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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l 06. 2021

기브 앤 테이크

백화점에서 생긴 일 Ep. 02.

하루에 8,9시간 씩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퇴근 직전 마지막으로 12층의 자판기로 향할 때는 마치 몇 시간 등산을 한 것처럼 다리가 무거워진다. 허리, 무릎, 허벅지, 발목까지 안 쑤시는 곳이 없다.


백화점/할인마트 등에서 진행하는 시즌 알바, 코엑스, 킨텍스 등에서 진행되는 행사 운영요원의 이야기다.


시즌 알바는 특성상 단기로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고 페이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수능이 끝나고 처음 서울역 롯데마트에서 알바를 한 이후 시즌 때마다 종종 알바를 해왔다. 퇴사 후에 모아놓은 돈으로 버티다가 하반기에 결혼식이 5건을 포함해 돈 쓸 일이 점점 늘어나서 오랜만에 시즌 알바를 하게 되었다.


마치 다리에 납덩이라도 매단 것처럼 온 몸이 피곤한 가운데도 시즌 알바를 버틸 수 있는 힘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옆 매대의 여사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없을 때는 잡담이라도 나누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고객이 몰릴 때는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친해지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나를 대신해서 고객을 응대해서 내 매출을 올려주거나,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며 내게 전달해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일했던 백화점 행사장 한 쪽에서는 정관장 팝업 스토어가 운영되고 있었다. 7시쯤 퇴근 무렵이 되면 팝업 스토어에서 일하던 알바들이 시음하라고 나눠주던 홍삼 비타민을 우리에게 나눠주곤 했었다. 알고 보니 A라는 육포를 팔던 여사님께서 시식용 육포를 그들에게 나눠주면서 친해졌고, 그 답례로 음료수가 돌아온 것이었다. 옆에 있던 우리는 얼결에 음료수를 얻어먹을 수 있었고.


정관장이 빠진 후에는 여사님들에게 육포만 가끔 얻어먹는 일이 있었는데, 안되겠다 싶어서 매점에서 야쿠르트를 한 줄 사다가 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친해지다 보니 여사님들은 우리가 놓치는 고객이 있으면 잠깐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해주시기도 했고, 우리도 여사님들이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올 때며 도와드리기도 했었다.


행사 마지막 날에는 지하 2층의 물건들을 지하 1층의 본 매대로 옮기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흔쾌히 나섰다. 그리고 퇴근할 무렵 한 분은 고생했다며 비타민 음료를 쥐어주셨고, 한 분은 사과 한 알을 챙겨주셨다.

그 일이 기억나는 이유는 단지 내가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새삼스럽게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A 육포 옆에 B라는 육포 브랜드도 있었는데 그 분들은 생전 우리에게 육포를 나눠주기는커녕 인사 한 번 살갑게 해주신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 분들과는 형식적인 인사만 할 뿐이었고 서로 뭘 도와주거나 할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뭐라도 챙겨주시던 A 육포 여사님들과 비교하면서 B 육포 여사님들에게는 괜히 서운함이 느껴지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무조건 베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A 육포 여사님도, B 육포 여사님도 우리에게 굳이 친절을 베풀 이유는 없다. 친절을 베푼 A 육포 여사님이 좋게 말해서 착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다고 할 수도 있다. B 육포 여사님은 어쨌든 본업인 B 육포 판매에 집중했고, 목표한 성과를 달성했으니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주변 사람에게 먼저 베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천성이 오지랖이 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굳이 혼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베풀면, 언젠가 돌아오게 되어 있다. 자리를 비운 나를 대신해서 고객을 응대해준다거나 무거운 물건을 함께 날라준다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단적으로는 컴플레인 등으로 내가 상사에게 깨질 때 내 편을 들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만큼 갚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면 그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모 영화의 대사처럼 많은 사람들은 호의에 대해서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호의는 문자 그대로 고마운 것이고, 가능하다면 나 또한 상대방에게 호의를 갚아야 마땅한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내 호의를 받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선뜻 도움을 주게 될까? 혹은 그 사람에 대해 누군가가 평판을 물어본다면 좋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신뢰를 쌓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을게 아니라면, 이왕이면 주변 사람에게 베풀면서, 또 받은 만큼 갚으면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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