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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l 04. 2021

같아요 병(맛있다고 절대 하지 마세요.)

백화점에서 생긴 일 Ep.1.


절대 고객님들한테 맛있다고 하면 안 돼요. 고기 먹었는데 맛이 없어.

 그럼 와서 컴플레인 걸 건데 그걸 누가 책임질 거야? 

우리가 할 일은 그냥 제품 구성만 말해주고, 가장 많이 팔리는 거 추천까지만 해주면 돼요.”


몇 년 전 추석 시즌 알바에 투입될 때 받았던 제품 교육(?)의 핵심은 ‘절대 단정적인 말을 쓰지 말 것’이었다. 제품 교육이라고 해봐야 나보다 먼저 투입되었던 H에게 전달 받은 내용이 전부기는 했지만.


사람들 입맛이라는 게 정말 제각각이라서 똑같은 고기를 똑같이 요리를 했어도 누군가는 고기 누린내가 심하다고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가 부드럽다고 말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질기다고 말할 것이다. 맛있다는 표현도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내가 맛있다고 해서 남들도 맛있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제품을 소개할 때 늘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이유였다.


‘제품에 하자는 없다.’, ‘국산 1등급 한우다.’, ‘서산 직영 농장에서 키운 수소다.’와 같은 팩트에 기반한 표현을 중심으로 ‘사람 입맛이 다 다르니 선택은 고객님 몫입니다.’고 선택권을 넘기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예를 들어 원산지가 국내 어디냐고 물어도 '횡성, 천안 '등'입니다.'라고 할 뿐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혹여라도 꼬투리를 잡힐까봐. 그저 한우는 100% 보장합니다!라고 말할 뿐...)


배송 관련 안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추석은 설날과 함께 가장 많은 물동량을 자랑하는 시즌이다. 모 택배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그들이 운송하는 물량만 200만 박스에 달한다고 하니 그 숫자를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문제는 고객들의 90% 이상이 ‘추석 전 배송’을 원하고 있는데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100%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정말 재수 없게 천재지변으로 도로가 붕괴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고객이 부재중이라거나 주소 확인이 안 된다거나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신선 식품인 냉장 한우 세트의 특성상 일반 택배처럼 문 앞에 던져 놓고 올 수가 없어서 받는 사람과 연락이 되어야만 배송이 가능한데, 그런 변수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변수들이 존재하다보니 고객들에게 배송 관련 안내를 할 때도 절대 ‘들어갑니다.’라고 하지 않았고, ‘들어 갈 겁니다.’라고 말해야만 했다. 혹시라도 들어갑니다! 했는데 안 들어가서 컴플레인을 받게 되면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생각나는 질병이 하나 있다. ‘같아요 병’이다. 드라마 혹은 예능에서 ‘아 기분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출연진을 볼 때마다 ‘쟤는 자기감정 하나도 몰라? ㅉㅉㅉ’ 혀를 차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기분이 좋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싫으면 ‘기분이 싫습니다.’라고 말을 해야지 왜 남 얘기처럼 ‘~같아요’라고 하냐는 것이다.


혹자는 ‘요즘 것들의’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마치 2,30대만이 자기 생각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처럼, 그들이 한국어의 기본도 모르는 수준 이하의 사람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난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누가 ‘요즘 것들’에게 같아요 병을 앓게 만들었을까?


‘~같아요’라는 표현이 애매모호한 것은 맞다. 하다못해 음식 메뉴를 고를 때조차 ‘파스타가 좋은 것 같아요.’라고 하면 파스타가 좋다는 건지, 싫지는 않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한 번 더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안 물어보고 파스타를 먹으러 갔는데 ‘싫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심 아쉬움이 남거나 썩 즐거운 식사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A 프로젝트에 인력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인력이 부족하다는 건지,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좋다는 건지 정확한 의사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전자로 이해한 상사가 인력을 충원해주면 다행이지만 후자로 해석하고 인력을 추가 투입 안 해주면 A 프로젝트 담당자들만 밤새 야근하느라 죽어날 수밖에 없다.


