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의 쓸모(feat. 제주도 한 달 살기)
2021년 코로나가 끝나가기 시작하니 일이 폭발했다.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바빴다. 코엑스, 킨텍스, 노원 등 수도권 일대는 물론 목포, 광주, 대구, 부산, 군산 등 지방 출장까지 다니면서 평균 20만 보를 걷던 내가 33만 보(9월)-38만 보(10월)-43만 보(11월)-27만 보(12월)를 걸었다. km로 환산하면 11월 기준 365km 정도니까 서울에서 대구까지 걸어간 셈이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기도 했고,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못 갔던 여행이라도 갈까 싶어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알아봤다.
결과만 놓고 말하면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끝내 가지 못했다. 뚜벅이에 한정된 예산으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숙소는 제한적이었고, 그나마도 뭔 놈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미 6개월~1년 뒤 숙소들도 예약이 꽉 찬 상태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일찍부터 알아보고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제주도 한 달 살기의 꿈을 접어야 했다. 제주도는커녕 공항 근처도 못 가고 끝났으니 제주도 한 달 살기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대신 뜻밖의 교훈을 얻었다. 내가 뭔가를 팔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영업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다.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에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글을 올리니 순식간에 자신의 숙소를 홍보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고, 쪽지로도 링크를 보내는 집주인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올린 글에도 댓글들은 거의 쉴 새 없이 달렸는데 글을 올린 시간과 댓글이 달린 시간을 비교해 보면 거의 실시간으로 카페를 모니터링하는 듯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전형적으로 싫어하는 아무 영혼도 없는 광고성 글들이어서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다. 일단 숙소가 어떤지 알아봐야 하니 링크도 들어가 보긴 했지만 막상 내가 원하는 조건과 거리가 먼 숙소들도 섞여 있었기에 살짝 짜증도 났다. 뭐랄까. 물건 좀 팔겠다고 사람 귀찮게, 피곤하게 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카페를 둘러보다 보니 문득 ‘이게 영업의 기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내 물건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어떤 숙소인지 사람들이 알아야 예약을 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숙소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둘째 문제다. 분야는 전혀 다르지만 어쨌든 글쓰기 강의라는 내 물건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면서 막상 이런저런 이유로 적극적으로 남들에게 알리지 않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했다. 그저 내가 글을 재밌게 잘 쓰면 누군가는 알아봐 주겠지. 그러면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 주변 지인들에게 구걸하다시피해서 올린 조회수는 사기 치는 거라는 생각. 당장 내가 아쉽더라도 남한테 민폐는 끼치진 말아야겠다는 그런 생각.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릴 적부터 봐왔던 삼국지나 여타 전쟁 이야기 속에서 실력도 없으면서 말만 앞세운 사람들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봐왔기 때문이다. 제갈량의 1차 북벌에서 가정을 지키겠다고 나섰던 마속은 산 위에 진을 치는 멍청한 짓으로 요충지를 잃었고, 그렇게 제갈량은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잃었다. 임진왜란에서 원균은 온갖 모함으로 이순신을 끌어내리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더니 칠천량에서 이순신이 기껏 육성한 해군 전력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대패를 당했다. 그나마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기적을 보였으니 망정이지 그대로 임진왜란의 승패가 갈릴 뻔한 참패였다.
어디 역사 속 인물뿐이던가. 말만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안) 하는 사람들은 현실에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기꾼들이고, 사기꾼까지는 아니어도 같이 일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퇴사했던 이유도 ‘사람 구해서 알아서 하겠다.’다던 팀장이 끝내 사람을 구하지 않는 바람에 비행기 티켓을 취소했다가 날려먹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펑크 난 책임을 내게 전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 말만 앞세우는 사람 때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적은 없었음에도 ‘말만 앞세우지 말아야겠다.’라는 일종의 신념이 생겼단 얘기고, 나이가 들수록 말만 앞세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단 얘기다. 쨌든 그런 습관 때문에 초중고 12년 대학교 4년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남들 앞에 나서서 ‘나를 뽑아주세요.’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자리를 맡으면야 잘할 자신은 있었지만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데 내 생각만 앞세워서 회장이 된다고 한들 의미가 있나 싶었으니까. 그저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누군가는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였을까. 회장 선거는 물론이고 소개팅 같은 사적인 자리에서조차도 내가 딱히 원하는 결과를 얻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어릴 때는 왜 남들이 몰라주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아직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을 못 만났을 뿐이라고 정신 승리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적극적으로 ‘나 이런 사람이니 뽑아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나 따위가 눈에 띌 리가. 말만 앞세운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실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내가 취업에 연달아 실패했던 이유도, 마케팅 대행사에서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한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었지 않나 싶다. 극단적으로 말해 질이 나쁜 물건조차도 어떻게든 포장해서 팔아야 하는 마케터가 물건을 팔 생각은 안 하고 단점에 대한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고 있으니 어느 회사, 어느 상사가 좋게 보겠나.
그래서다. 이번에는 연재를 시작하며 가능한 주변에 많이 알려보려고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고민을 많이 하긴 했다. 내용에 자신이 없어서는 아니다. 처음 ‘모든 순간의 쓸모’를 떠올렸을 때 생각했던 옵니버스식으로 가벼운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려 했으나 쓰다 보니 자꾸 일반적인 글처럼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게 나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의구심은 들지만 일단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나와 비슷하게 본인의 경험들이 ‘쓸모없다.’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사소하게만 보이는 그 순간들조차 쓸모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사례는 차고 넘치니까. 당장 제주도 한 달 살기조차도 끝내 제주도 근처도 가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교훈을 주지 않았나. 끝내 퇴사했지만, 마케팅이라는 직무에 발이라도 담가봤으니 카페의 광고글들이 눈에 들어왔었고. 지금 글을 써 내려가는 이 순간조차도 누군가가 공감해 준다면, 그래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된다면 쓸모가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