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기 이론과 산욕열
오늘날 병원 수술실의 모습은 의학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들은 매 수술마다 새 멸균 가운을 두르고 수술용 모자와 마스크로 몸을 꽁꽁 감싼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소독액으로 손 구석구석을 빡빡 닦고, 딱 맞는 멸균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는 장면은 TV 매체에서 많이 반복되었기에 의학 드라마의 애청자라면 아주 익숙할 것이다. 특히 최신 의학 드라마들은 고증과 자문에 아주 신경쓰기 때문에 거의 흠잡을 곳이 없다. (대학병원 수련의들의 떡진 머리와 푸석한 피부, 칙칙한 낯빛도 재현해주길 바라면 지나친 것이겠지만...) 멸균 소독을 마친 온갖 기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준비되고, 누구라도 수술장 출입을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도 거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수술 과정을 최대한 무균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질식 분만에서도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기본적인 감염 예방의 원칙이 지켜지는데, 통상적인 수술과는 달리 한 명의 특별한 관객이 초청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탯줄을 잘라줄 남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분만실과 수술실이 똑 같은 환경은 아니다. 수술실의 위생 기준이 더 높긴 해도, 위생모자와 마스크, 가운을 입고 멸균 장갑을 착용해야 이 중요한 의식에 참여가 가능하다. 이런 복잡다단한 차림새를 처음 걸쳐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터이므로, 분만실의 예비 아빠들은 당연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출산이 임박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고, 분만장은 대개 요란벅적하다. 산모의 비명, 힘주기를 독려하는 여러 목소리, 소독하고 기구와 멸균포를 펼치는 분만 준비가 뒤섞여 정신이 없다. 이 시점에서 모두의 관심은 산모와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난리통 속에서 바싹 긴장한 채로 벙 찐 남편을 목격하는 일은 흔하다. 신비로움과 경이감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탯줄 자르기 이벤트를 기대한 분들도 적지 않을 텐데, 이 정도면 보통의 예상과는 달리 그리 낭만적인 광경은 아니다.
처음 탯줄을 자르려는 새내기 아빠들을 위한 팁은 아래와 같다. 일단 두 가지 명제에 익숙해져야 한다. 첫째,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곳에 세균이 있어서, 세균이 없는 ‘깨끗한’ 물품은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가운, 장갑, 탯줄 자를 가위 등이다. 둘째, 세균이 있는 곳과 세균이 없는 곳이 닿으면, 세균이 없던 깨끗한 곳도 접촉 즉시 세균으로 오염된다고 간주한다. 흰 종이에 검은 먹이 묻으면, 하얬던 종이가 까매지지 검은 먹물이 하얘지지 않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편리하다. 아빠의 양 손에 끼워진 소독된 장갑 부위는, 탯줄 절단이라는 임무가 끝날 때까지 오염된 부분을 피해야 한다. 그러니 장갑을 낀 상태에서 주머니 속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코를 후벼선 안된다!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멸균 가위를 쥐고, 길고 배배 꼬인 탯줄 중에서 자르라고 정해주는 지점을 싹둑! 절단하면 끝이다. 탯줄은 탱글탱글하고 생각보다 단단하다. 대략 곱창 정도로 질겨서, 한 번에 자르려면 적당한 힘을 주어야 한다. 아기나 산모가 통증을 느끼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과감히 잘라도 된다. 태아가 모체와 분리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잠시 경건함을 느껴도 좋다. 그리고 마지막 팁은? 반드시 고생한 아내를 돌아보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너무 신기해서 온갖 관심이 쏠리는 나머지, 진통으로 녹초가 된 산모에게 신경을 전혀 못 쓴다면… 그 서운함의 후폭풍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혹시 내가 제시한 몇 가지 팁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거나 반박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탯줄 자르기를 포함한 분만 과정 전체에서 되도록 오염이 되지 않도록 멸균 도구를 쓰고 소독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데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과거에 가정에서 분만하던 시절에도 탯줄을 자를 가위나 