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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10. 2020

“선생님, 전 틀리지 않았어요.”

(Feat. 드라마 싸인)

   드라마 싸인의 윤지훈은 천재 법의관이지만 성격은 개차반이다. 1화 오프닝부터 다급하게 시신을 운반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더니 고다경을 들이받고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자기 할 일이 급한 나머지 ‘빨리 열든가 꺼져!’를 반복한다.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때도 ‘징계받을 짓 한 적 없다.’고 화를 내고, 모두가 그만두라고 말할 때도 ‘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증명해 보이겠습니다!’며 뛰쳐나간다. 그렇게 윤지훈은 1화부터 드라마가 끝나는 20화까지 항상 앞만 보고 직진만 한다.     


   존경하는 스승을 잃고, 좌천이 되고, 증거가 조작되고, 증인이 살해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내가 틀리지 않았다, 증명해보겠다며 발악을 하는 윤지훈의 모습에 싸인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나 또한 늘 내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옳다며 증명하기 위에 악을 써왔다. 작게는 ‘야간 자율학습은 자율로 해야 되는데 왜 억지로 해야 하냐?’와 같은 치기 어린 투정에서부터 크게는 ‘권고사직인데 왜 자진 퇴사라고 해야 하냐. 최저 임금과 실업 급여도 받게 되어 있는데 받을 수 없느냐?’ 돈이 걸린 문제까지, 참 많이도 싸워왔다.      


   그때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상은 이상일뿐이고, 현실은 다르다며,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며, 크면 알게 된다며 내가 틀리진 않았지만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반대해왔다. 그때마다 난 매번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쳐왔지만 여전히 증명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 사회는 명문대를 간다 -> 대기업/공기업에 취업한다 or 전문직 자격증을 딴다와 같은 일반적인 루트 외의 진로에 대해서 ‘틀렸다’고 말해왔다. 사무직이 아닌 기술직, 현장직에 대해서는 ‘공부를 안 한,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무시해왔다. 한 때 대학 진학률이 90%를 기록했던 이유다.     


   문자 그대로 개나 소나 ‘고학력 인재’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니 당연히 취업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고임금의 일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하지만 중소기업이나 비사무직에 '인생의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어온 것은 그들이기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그렇다고 중소기업을 다닌다거나 비사무직이라고 해서 실패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풍토가 '닥치고 대기업'하는 분위기가 싫을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에 진학은 했지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서 참 많이도 회의를 느꼈다. 경제학에서 비교우위 개념을 배우고, 경영학에서 조직 이론을 배우면서 각자 좋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믿게 되었다. '명문대를 반드시 가야만, 대기업에 취업을 해야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아도, 대기업을 다니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그 신념은 그냥 놀고먹고 싶은 한량의 핑곗거리에 불과하지는 않은가라는 자기 검열에 시달리고 있지만, 진심으로 내 동생들에게, 후배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윤지훈의 신념은 어떤 감정이나 외부의 개입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로만 부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지훈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은 흔히 우리가 정의라고 말하는 것들이었다. ‘부검실에 들어온 이상 다 똑같은 사람이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 누구도 죽어 마땅한 사람도 없으며, 그 누구에게도 사람의 목숨을 뺏을 권리는 없다.’ 이 단순한 명제들은 국가의 이익이라는 미명 하에, 국과수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피해자가 삼류 건달이라는 선입견 속에 외면되었다.     


   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서윤형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윤지훈은 여당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의 딸이 진범이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증거는 조작되거나 인멸되고, 증인들도 하나둘 살해당했다. 한 분야에서 천재라고까지 불리는 윤지훈이지만 그 역시도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는 좌절해야만 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포기했을 텐데 타협할 줄 모르고, 뒤돌아 볼 줄 모르는 윤지훈이었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윤지훈은 목숨을 걸었다. 자신을 미끼로 진범인 강서연을 만나 그녀 살인 장면을 녹화한 것이다.     


   목숨과 바꿔 신념을 지켜낸 윤지훈은 싸늘한 주검으로 국과수로 돌아와 부검대에 올랐다. 그 모습에 극 중 내내 그와 갈등을 빚던 이명한 원장을 비롯한 국과수 내부 직원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나 역시도 몇 번을 되돌려보면서 울컥했다.     


   우울했다. 개ㅆ마이웨이로 직진하는 윤지훈의 모습은 나와 너무도 닮았지만 윤지훈과 나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지훈의 신념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의였다면 내가 믿는 신념은 그저 나 혼자 편하자고 하는 정의일지도 모른다.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천재 법의학자였지만 나는 그저 일개 백수 나부랭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던질 용기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말로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를 떠들 뿐 그런 용기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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