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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l 12. 2016

우리 다시 공감

-KBS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 (2016)

  KBS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 (2016)는 의학드라마와 스릴러의 어디쯤을 향한다. 병원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의사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의학드라마의 외향을 하고 있지만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추적한다는 점에서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한다. 여기에 주인공 이영오는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은 천재 의사로 설정되어 있으며, 작품이 다루는 소재는 바이오산업의 일부분으로서 선행되어야 하는 의료영리화이다. 이 같은 드라마 포맷을 통해 이 작품이 인간성의 회복과 의료영리화의 문제를 병렬시켜서 다루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지 무수한 의학드라마들이 제작되었고 의학드라마는 대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유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다루고, 환자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제공하며, 전문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이유들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글에서 밝히고 싶은 점은 KBS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가 기성의 의학드라마들의 방향성과 구분된다는 점이다. 첫째 사이코패스의 눈을 통해 환자가 아닌 그 주변인들의 시선을 관찰한다는 점, 둘째 인간의 분열된 내면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 셋째 의료영리화라는 사회적 문제를 고발한다는 점, 넷째 추리의 형식으로 의료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제1부 오프닝이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김명수 의원의 병원 내 연설로 시작하고 그가 내건 공약이 바이오산업을 통한 경제 대국이라는 것부터가 드라마의 주제를 암시한다.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정치경제적 쟁점인 바이오산업과 의료영리화의 관계를 다루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서비스산업기본법’이 의료영리화와 의료민영화를 위한 발판이 되고, 야당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바이오산업과 의료영리화를 주장하는 국면을 드라마는 ‘괴물’과 같은 시대로 정의한다.

   KBS 드라마 기획의도를 살펴보면, “2016년 대한민국, 지금 우리에게 필살기는? 극한 이기심으로 중무장할 것, 생존에만 관심 있고, 생명에는 무감각한 괴물 같은 시대.”라고 적어놓았다. 드라마 속의 2016년 현재는 바로 ‘괴물’의 시대이다. 이러한 공간에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이코패스 이영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을 상실한 ‘괴물’로 인식하고 자신들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는 이 같은 ‘비정상’과 ‘정상’의 통념을 역전시킨다.

   사이코패스로 알려진 이영오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모습이야 말로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 그려진다. 이영오의 세계는 완벽한 논리적이고 이성의 세계이다. 그가 의학을 좋아하는 이유도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의 일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이영오는 극도의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자신의 환자는 살린다.’라는 원칙에 충실하다. 그렇기에 그가 진료하고 살릴 수 있다고 확신한 환자가 죽는 테이블 데스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세계에 오류가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영오의 눈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세계는 비합리적이고 어떤 순간에는 추(醜)하기까지 하다. 혈우병에 걸린 딸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는 아내의 모습, 이천억 원의 돈 때문에 동료를 암살한 부원장,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다른 아이가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여의사, 남들에게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존경받은 의사이지만 아들 이영오를 괴물이라고 믿고 마음을 닫는 센터장, 십 년간 사랑했던 남자를 자신의 교수직을 위해 배신하는 여자, 남편의 병수발에 지쳐 죽어가는 남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버리는 아내 등등. 이영오라는 ‘괴물’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이야 말로 진정한 ‘괴물’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러한 대위법적 형식을 통해서 드라마 <뷰티풀마인드>는 인간성의 개념적 본질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이처럼 이영오는 공감 능력을 상실한 의사라는 개성적 인물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인간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로서 기능한다. 이영오라는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관찰하고 그 결과는 화면에 보여줌으로써 공감 능력을 상실한 것은 이영오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기 자신임을 알게 한다. 이것은 드라마가 기획의도로 밝혔듯이 바로 현실에서 없는 것, 부재하는 것으로서 ‘공감’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KBS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는 ‘공감’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의료영리화라는 현실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공감’은 드라마 속에서 살인이 불러온 의료영리화의 결과들에 대해 제작진이 제시한 해답으로 보인다. (물론 그것의 실효성에 있어서는 의심스럽다고 할지라도.) 드라마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영리화가 어떻게 의료윤리를 파괴할 수 있는지 추리의 형식을 통해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살인사건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현성병원에서 연구하는 의료진과 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료 연구와 관련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관련된 증거들이 수집될수록 그 뒤에 현성병원의 감춰진 비리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추리의 형식을 통해 밝혀진 진실은 공포이거나 추악하기 마련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우연한 현상들이 어떤 필연적 원인에 근접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추리 형식의 매력은 우연한 현상들이 필연적으로 어떤 원인에 관계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추리 형식을 통해 이영오가 마주하는 현실은 거대한 부정의 세계이고 여기에 자신이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드라마는 제2막으로 넘어간다. 제1막은 일종의 구도를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이제 어떤 은폐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으니 그것을 밝히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싸움이 될 것이다. 힘과 힘의 부딪힘. 극이란 갈등 그 자체이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는 바이오산업의 육성과 경제의 활성화가 일종의 구성된 이미지, 즉 환상임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드라마의 제6부에서 현성병원 이사장 강현준은 김명수에게 중요한 것은 재생의료 프로젝트의 성공여부가 아니라 그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고 그것이 경제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 환상을 통해 움직이는 주가의 등락이야 말로 문제의 본질이다.

   바로 각종 경제적 지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익명적 개인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바이오산업의 투자 확대로 인한 경제의 활성화가 우리 국민들 모두를 부유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환상이야 말로 우리 현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과거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우리 국민을 부유한 경제 강국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환상에 젖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환상이 가져다주는 개인의 이득에 동의하고 그 과정에서 의료윤리를 방기하고 생명 그 자체를 상품으로 다루게 된다.

   이 사실은 우리가 생명이라는 것을 존재적 차원이 아니라 이미지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자신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간교함은 이런 말을 뒤에 덧붙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니라고. 생명이 존재의 차원이 아니라 추상적 이미지로 인식될 때 우리는 부차적이고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아니한다. 타인의 고통이 언제나 우리에게 타자의 이미지로 남겨지는 것처럼 문제의 핵심에는 나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안도의 한숨을 동반한 비공감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 제시하고 있는 ‘공감’의 의미는 현실 앞에 터무니없이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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