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배신' 출간 소식
첫째 아이는 분명히 배 아파서 낳았는데, 둘째 아이는 첫째가 잠자는 틈틈이 눈과 손, 굳어가는 머리를 분주히 써서 탄생시켰다. 아들은 2년 전에 태어났고, 책은 올해 나왔으니 그 순서만 따져서 둘째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가 없는 둘째가 있던가? 첫째가 있어야만, 둘째를 낳을 수 있다. '출산의 배신'은 그런 의미에서도 엄연히 둘째다. 내가 아기를 낳지 않았으면, 재생산에 대한 나의 경험과 느낌을 표현할 수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는 책이었다. (뭐, 내 책을 내 둘째라고 우긴다 한들 나라에서 주는 다자녀 혜택은 받을 수 없겠지만.)
세상에는 다른 산부인과 선생님들이 써주신 훌륭한 책들이 이미 많다. 전문적인 지식도 넘칠 정도로 많다. 출산 후기를 적은 에세이도 있다. 여성학 관점에서 재생산을 다루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책과 동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출산의 배신'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에세이? 라기엔 참고한 과학서적과 논문이 너무 많다. 과학책? 이라기엔 내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 책 속에서 방구도 뿡뿡 뀌어댄다. 실용서? 전혀 아니다. '주수에 따른 임신 증상'이나 '임신 중 챙겨먹을 영양소 목록' 같은 것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임신-출산-육아가 왜 힘든 일인지 탐구한다. 도대체 어째서? 산통은 왜 그렇게 아플까? 임신 호르몬은 어떻게 우리를 조종할까? 태아 기형은 왜 알아내기가 힘든가? 석기시대 사람들은 아기를 어떻게 키웠나? 병원에선 왜 자꾸 불편하고 민망한 것들을 요구하나? 이 의문들을 과학을 동원해서(심지어 나의 전문영역을 아득히 넘어가기에 고인류학과 진화생물학, 의학사를 공부해야 했다.) 답변하다 보면 몇 가지 갈래의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임신에 따르는 육신의 변화는 심대하며, 출산이란 본디 예측과 통제가 힘들다. 의료화된 출산이 불편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장점과 명분이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재생산을 위해 서로 도왔으며,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세부적인 지식보다는, 재생산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거를 동원해 정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내 둘째도 첫째 못지 않은 효도를 했다. 이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고, 논문을 읽고, 글을 쓰면서 스스로 임신-출산-육아라는 강렬한 경험을 나름대로 소화하게 되었다. 일단 이해를 하고 나니 마냥 억울하거나, 화가 치밀지 않게 되었다. 애 낳고 키우는 것은 그저 힘들거나 어렵기만 한 일이라기보단, 엄연히 거시적 의의와 과학적 맥락이 있는 일이다. 요즘 스멀스멀 셋째(진짜 아기!)에 대한 욕심이 피어나는 것은 나의 둘째 덕분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선 출산의 '배신'이 아니고 '화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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