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다가도

모든 순간의 쓸모(feat. 맛있는 녀석들)

by 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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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녀석들의 무지막지한 먹방을 보던 부모님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셨다. 그럴 만도 했다. 배달시켜 먹는 일이라곤 일 년에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오로지 집밥만 드시고, 삼시 세끼 딱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만 먹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계신 분들이니까. 심지어 아무리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위가 늘어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있음에도 평생 특별히 좋아한다고 해서 과식을 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 눈에는 더더욱 맛있는 녀석들의 먹방이 미개하고, 한심해 보일 수밖에.


나도 배민을 사용해 본 적이 손에 꼽을 만큼 배달 음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야밤에 배고프면 편의점도 자주 가고, 또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는 폭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글쎄.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가끔 도대체 저 방송이 왜 인기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닭갈비 집에서 친구 셋과 공깃밥만 13 공기를 먹었을 만큼 먹성이 워낙 좋은 나지만 딱히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뭐 단순히 많이 먹어서라기보다는 편식이 심하고 급하게 먹는 안 좋은 식습관도 한몫했지만.


어쩌면 나도 잘 먹을 수 있는데 내가 먹을 때는 식충이 취급이나 받으면서 눈치를 봐야 하는데 맛있는 녀석들은 출연료까지 받아 가면서 원 없이 먹고 있으니 괜히 배알이 꼴렸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과식을 일삼았으니 뚱뚱한 사람과 과식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뚱뚱하고, 과식하는 사람들을 보며 '게으를 것이다.', '무식하다'와 같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먹고살 것이 없던 시절에나 잘 먹고 많이 먹는 사람이 부의 상징이었고, 복스럽다는 소리를 들었지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무식하다는 소리 듣기 딱 좋지 않나. 소위 웰빙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대에 맛있는 녀석들은 정면으로 역행하는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문세윤이 모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맛있는 녀석들을 보고 장 정지 상태의 환자가 침샘이 고이면서 장이 움직였다거나 식욕을 잃은 할머니가 식욕을 되찾았다며 감사 인사를 보낸 시청자들이 있다고 했다. 뭔 소리인가 싶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검색해 보니 실제로 입덧으로 고생하던 임산부가 맛있는 녀석들을 보고 식욕을 되찾았다는 간증 글을 남기자 ‘명불허전 기적의 메디컬 방송’, ‘본격 소화기내과 메디컬 쇼’, ‘먹방이 아니라 의료방송’이라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image.png 출처 : https://m.entertain.naver.com/home/article/421/0001838661

그저 내가 위대(胃大) 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단 한 번도 식욕이 없었던 적이 없고, 편식이 심하긴 하지만 일단 좋아하는 메뉴라면 크게 맛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라서 맛있는 녀석들을 보면서 이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맛집이라고 해서 몇 시간씩 줄 서느니 차라리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울 만큼 남들의 취향에 철저히 무관심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식욕이 없는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아니 식욕이 없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식증이라는 엄연한 질병도 있는데 왜 몰랐을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가 무관심하다고 해서 쓸모없는 게 아니었다.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최근 유행하는 에세이 트렌드들이 그렇지 않나. 명쾌한 솔루션을 주지 않아도, 필자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지 않나.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친구를 만나고, 경조사를 챙기고, 게임을 하고, 또래들과 다른 취미를 즐긴다는 이유로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라서. 늘 내가 잘 살고 있나 고민하고 흔들려야만 했던 나였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전하고 싶어서.


모든 순간에는 분명히 나름의 쓸모가 있다. 단지 지금 빛을 보지 않았을 뿐. 그러니 나를 믿고 계속해도 된다고. 언젠가 빛을 볼 거라고. 시간 낭비 같아 보이는 지금의 이 이야기들도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위로를 전하고, 공감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쓸모가 있을 테니까. 그래서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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