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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May 01. 2016

영화 <시간이탈자>에서 이탈된 것들에 관하여

-곽재용 감독의 <시간이탈자> (2016)

 곽재용 감독의 <시간이탈자>는 제목이 암시하듯 타입슬립(Time slip) 장르물이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뒤엉키며 미제살인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다루는 서사 구조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과 비교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탈자>가 <시그널>을 모방하고 있다기보다 타임슬립 장르가 지니고 있는 서사 구조의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이 작품은 <시그널>이 제작되기 이전에 먼저 완성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앞서의 오해는 불필요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타임슬립 장르의 작품은 미끄러지는 시간의 뒤섞임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그 완성도가 결정된다.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며 결말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의 긴장감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질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범인이 누구인가, 둘째 1983년에 죽었다가 2015에 환생한 윤정/소은을 건우가 지켜낼 수 있는가. 셋째 진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개인의 욕망이 앞섰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상의 세 가지 질문은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다.

  영화의 초반을 이끌어가는 것은 윤정(임수정 역)을 죽인 진범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지환의 연인이었던 윤정의 죽음 이후 한 고등학교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지환은 추적을 시작된다. 지환은 건우가 꿈에서 전해주는 미래의 단서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적하지만 마지막까지 정체를 파악해내지 못한다. 그런데 중반 이후 지환이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기 이전에 카메라가 텍스트에 개입해 범인의 정체를 공개한다. 그 순간 지환의 추적은 긴장의 밀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왜 그렇게 범인의 정체를 감추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반 이후 2015년 환생한 소은이 방독면을 쓴 범인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얼어나면서 국면이 전환된다. 소은은 범인에게 납치되지만 자력으로 도망치고 건우에게 구출되기 직전 도로 에서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 건우(이진욱 역)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그녀가 죽는 것을 바라보기만 한다. 이처럼 지환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건우라는 캐릭터는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는 기능적 역할로 축소되어 있어서 텍스트 내부에서 그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전은 소은을 납치한 범인이 건우의 상관 강승범 반장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과거 지환과의 인연으로 연쇄살인마를 쫓다가 아내 현주를 잃고 건우를 통해 과거를 바꾸고자 모방범죄를 일으킨다. 이 부분은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진실과 범인을 쫓던 정의로운 개인이 아내를 잃고 과거를 바꾸기 위해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는 순간 범죄자로 전락해버린다는 상황의 아이러니가 윤리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하지만 소은의 납치와 죽음 그리고 범인이 강승범 반장으로 밝혀지는 과정 자체가 엉성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영화는 윤정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사건이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가서 건우가 살아가는 2015년 현재까지 희생자를 발생시켜 암울한 미래에 도달하도록 한다. 과거의 미제사건이 우리의 지금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지속되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판타지 아닌가? 관객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거는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지환은 범인이 숨어있는 학교로 찾아가야 하고 범인과 대결하여 처단해야 했다. 덕분에 훗날 승범의 아내가 되는 어린 현주가 구출되면서 모두가 바라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정의 죽음이 범인에게 향정신성 약품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연쇄살인마의 범행 동기가 설득력 있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이유로 사람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마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학교에 남아있을 수 있었으며 사건 이후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살아왔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지면 관계상 쓰지 않았지만 영화 <시간이탈자>는 디테일과 전개에 있어서 비어있는 구멍이 많고 억지스럽다. 분명 타임슬립이라는 요소는 매력적인 서사를 만들 수도 있지만 때로 우연을 남발하는 억지가 되어 서사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작품은 보여준다.


*이 글은 <고대신문>에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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