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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Sep 02. 2016

이성의 비관과 의지의 낙관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2016)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2016)은 ‘재난’의 상상력을 흥미롭게 펼쳐 보여주는 작품이다. 재난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들은 인간의 무능력을 드러내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운명을 초월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기 마련이다. 고대 홍수 신화도 따져보면 불가항력적인 재난 상황에 대한 인간 나름대로 이해 방식이다. 우리는 재난을 신의 징벌이라는 신화적 방식으로 읽을 수 있고, 물질문명에 대한 자연의 역습으로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재난’ 그 자체가 생산하는 시각적 스펙터클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산행>의 경우 좀비 영화의 문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비에 대한 혐오나 두려움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영화는 관객들에게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윤리적 태도와 위기 상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의 무능에 관해 말한다. 작품 속에서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말하지만 무력한 대처로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키고 기차의 폐쇄된 공간에 몸을 싣고 달리는 승객들의 불신과 이기심은 그 내부를 지옥으로 전락시킨다.

  영화 중후반에 등장하는 닫힌 문은 극단적인 아노미 상태와 인간의 이기심이 잘 드러내는 상징이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타자의 희생을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인간의 모습은 좀비보다도 섬뜩하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소수의 타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지 묻게 된다. 부산행 기차를 타고 있는 승객들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만약 자기 자신이 앞서 상황에 직면한다면 그들과 다른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닫힌 문 장면이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작품의 인물들의 내면과 우리의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행>은 대체적으로 직선적인 흐름과 명료한 구성 때문에 평론가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폐쇄된 기차라는 공간은 감독의 세계관을 압축하며 내러티브의 중후반까지 휴지(休止)가 적고 전개가 빠르다. 이 점은 <부산행>이 지니는 분명한 장점이지만 동시에 같은 이유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닫아버린다. 그런데 영화는 쾌속하게 달려오다가 결말 부분에서 단 한 번 멈칫한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냉정하게 인간들의 내면을 속속 파헤치다가 결말에 이르러 갑자기 희망과 인간을 향한 긍정으로 태도를 전환한다. 이 같은 영화의 전개는 다소 갑작스럽고 어색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안전지대인 부산에 도착한 생존자 성경과 수안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 도시의 방위를 맡고 있는 군인들의 총구가 둘을 향한다. 좀비인지, 인간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국가는 군인들에게 둘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영화의 전개 과정을 고려하면  총알은 분명 발포되어야 하며 성경과 수안은 방위군에 의해 희생되어야 한다. 그랬다면 두 생존자의 허무한 죽음은 국가의 무능력을 확인 사살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극단을 피하고 대신 함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희망에 관해 말한다.

  수안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두려움과 공포를 잊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수안의 노래는 터널 밖의 방위군에게 그들이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구실을 하고 갈등은 봉합된다. 이 같은 결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화의 결말은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인가  아니면 감독의 개입이 불러온 불편한 어긋남으로 보아야 하는가. 적어도 명료한 것은 연상호 감독의 지향점은 현실의 비관이 아니라 낙관의 의지라는 점이다.

  과거 사회주의자이며 혁명가였던 안토니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가 있다. ‘현실을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서 낙관하라.’ 이성으로 판단하되 부정적인 현실을 의지로 낙관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어쩌면 이것은 이상주의자의 문장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는 사실은 비관적 현실에서 실존적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 글은 고려대 대학원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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