을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풀고 있다. 그런데 결국 현재와 미래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현재가 바로 미래이고 동시에 과거가 아닌가. 현재가 중요한가, 아니면 미래가 중요한가는 무의미한 논란이다. 핵심은 현재 속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하는 용기 그리고 그 미래의 결과를 대비하고 수용하는 마음가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흥선의 선택도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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