칼을 끓는 물에 삶아서 일종의 소독을 시도했고, 중세의 산파들도 아기를 받기 전에 관습적으로 손을 깨끗이 씻었다. ‘미생물’이나 ‘살균’같은 과학적인 개념은 부족했을지언정, 경험적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아기와 산모를 위해서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은 미생물 이론에 익숙하기 때문에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소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게다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면서 감염에 대한 대중 이해도가 더욱 높아져서 거리두기나 마스크 쓰기 같은 공중 보건의 예방 원칙에 대해서도 다수의 사람들이 대체로 잘 납득한다. 그런데 시계바늘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서 예전으로 돌아가보자. 아득히 먼 과거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100년이면 충분하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0년 전에, 지금보다 약 100배 많은 산모가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 이 광적인 살인마의 이름은 산욕열, 다름 아닌 세균 감염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낸 우리에게는,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익숙하고 당연하다. 지하철에도, 식당에도, 각종 공공시설에는 손 소독제가 비치되어 있다. 하지만 손씻기는 생각보다 젊은 상식이다. 과학이 미생물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밝혀내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조차 세균이 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19세기까지 질병의 원인은 그 정체도 애매한 ‘독한 기운’으로 여겨졌다. 나쁜 냄새나 유독한 기체가 원인이 될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이런 관념을 '독기 이론'이라고 부른다. 약간의 변호를 해보자면 헷갈릴 만도 했던 것이, 독기 이론이 늘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오염된 식수나 상한 음식 따위는 흔히 전염병을 일으켰다. 당시 의사들은 종종 환기에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미생물은 경계 대상이 되지 않았다.
산부인과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대단히 사려깊은 의사조차 환자를 진료할 때 손을 씻지 않았다. 심지어 해부나 부검을 한 이후에도 시체에서 나온 고름, 피, 체액이 덕지덕지 묻은 손 그대로 산모를 진찰하고 아기를 받았다. 이 오염된 손이 환자들에게 병의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길바닥에서 아기를 낳는 것보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분만 과정에서 아기가 산도를 빠져나오느라 산모의 몸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나게 마련인데, 만약 이 상처로 유독한 세균이 상처에 침입하면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으며 흔히 아기 낳고 며칠 안 되는 시기에 발생하기 때문에 ‘산욕열’이라고 불렀다. 분만한 산모가 열이 펄펄 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손쓸 새 없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었다.
당연히 산욕열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많게는 아기를 낳은 산모 열 명중 한 명이 산욕열로 죽었다. 이 정도면 당대 여성들에게 출산이 공포스러웠을 법도 하다. 그런데, 세균과 감염에 대한 본격적인 과학 이론이 정립되기 이전 시대에도 몇몇 통찰력 있는 의사들 덕에 예방법을 마련할 기회는 있었다. 비엔나 산부인과 병원의 산과 의사 제멜바이즈는 유독 의사들이 진료하는 병동이 산파가 진료하는 병동에 비해 산욕열 발생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기이한 차이에 의문을 품던 중, 동료 의사가 부검 중 입은 상처로 사망하는 사건에서 힌트를 얻는다. 의사들은 해부와 부검을 하고, 산파는 시체를 다루지 않는다. 같은 병원의 병리과 의사가 산욕열로 사망한 산모의 시체를 해부하던 중, 해부용 칼에 스스로의 손가락을 실수로 벤 상처가 점점 곪고 악화되었다. 상처의 부위는 다르지만, 산욕열과 유사한 고열과 호흡곤란에 시달린 끝에 죽음에 이른 동료를 목격한 것을 계기로 제멜바이즈는 산욕열의 원인에 대해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산욕열로 사망한 환자의 시체로부터 동료 의사에게로, 무언가 해로운 물질이 옮아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의사들이 담당하는 산모들의 산욕열 사망이 유독 많다는 것도 설명이 된다. 부검을 한 손을 통해 시체로부터 해로운 물질을 산모들에게 지속적으로 옮긴 것이다.
