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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Dec 04. 2016

행운의 의미

-이계벽 감독의 <럭키> (2016)

  영화 <럭키>는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져 기억을 잃어버린 킬러 형욱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해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와 주인공이 타인의 삶을 살며 자기 삶을 되돌아본다는 플롯 구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익숙한 문법은 속도감 있는 내러티브 전개와 관객이 쉽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을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영화 <럭키>는 이러한 장점을 잘 활용한다. 킬러 형욱과 무명배우 재성의 삶이 목욕탕 사건을 계기로 뒤바뀌면서 일어나는 소동들을 과하지 않게 배치하여 내러티브를 끌고나간다. 그리고 전개 과정의 안정감은 배우 유해진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 자체가 영화의 분위기를 구성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킬러의 냉혹함과 그동안 TV방송을 통해 쌓은 선한 이미지가 겹쳐져 그의 엉뚱한 행동들이 어색하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가만히 뜯어보면 작품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희극적 요소들을 잘 활용한다. 의뢰인의 청부에 따라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흥정하는 일을 하는 킬러가 기억상실을 계기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설정이 그렇다. 또한 킬러로서 지니고 있는 무술실력이나 칼을 다루는 솜씨들이 오히려 분식집에서는 일종의 예술적 재능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우리 삶의 본래적 의미와 그것을 구성하는 관계성에 눈을 돌리게 한다.

  영화에서 형욱은 무명배우의 삶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적 비전에 자신의 현재를 기투하며 세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견해간다. 그 의미는 특별히 거대하거나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변화들로 구현된다. 작은 분식집에서 키우는 연인과의 사랑이나 가난하지만 현재를 인고하며 살아가는 삶이 의미론적 가치가 있는 사건으로 출현한다. 어쩌면 도구적이고 기계적인 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연속을 삶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욱을 대신해왔던 킬러라는 직업(?)이 그의 본래적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기억상실증을 앓지 않고 다른 관계들을 구성해나가며 자기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도 타성적인 삶의 고착을 필연적인 것이라 여기며 도구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형욱이 기억을 잃고 깨닫는 것은 ‘나’라는 존재자가 결국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 속에서 생성된다는 점이다. 실의에 빠져 비관하며 자기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재성을 찾아와 형욱이 화를 내며 아들이 훗날 배우로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라고 충고할 때 잘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위로의 말이지만 형욱이 재성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다독임이기도 하다. 영화의 타이틀이 ‘럭키’인 이유도 형욱과 재성이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재발견하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책임을 지기로 했다는 사실에서 왔으리라 짐작한다. 

  끝으로 영화 <럭키>에서 기억을 되찾은 형욱의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살펴볼 것이 있다. 형욱이 의뢰자의 눈을 속여 타켓의 목숨을 구하는 킬러라는 설정은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설득되기 어렵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관객이 형욱에게 심리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그의 과거를 묻어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일종의 의도된 균열이다. 형욱이 우리가 우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이었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한 순간에 코미디에서 윤리적 비극의 드라마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몰랐던 사건의 의미를 현재의 순간에 깨닫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사후적 고통 속에 놓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럭키>는 자신의 장르적 정체성을 흔들지 않고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한다. 그 이유는 형욱이 영화 속에서 구현한 삶의 비전이 헛되이 사라지는 것을 감독과 관객 누구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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