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희 감독의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2016)
조성희 감독의 영화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은 시대와 장소를 알 수 없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색채로 화면을 덧칠해 놓았다. 이러한 익명의 시공간이라는 설정은 감독의 전작 <늑대소년> (2012)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전작 <늑대소년>은 순수한 사랑의 환상을 구성하기 위한 공간적 장치였다면, 영화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에서는 홍길동의 은폐된 무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이 같은 공간의 연출이 호불호는 있을 수 있으나 서사와 어울려 거슬리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홍길동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익명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인공의 모호한 정체성이 잘 드러나고, 과거 무의식에 감춰진 기억의 흔적을 단서로 자신의 복수 대상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연출된 공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이러한 연출은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프랭크 밀러가 공동으로 연출한 영화 <씬 시티> (2005)의 분위기와 유사하다. 내레이션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방식이나, 가상의 도시 ‘씬 시티’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풀어가는 방법이 그렇다.
영화 <탐정 홍길동>의 내러티브는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 두 번째 복수를 완결하는 것, 세 번째 망각된 기억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다. 결국 세 질문은 “홍길동 그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세 가지 양태이다. 홍길동은 작품에서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만성적인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가 불면증을 앓게 된 이유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엄마가 김병덕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충격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광은회라는 은밀한 종교 집단이 존재하고 김병덕은 그들이 지배하는 마을로부터 자신의 딸과 탈출을 시도하다가 신도들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광은회의 처형자들은 김병덕에게 같은 시각 마을에서 탈출을 시도한 길동의 모를 총으로 쏘아 죽이지 않으면 그의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결국 김병덕은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홍길동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만다. 이 모습을 벽 사이로 몰래 지켜본 길동은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충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망각된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언젠가 억압된 기억은 다시 회귀하는 법이다. 그의 뇌리에 맴돌고 있던 김병덕이라는 단서가 지속적으로 그의 신경을 자극하고 불면이라는 증상이 되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회피하지 말고 대면하기를 요구한다. 긴 시간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우여곡절 끝에 김병덕과 마주한 길동은 용기를 내어 사건의 진실 대해 묻고 그의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후회하는 거죠? 그 여자 죽였다고. 그러니까 지금 용서를 빌고 싶다는 거잖아요.”
“아니! 다시 그때와도 똑같이 해.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내 새끼 동이 어미는 죽었을 테니까. 내 새끼 살리는 거면 열이든 스물이든 더 죽일 수 있어. 나한테 용서를 빌라니?”
홍길동과 김병덕의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홍길동은 김병덕과 어렵게 화해하기 위해 그가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최소한 죄책감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홍길동의 믿음은 김병덕의 답변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다. 자식을 위해서는 누구든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어떠한 죄책감도 찾을 수 없다. 용서를 빌라는 길동의 말에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가련한 노인에게 우리는 복수 이외에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김병덕에게 사건 당시 그가 총으로 쏘아 죽인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부탁하지만 그것마저 거부당했을 때, 홍길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영화에서 홍길동과 김병덕의 대립 이후에 펼쳐지는 내러티브의 전개는 사건에 대한 조성희 감독의 상상적인 해결이다. 홍길동이 어떠한 사람인지 정체가 밝혀졌고, 원수가 누구이고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관객들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애초에 “홍길동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고 답을 얻었으니 갈등은 해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여놓았던 사건들 다시 말하면 떡밥을 봉합하는 일이 남는다. 김병덕이 납치된 자신의 손녀들을 지키기 위해 광은회 교도들과 싸우다가 총에 맞아 죽게 됨으로써 윤리적 질문은 슬그머니 비껴나고 답변은 유보된다. 죽은 자에게 어떻게 죄를 묻고 복수하겠는가. 덕분에 홍길동은 김병덕을 향한 복수를 회피할 수 있었고 동이 및 말숙과의 우정은 지켜진다.
영화 <탐정 : 사라진 마을>은 자신이 던진 윤리적 질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기 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관객들과 타협하고 있다. 아마도 영화의 분위기를 유지하고 관객들의 심리적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관객들의 일정한 기대치 내에서 문제를 상상적으로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영화 전체를 압축하는 앞서의 대화 장면만은 인상적이다.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쉽게 배반당하는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에 죄악에 대해서 얼마나 터무니없이 무감각한지를 환기한다. 하지만 영화가 분명 자신이 던진 질문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적당한 용서의 제스처를 취하고 비껴가고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