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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ul 03. 2018

믿음이란 환상

-이해영 감독의 <독전> (2018)

  이해영 감독의 <독전>은 독한 자들의 전쟁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인간 믿음의 속성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을 운영하는 이선생을 쫓는 원호의 시점으로 영화는 전개되며 베일에 감춰진 락의 정체는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형성시킨다. 이 작품은 초반부터 원호가 과연 락의 말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는가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락이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원호는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실행하기 때문에 애초에 원호는 락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말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강렬하게 등장하는 매력적인 악당들은 관객의 시선을 훔치기 위한 일종의 덫이다. 그들의 존재는 이선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관객들의 시선을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영화의 초중반을 지배하는 진하림이라는 중국 마약상이 광기에 휩싸인 인물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진하림 덕분에 원호와 락의 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놓이며 그렇게 영화는 이선생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까지 긴장을 유지한다.

  그 후에 등장한 브라이언의 존재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드디어 원호와 락은 정체를 알고 싶어 했던 이선생을 만나게 된다. 원호를 대면한 브라이언은 자신이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을 움직이는 이선생이라고 밝히지만 원호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적을 쫓다보니 그를 이해하게 된 원호가 보기에 브라이언은 이선생의 면모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브라이언은 이선생을 모방하는 악당으로 밝혀지고 이 지점에서 부터 영화는 관객들에게 게임을 걸어온다.         

  표면적으로 반전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은 브라이언이 계획한 오프닝 씬의 폭발 사고로 자신의 친구와 가족을 잃은 락의 복수였다는 점이다. 마치 영화는 락의 입을 빌어서 그가 원호가 찾아다니던 이선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락은 이전에도 자신을 이선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처단하였고 자신을 모방한 브라이언을 본색을 드러내며 비웃는다. 그런데 과연 락이 우리가 찾던 이선생인가?

  우선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이 생긴다. 브라이언이 이선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린 원호가 락을 곁에 두고도 정체도 몰랐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락은 영화 속에 자신의 입으로 자기가 이선생이라고 밝힌 바 없다. 오히려 락을 이선생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카메라이다. 우리는 이선생이라는 발신자 번호가 적힌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락의 목소리를 통해 그가 이선생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두 번째 만약 락이 이선생이라면 굳이 마지막 씬이 필요해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외국 마을에 정착한 락을 원호가 찾아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원호는 락을 마주하고도 그가 이선생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불안한 눈으로 창을 바라보다가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물으며 총성이 울리지만 둘의 운명에 대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원호가 마지막까지 이선생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선생은 물질적으로 현존하는 인간이 아니라 구조와 기능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왕의 권력은 그의 존귀함 때문에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구조화된 네트워크의 효과라는 사실과 같다.

  이선생은 범죄 조직을 뒤에서 움직이는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와 기능들을 연결하는 공백이다. 그 공백은 누구나 대신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한 개인이 독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락이 이선생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이 이선생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등장이 가능하다. 이선생의 존재가 현실을 구조화하는 미끄러지는 기표로서 유동하는 네트워크의 효과라는 점은 원호의 믿음이 관념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임을 드러낸다.

  락이 처단한 수많은 악당들이 자신의 환상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이선생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원호도 허망한 믿음을 환상 속에서 지탱할 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원호와 락의 죽음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대면하지 않고 환상 속에서 거짓된 믿음(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던)을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내면을 겨냥한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삶이란 현실과 환상이 주름처럼 겹쳐있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고 믿음이 결코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은 우리를 방황으로 안내한다. 하지만 방황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방황하는 자가 속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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