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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l 05. 2016

나쁘거나, 더 나쁘거나

-권종간 감독의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 (2016)

  권종관 감독의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는 ‘영남제분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여기에 살을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기업 사모님의 전횡을 고발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장르 영화에서 익숙한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장르의 문법을 차용하거나 비틀어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재생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것을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고 재구성하여 관객에게 새롭게 말을 거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클리셰의 반복에 가깝다.

   최근까지 개봉했었던 영화들의 장면들이 오버랩이 되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 <베테랑>의 재벌 3세로 등장했던 조태호가 여사님으로 뒤바뀌어 있고, 배우 김영민이 연기한 필재는 그가 주연한 영화 <무방비도시>와 <조선명탐정>의 주인공들의 모습이 뒤섞였다. 여기에 부패한 검찰과 경찰이라는 설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인청부업을 손쉽게 하는 조폭들까지 등장한다. 물론 이 같은 익숙한 것들로도 충분히 관객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소비되고 무의미하게 잊혀 지겠지만.

   이 작품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차이나타운> (1974)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보인다. 필재가 어느 골목길에서 습격을 당하고 한 남자에게 위협당하다가 코가 칼로 찢겨나가는 장면은 영화 <차이나타운>을 연상시킨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사립탐정 제이크 기티스가 에블린이라는 여자에게 의뢰받은 사건의 진실을 조사하다가 살인, 사기, 근친상간 등으로 범벅이 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절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반면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는 일련의 사건 전개 과정이 조급하고, 강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사형수 권순태가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는 과정도 생략되어 있고, 여사님의 심복인 박소장의 배신도 갑작스럽다, 그리고 여사님이 자신의 며느리를 청부살해한 이유도 불명확하다. 또한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는 필재를 중심으로 사건의 배후인 여사님의 범죄 증거를 확보하여 응징하겠다는 의지로만 가득하다. 현실의 불만족을 상상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어떻게 해서든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적인 쾌감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해결 방식이 크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여사님이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녹음테이프를 확보하는 것으로 사건이 정말 해결되었다고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안일하다.

   손쉽게 살인을 지시하거나 사건을 조작하는 일을 서슴없이 해온 여사님의 말로가 너무 손쉽게 해결된 감이 있다. 더구나 여사님이 사건을 의뢰하는 해결사들은 나름 특전사 출신으로 그들을 필재가 쉽게 제압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죽을 위기 상황 속에서 필재가 탈출하는 과정도 긴장감이 떨어지고, 여사님을 배신한 박소장의 죽음이 허무하다.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던 여사님 대신에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인물임에도 작품에서 쉽게 버려졌다. 버려진 카드로는 필재의 할아버지도 있다. 전직 경찰답게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기능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다.  

   여사님은 악마를 가장한 순둥이다. 자신의 범죄를 실수로 가장해서 모두 자백하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잡힐 사람이었다면 굳이 어렵게 돌아올 필요가 있는지 싶다. 현실의 부정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는 좋지만 그 모습이 너무 단조롭다. 이것은 우리의 현재적 현실에 대한 디테일의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관객들의 정서에 무난하게 호소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긁어모아서 체로 걸러내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좋은 작품은 각각의 인물들의 고뇌가 하나씩 축적되고 얽혀지면서 필연적인 갈등 상황에 이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영화 <특별수사 : 사형수의 편지>는 사건의 진행을 위해 인물들이 기능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전형적으로 나쁜 이야기이다. 특히 여사님의 범행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히스테리에 가까운 즉흥적인 반응들로 사건이 생겨나고 그것들의 해결은 다른 사람의 몫이다. 즉 이 작품은 인간의 얼굴이 없고 기능과 구조의 조합만이 있다.

   이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정조는 부끄러움이다. 필재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들어 사건 해결에 열중한 이유가 “쪽팔려서!”라고 스스로 말했고, 사형수 권순태의 딸이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 또한 무기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이 작품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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