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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난포 Jul 10. 2024

출산 - 책이란 언제 태어나는 것일까?

출산과 출간의 의미 있는 순간들

사람이 태어나는 시점은 여러 가지 뜻을 담고 있다. '그 시점'이 탄생을 축하할 타이밍이기도 하거니와, 별자리나 사주팔자와 같은 세속적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적당하다. 병원에서는 태아가 모체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온 시점을 분 단위로 기록하여 아기의 출생신고에 반영한다. (일부만 빼꼼 보이는 것은 아직 출생이 아니다.) 그러니 출생신고서에 기재되어 있는 '출생일시'는 아기 몸뚱이가 엄마의 산도를 통과해서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안착한 시점이다.

한편, 아기의 몸이 바깥공기를 쐬었다는 것만으로 태아와 모체가 아직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탯줄이 아직 엄마와 아기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의미를 둘 만한 단계는 탯줄 절단이다. (탯줄 절단은 경우에 따라 일부러 출생으로부터 약간의 시차를 두기도 한다.) 아기 아빠가 직접 탯줄을 가위로 싹둑 자르는 것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그 질긴 연결을 잘라냄으로써 이제 아기와 엄마 사이의 물리적 연결은 절단된다. 

그렇다면 탯줄을 자르면서 아빠가 환호성을 지르는 것으로 이 대형 이벤트는 끝난 것일까? 의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아직 엄마의 몸속에 태반이라는 둥글넓적한 덩어리가 남아 있다. 태반은 태아가 만든 조직이므로, 아기가 나오고 탯줄이 끊어졌을지언정 아직 출산이 전부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는 태반까지 배출되어야 하며, 태반이 떨어진 이후에도 한동안 출혈 등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진행되어야 의학적 의미에서의 '분만'이 끝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산의 배신 출간이 다가올 즈음에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집필 중에는 배려를 많이 받은 덕에 일정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아기가 아프거나 나의 병원 업무가 바쁠 때, 남편이 연달아 당직 근무를 할 때에는 나도 재량껏 원고 작업을 쉬어갔다. 하지만 최종 교정 교열 단계에서는 출판사의 일정에 맞춰야 했다. 절로 밤을 새우게 되었다. 글이란 참 신기한 것이, 다 고친 것 같은데 또 읽으면 또 고칠 것투성이다. 부족한 것을 꽤 메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들춰보면 허점 투성이다. 그러니 출판사에서 마감 시점을 정해준 것은 오히려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기한이 없었다면 출간은 영원히 미뤄졌을 것이다.


마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울면서 글을 고치고 있었겠지


다행히도 기한이 정해진 덕분에 나는 수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최종 원고를 송부하고 오래간만에 긴 잠도 잘 수 있었다. 솔직히 이때쯤 되니 나도 내 글에 질려서 영영 다시 읽고 싶지 않았다. 마치 분주하게 요리를 하느라 진을 빼고 나면, 그 냄새에 질려서 막상 입맛이 뚝 떨어진 상태와 비슷했다. 2023년 연말을 꽉 채워서 교정 교열로 씨름을 했고, 최종본을 송고하고 정신을 차리니 해가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불과 보름 만에 책이 인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와우! 집필과 편집이 꼬박 일 년이 넘게 소요된 것을 생각하면, 막상 책이 찍혀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출판사에서 실물 책을 집으로 배송했다는 연락이 왔다. 벅차올라 감격했을까? 책을 품 안에 껴안고 눈물을 흘렸을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서적은 무척 무거운 배달품이고, 나는 그 커다란 택배 상자를 들 수조차 없었다. 일단 문 밖에 그냥 두고 아기가 잠들면 살금살금 언박싱을 하려고 했는데, 애 재우다가 너무 피곤해서 같이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뭐가 그리 바쁜지, 택배 박스 열어볼 틈조차 없었다. 그다음 날쯤 집에 들어온 남편이 비로소 상자를 뜯어서 상기된 얼굴로 책을 꺼내보았다. 자기야, 이거 자기 책이잖아! 안 궁금해? 그렇게 오래 고생해 놓고, 왜 여태 안 열어봤어??? 


아. 그렇지. 이렇게 생겼구나.


아기 낳은 날이 생각났다. 어떤 산모들은 출산하는 그 순간부터 감격에 겨워 아기와 사랑에 빠지지만, 나는 서먹하고 데면데면한 편이었다. 첫 아이는 무척 낯선 존재이고 엄밀히는 나와 초면이다. 게다가 출산은 낭만에 빠지기에는 꽤나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고 고생스러운 일이었다. 환희의 샹투스와 천사의 나팔 소리 같은 것은 들려오지 않았다. 음, 너였구나. 너는 이렇게 생겼구나. 출산은 분명히 굉장한 분기점이지만, 감정적 유대와 애정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커진 것이 나의 경우였다. 아기의 발가락을 만지고, 젖을 물리고, 정수리 냄새를 맡아가며 차차 실감하게 되었다. 이 아기가 내 아기이고, 내가 평생 사랑할 존재라는 것을.


재미있게도 나는 내 책에 대해서도 비슷한 흐름을 느꼈다. 마지막에 체력적으로 너무 고되었던 탓인지, 책의 실물을 봤을 때도 엄청난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터넷 서점들에 내 책이 올라갔을 때에도 신기했지만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다. 대형 문고에 내 책이 주루룩 진열된 것도 감격스러웠지만 동시에 얼떨떨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것은 내가 초보 무명작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대한 출간 축하 파티나 저자 사인회 같은 대형 이벤트가 있었으면 느낌이 좀 달랐을까? 나는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아기를 돌보고 병원에 출근하고 집안일을 하는 삶을 산다. '출간'이라는 비일상적인 일만 따로 떼어내면, 그냥 이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없던 일 같기도 하다. (어? 내가 진짜로 책을 냈던가...?)


내가 정말 책을 내긴 냈나 보구나-라는 느낌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가왔다. 독자의 의견과 감상을 접하면서부터다. 그러니 내게는 출간도 '육아' 단계부터 실감이 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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