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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의 Feb 07. 2024

'얼딩(toddler)', 아기와 어린이 사이의 미학

아기이면서 아기이지만은 않은 존재에 대하여

영어로 toddler, 걸음마쟁이에 딱 대응하는 순우리말이 없다는 것이 섭섭다. 내 아기가 영아(infant)에서 유아(child)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 바로 요즘 드는 생각이다. 아기에 대한 공식적 용어는 용도와 기관에 따라 정의가 다소 다르지만, 보통 생후 1년까지가 영아(infant)이다. 유아는 6세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영아나 유아는 기준을 나누는 용어이지 딱히 일상어는 아니다. 물론 '걸음마쟁이'라고 toddler를 직역해볼 수 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얼딩'(어린이집 원생+초딩의 합성어)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어로는 갓난아기건, 두돌 아기건, 네돌 아기건 다 '아기'가 된다. 딱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1-2세의 유아, 이 시기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 작지만 힘세고 재빠르고 수다스러우면서 변덕쟁이인 인간을 따로 이름붙여야 마땅할 만큼.


아기를 키워본 사람은 돌이 안 된 아기와 돌이 넘은 아기는 꽤 차이가 많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단 걸음마쟁이는 혼자서 이동할 수 있다. 비로소 어른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보행하는 것이다. 두 발로 걸으며 손을 써서 세상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가 나기 시작해서 어른과 비슷한 음식을 씹어서 먹을 수도 있다. 정신적 차원의 도약도 크다. 싫거나 좋다는 자기 주장을 적극적으로 한다. 여전히 양육자에게 의존적이지만, 나름의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지나며 아기는 말도 하기 시작한다. 우리 아기 기준으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냐!!!"이고 그 다음은 "나!!!"이다. 내가 바나나 껍질 벗길래. 내가 컵에 우유 따를래. 내가 양말 신을래. 아무리 어설퍼도 스스로 해보겠다고 난리치는 아기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물론 대부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나타나는 엄청난 떼쓰기, 분노 발작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 아침에도 옷을 입히느라 (아기는 "아냐!!!"를 셀 수 없이 외쳤다.)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 시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우리 아기만 이런 것은 아니다. 18개월쯔음 아기는 반항 주관이 두드러진다. 발달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걸음마쟁이의 특징이다. 스스로 해내 싶고 독립에 대한 욕구가 막 생겨나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온전한 능력이 없기에 아기도 일종의 갈등 상황에 놓인다고들 한다. 그래서 떼도 쓰고, 고집도 부리고, 때때로 드러누워 울어제끼는 것이라고들 한다. 어차피 아기는 나를 이해할 수 없으니 내가 아기를 이해해 보아야 한다. 걸음마쟁이라는 시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에 안간다고 떼쓰는 울애기. 이쯤 되면 미치고 환장한다!!


생후 1-2년 사이는 호모 사피엔스의 생애사에서 중대한 분기점이다. 이 시점까지 살아남았다면, 가장 취약한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앞으로 성공적 생존과 번식을 기대해봄직하다. 아기는 서서히 젖을 떼고 모체에서 분리된다. 스스로 걸으며 독자적 운동성을 획득한다. 사회, 인구 구조 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아기들이 모유를 먹는 수렵채집사회에서라면, 이 시기를 지나 젖을 떼야 엄마가 그 다음 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의 정신적으로도 큰 도약이 있다.  최소한의 생존을 확보한 아기는 자율을 위해 맹렬히 투쟁한다. 이제 아기의 생활은 누워서 바둥거리며 모빌 보거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위주로 돌아가지 않는다.  아기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돌진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해 손가락질한다. 수다스럽게 어설픈 단어들을 내뱉고, 장난감과 옷에 대한 확고한 취향마저 생긴다. (어린이집에 이상한 복장으로 등원하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다.) 육자에게 미치게 환장스럽고, 지극히 황홀한 순간이다. 타인이기는 하되 서로를 향하는 강력한 중력으로 얽혀있던 모체와 아기 사이의 관계에서, 최초로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커지는 순간이다. 비로소 이 작은 인간에게 자아와 정체성이 봄날의 꽃처럼 앞다투어 피어난다. 그러니 그를 어찌 그 이전과 같은, '아기'라는 단어로 부를 있겠는가? 


나는 임신이 끝나는 진정한 시점이 이 걸음마쟁이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생산에 대한 내 책도 딱 이 시기까지를 다룬다.) 동물학자 Portmann도 인간의 실질적 임신 기간이 21개월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자궁 속에서 9개월, 세상 속에서 12개월, 도합 21달이 지나야 겨우 하나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갓난쟁이의 미숙함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말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엄마와 완전히 분리할 수가 없다. 걸음마쟁이쯔음 되어야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독립된 개체로 태어난다. 그러니 떼쓰기와 고집, 실갱이로 하루를 보내는 우리 아기는 사실 얼마나 눈부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일상어로 쓰일만한 toddler의 우리말이 있었으면 좋겠다. 얼딩이어도 좋고, 걸음마쟁이어도 좋다. 그 단어를 통해 우리가 이 새로운 인간을 지칭하고, 그의 두 번째 탄생을 환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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