여기까지 추론한 제멜바이즈는 이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염소산과 라임을 섞어 소독액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료 의사들에게 시체 해부 후에 매번 손씻기를 종용했다. 안 하던 일을 갑자기 해야 하는 데에 불평도 적지 않았지만 끈질긴 설득으로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손을 씻게 만든 지 1개월째, 제 1병동의 산욕열 사망률은 1%대로 엄청나게 떨어졌다. ‘해로운 물질’의 정체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날카로운 관찰로 이뤄낸 쾌거였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반전은 제멜바이즈의 주장이 학계에서 완전히 묻혔다는 것이다. 대단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손씻기는 권위적이던 당시 의료계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죽음의 행렬은 족히 수십년간 더 이어졌다.
2020년, 코로나19가 미국을 최대로 강타하여 하루에도 수 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던 시기, 방역과 위생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어 있었다. 손씻기의 선구자는 150년이 지나서 화려하게 재소환되었다. 구글의 메인 페이지와 심볼이 제멜바이즈의 사진과 업적으로 장식되었다. 그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시대 과학자들과 의사에게 박해받았다는 점 때문에 이 딱한 선배는 종종 숭고한 순교자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면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제멜바이즈의 가설이 세균과 질병의 인과관계가 밝혀지기 이전 시대에 등장한 예리하고 통찰력 있는 관찰임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불완전했다. 제멜바이즈는 본인 의견에 의구심을 표하는 동료들에게 지나치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나머지 학계와 사이가 틀어졌다. 논문 출판은 하염없이 미뤄졌고, 손씻기의 이론적 근거는 여전히 두루뭉술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는 치명적이었다. 제멜바이즈의 이론이 의료계 전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탓에, 산욕열로 매일같이 죽어가는 수십만의 산모들을 살릴 기회는 다음 세대로 미뤄졌다. 이제 바턴은 후대 과학자와 의사들이 이어받았다.
19세기의 모성 사망(임신ㆍ출산 또는 임신ㆍ출산과 관련한 질병이 원인인 임산부의 사망) 통계를 들여다보면 희한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사망 수치가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높고, 어떤 경우에는 생존의 법칙이 보편적인 통념과는 정반대이다. 영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놀랍게도 병원에서 아기를 낳는 것이 가정에서 아기를 낳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로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병상을 확보한 병원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는데, 이런 병원에서는 심심찮게 산욕열이 창궐하기 일쑤이다 보니 아기 낳다가 죽을 확률은 무려 병원 밖의 10배 이상이었다. 병원에서 진행한 100건의 분만 당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가 2 - 8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위생에 대한 개념 없이 환자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다 보니 오히려 서로 간에 위험균을 옮기며 산욕열이 더 극성을 부린 것이다. 병을 고쳐야 할 병원이 되려 병의 원인이 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과학 거인의 이론적 근거와 함께 등장했다. 과학사를 몰라도 이름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프랑스의 국민 영웅 루이 파스퇴르이다.