일상에서야 웃으면서 한 번 더 얘기할 수도 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프로젝트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같아요’처럼 모호한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같아요 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을까.


중요한건 사람들이 그 애매모한 것을 모르면서 쓰는 멍청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몰라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같아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괜찮다’는 의미다. 흑과 백처럼 좋고 싫고, 나쁘고 좋은 것이 딱 잘라지지 않을 때 6:4 혹은 7:3 정도로 긍정의 의미가 좀 더 클 때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앞서 말한 음식 고를 때의 ‘파스타가 좋을 거 같아요.’가 대표적인 사례다. ‘파스타가 확 꽂히지는 않지만 그 정도면 뭐 괜찮지.’라는 느낌이랄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표면적으로는 같다.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같다는 추상적인 표현을 쓴다.’ 다만 그 밑바탕의 느낌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싸우지 않을까, 오해를 사지 않을까? 와 같은 불안함 때문에 쓰는 경우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운동 경기에서 팀이 이겼을 때 기분이 좋은 상황에서 ‘오늘 이겨서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해도 괜찮지만 혹시나 ‘나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같은 불안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좋은 것 같다.’고 순화해서 말하게 되는 것이다. 팀이 졌지만 내 개인 성적은 좋아서 기분이 좋았을 때도 ‘아쉬운 것 같다.’같은 말을 하게 되는데 마냥 좋아하면 ‘팀플레이를 생각 안 하는 이기적인 선수’ 소리를 들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경우는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껏 비싼 한우 선물 세트를 선물했는데 기대보다 맛이 없다면 선물한 보람이 없을 거고 최악의 경우는 선물을 하고도 면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제일 쉬운 방법이 맛있다고 추천한 제 3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믿기 어렵겠지만 ‘당신이 맛있다고 해서 사갔는데 맛이 없잖아! 환불해줘!’와 같은 컴플레인이 실제로 들어온다. 보상 여부와 무관하게 컴플레인 그 자체만으로도 유통 업체 입장에서는 손해고, 어쩌다 보상이라도 하게 되면 그 손해는... 백화점에서 절대 컴플레인 상황으로 갈 여지를 안주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회사에서 인력을 충원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서 프로젝트가 어그러질 수도 있고, 인력을 충원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프로젝트가 빨리 끝나서 불필요한 인건비가 낭비될 수도 있다.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예산이 초과된다거나 프로젝트가 잘못된다거나-했을 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대부분 말을 꺼낸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결정권자와 달리 보고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프로젝트가 더 우선인지 혹은 어느 정도 인력이 적정 규모인지 정확히 알 가능성이 낮다. 잘못 말을 꺼냈다간 일 못 한다는 사람으로 찍힐 가능성도 크다. 문자 그대로 잘 해야 본전인 상황에서 누가 소신 있게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되게 어렵게 쓰긴 했는데 결국 남의 눈치를 보느라 ‘같아요’를 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자기 의견을 정확하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애매하게 말해야 좋다고 어릴 때부터 배우다보니 자연스럽게 같아요 병에 걸린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백화점에서 ‘절대 맛있다고 하지 마세요.’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 예를 들면 팀장님 앞에서라든가 소개팅 자리에서는 유독 ‘같아요.’라는 말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후배들도 나를 어려워하는 후배들일수록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했었고. 예의가 없어 보이거나, 이기적이거나 고집이 세보일 것 같은 그런 오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습게도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같아요라고 포장했더니, ‘네 주장도 없냐.’는 소리를 듣는다. '맛에 대해선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고객님.'라고 하면 고객들이 ‘아니 파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라면서 핀잔주는 것도 모자라서 ‘요즘 것들은 같아요 병에 걸려서 지 감정도 몰라요.’라고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누구 때문에 병에 걸렸는데.


너 때문에 병에 걸린 것 같아요다. 바로 너님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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