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 회사는 더 빠르게 변하고 있었어요. 일만 하는 것으론 모자라죠. 난 뼛속까지 내향인이지만 외향인 처럼 굴고 회사생활을 했죠.
간부가 되자 사람을 대면할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팀을 밀어 붙어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낀 사람’이 되었어요.
하루 종일 회사에 치였다가 퇴근하면 지친 마음을 달래려 술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초저녁잠을 잤어요. 밤 9시쯤 자다가 12시쯤 일어나요. 불면증이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온통 회사 일이 떠오르죠. 밀어붙이던 사람, 반발하는 사람, 화내던 사람이 떠올라요. 그 중간에 끼어 조율해 보려고 애쓰는 나. 내일이 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시뮬레이션해보며 불안해하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숨고 싶어 도망가고 싶어!’ 늘 불안해서 잠을 설쳤지요 아침이 되면 또 잠을 못 잔 채 출근했어요. 회사에서 치이다가 퇴근하면 밤새도록 잠들지 못한 날들의 연속이었고요.
어느 날, 동틀 무렵.
잠을 못 자고 창밖을 보니, 유난히 붉게 피어오르는 새벽하늘. 아름다웠어요. 홀린 듯 집 앞으로 나가 해를 멍하게 바라봤죠.
제가 사는 곳은 부산 해안가에요. 바로 앞 바닷가에 작은 배 한 척이 떠 있었죠.분주히 고기잡이 용품을 매만지는 어부의 손길이 바빴지요. 그 배는 물보라 꼬리를 일으키며 먼바다로 나아가고 있었어요.
왠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어부는 이렇게 바쁘고, 세상은 너무 아름다운데, 나는 아침이 오는 게 싫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길거리에서 눈물을 닦으며 구질구질하게 울었어요.
그때,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달려오고 있었어요. 규칙적인 발걸음, 구릿빛 팔뚝, 탄탄한 종아리, 땀에 젖은 앞머리, 전방을 주시하며 묵묵히 뛰어오는 그 사람. 길거리에서 내가 울고 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곁을 휙-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휘융- 하며 스치는 바람결, 그 사람의 달리는 뒷모습을 계속 바라봤어요. 이 새벽에.. 다, 달리기를 한다고?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달린다고? 저 에너제틱한 모습 뭐지? 놀란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어요
어느새 고깃배는 저만치 멀어지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의 뒷모습도 사라졌어요. 해는 벌써 쑥 올라와 아침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었지요
세상에. 나도 저렇게 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싶다. 그렇게 처음 달리고 싶은 마음이 쑥 올라왔어요.
‘달리기. 그래 달리기, 나도 달리는 거야!’
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달리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 달리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내 달리는 뒷모습이 웃기지 않을까? 뛸 때 살이 출렁거려서 흉보면 어쩌지? 길을 걷다가 갑자기 확 뛰면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 숨이 차서 중간에 달리다 멈추면 웃기지 않을까?’
별별 생각을 하며 망설였지요.
하지만 달리던 그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랐어요. 달리면 뭐 어때?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
팟! 하고 달리기 첫 발을 뗐습니다. 앞발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차니 내 몸이 앞으로 쑥 밀려나갑니다. 다음 발을 내딛고, 또, 또, 또. 그렇게 나는 어느새 길 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내 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달리다 보니, 나는 어느새 앞으로 쑥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해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습니다. 나는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불안해하는 대신 내가 잘하는 것을 꾸준히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용기를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잠이 안 와서 뒤척이던 불면증이 사라졌어요. 달리기를 하고 난 밤은 아주 그냥 침대에서 녹아내립니다. 프라이팬에 버터가 녹듯, 흐물흐물해진 몸이 침대에 사르르 녹아내리거든요!
불안한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레드썬!’ 스위치를 끈 것처럼 바로 잠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아침에 스위치를 탁 켠 것처럼 반짝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합니다.
달리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경험이다 - 조지 쉬언 (George sheehan) -
바닷가로 나간 그 어부는 만선의 꿈을 이루었을까요? 그날 새벽 달리기를 하던 사람은 삶을 잘 살아내고 있을까요? 어부의 아침, 러너의 아침, 나의 아침은 다른 걸까요? 나도 너무 불안해하지 않고 그냥 내 인생 트랙을 꾸준히 달려가려고 합니다. 달리기의 나비효과를 믿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