미생물학자이자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는 백신의 개발자로도, 또 한편으로는 우유 브랜드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초기 외과수술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여는 세균설에 대한 부분에서 나왔다. 첫 단추는 생뚱맞게도 술이었다. 파스퇴르는 술의 발효를 연구하던 중 효모가 발효를, 세균은 부패를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프랑스 양조업의 혁신을 가져왔다. 발효나 부패가 저절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이 아니며 각종 미생물이 주도하는 현상이라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었다. 당시에도 현미경이 이미 개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생물을 관찰한 사람들은 이전에도 있지만, 이 자그마한 동물들에게 뭔가 중요한 역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으며, 사람이 자녀를 낳듯이 기존의 미생물로부터 기원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았음직한 주둥이가 길다란 백조목 플라스크와 고깃국물 실험이 바로 이 ‘생물속생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파스퇴르의 발견을 기초로 한 세균설, 즉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발상은 독기 이론이 주류이던 시대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파스퇴르는 불세출의 학자였지만 임상의사가 아닌지라, 자신의 발견을 곧바로 환자 진료에 적용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파스퇴르의 논문을 읽은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는 이 발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현대의 수술실을 살펴보자. 이번엔 제왕절개 수술이다. 배를 가르는 ‘개복수술’이기 때문에 철저한 소독이 각별히 중요하다. 수술을 위해 활짝 열어젖혀진 배 안의 공간으로 위험한 세균이 침투하기라도 하면 수술 합병증을 피하기 어렵다. 때문에 살균력이 우수한 소독용 제품으로 복부를 넓게 소독하는데, 병원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키는 엄밀한 절차가 있다. 소독액을 듬뿍 적신 거즈를 어느 방향으로 문지르는지, 어느 정도의 넓이을 소독해야 하는지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이다. 소독이 모두 끝나면 복부 위로 멸균포를 깔 때에도 순서가 있는데, 쓸데없이 엄숙한 형식미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고 준비 과정에서 실수나 감염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나름의 요령이다. 이 복잡한 절차에 미처 익숙하지 않은 신규 수련의들은 의도치 않게 ‘오염’을 시켜서 혼쭐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당연히 나도 몸에 완전히 익히기 전에는 호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 위에서 말한 흰 종이와 검은 먹물의 예시를 다시 떠올려보자. 먹물이 묻은 종이는 검게 변하지만, 먹물은 하얘지지 않는다. 이미 먹이 묻은 종이도 다시 하얗게 되돌릴 수 없으므로, 결국 새로운 종이가 필요하다. 만약 어딘가에 ‘오염’이 발생한다면 소독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므로 실수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소독법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기껏 수술을 해놔도 환자들 상당수가 수술 후 감염으로 사망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외과의사 리스터는 파스퇴르의 이론을 접하고 합병증 예방을 위해 미생물을 죽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체도 모호한 독한 공기가 아니고, 세균이라는 실체가 있는 생물이 부패를 일으킨다. 그런데, 상처의 감염도 부패와 유사한 과정이므로, 감염병에도 미생물의 역할이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미생물들은 진공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제거를 해놓고 추가적인 오염을 잘 통제하면 살균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리스터는 수술 전에 살균을 위해 수술 부위를 소독한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해 환자들에게 실험해보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독법 도입 이전에는 수술 이후 생긴 감염증상으로 환자가 사망할 확률은 46%로 무려 절반에 가까웠다. 소독법을 시행하자 이 확률은 15%로 크게 감소했다. 리스터의 소독법 주장은 이론적 배경이 탄탄히 뒷받침되었고 논문으로 근거를 잘 마련한 덕분에, 곧 널리 확산되어 의료계에 받아들여져 현대적 수술법의 초석이 되었다. 이윽고 1870년에는 산부인과에도 도입되어서, 리스터의 소독법을 도입한 병원에서는 산모의 산욕열 발생율은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1920년대에는 감염 예방을 위해 의료진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는 방법도 산부인과 병원에서 채택되기 시작했다. 산욕열을 줄이려는 일련의 노력은 1930년대부터 초보적 항생제들이 개발되면서 완성되었다. 이에 힘입어 산욕열 사망은 급강하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실로 미미한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지금까지도 산욕열과의 싸움은 현대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항생제는 산욕열의 원인이 되는 유독한 특정 세균을 죽일 수 있으므로, 근본적인 치료법으로서 가치가 엄청났다. 소독으로 예방법을 마련했을뿐더러, 항생제로 치료법을 갖춘 이후로는 감염성 질환 분야에서의 성공은 가파른 상승세였다. 파스퇴르의 세균설은 더욱 정교해져, 오늘날 우리는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특정 세균과, 그 세균에 대항하는 각각의 항생제의 긴 목록을 확보하고 있다. 항생제는 의사들에게 더없이 든든하고 강력한 최종병기가 된 셈이다.
<참고문헌>
린지 피츠해리스, 『수술의 탄생』, 열린책들(2020)
폴 드 크루이프, 『미생물 사냥꾼』, 반니(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