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대신 필요한 것, 술보다 나은 것
전 직장생활 20년 차 출근러, 바람 잘 날 없는 직장생활은 스트레스가 일상이지요.
스트레스받으면 무엇을 하시나요? 네 저는 술을 마십니다. 퇴근 후 술 마시며 답답함을 해결했습니다. 퇴근하면 집에 가자마자 냉장고로 가 맥주를 꺼냅니다.
벌컥벌컥... 마음속에 활활 불이 난 것 같은 마음에 술을 끼얹었어요. 화를 술로 껐던 거지요. 그러니 집에 술 떨어지는 건 쌀 떨어지는 것만큼 심각한 일, 술은 무조건 사놔야 했죠.
하지만 문제는 그 강도와 빈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었죠. 연차가 쌓일수록 일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으니까요 화가 심각하게 난 날은 혼자 술을 마시다가 울화를 참을 수 없어 샤워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술기운에 샤워기를 틀어놓고 큰소리로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은 술을 즐기지 않아요. 분리수거할 때 술병이 나오면 내 소행이죠. 분리수거를 담당한 남편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운 날들이 많아졌어요. 살이 찌고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는 것은 당연했어요. 나는 일상 스트레스를 술로 회피하는 중이었지요.
돈은 적게 주고, 일은 많이 시키고 싶은 상사, 돈은 많이 받고 일은 적게 하고 싶은 직원, 상사와 직원들 사이에 끼어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에 치였어요. 두 집단 사이에서 서로의 욕심에 균형을 맞추는 사람, 그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거든요, 양쪽에서 널뛰기하는 사람들 중간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어요. 가장 흔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가장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중심을 잡아야 하는 자리였죠.
하지만 술을 먹는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었어요. 맥주를 마실 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술이 들어가면 마음이 풀어지는 기분, 마음이 이완되어 잠드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술이 주는 행복은 그때뿐. 술기운에 잠이 들고 아침이 되면 똑같은 일들의 반복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회사 사람들의 욕심 사이에서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저기서도 좋은 사람 소리 들으려는 욕심이 스트레스를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이었음을 깨달았어요. 옳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들에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어요. ‘변화가 필요해 정신을 차리고 살고 싶어.’ 술이 오히려 정신을 파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감히 ‘술을 먹지 않겠다’ 고 스스로 선언했어요
일단 술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야 했어요.
속이 답답할 때 뻥 뚫어줄 무언가를 찾아야 했어요. 술 대체품. ‘탄산수’입니다. 이제 맥주 소주가 아니라 탄산수를 먹는 사람이 되었어요. 늘 쓰던 맥주잔에 탄산수를 붓고 한잔 캬 하고 들이키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고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이 지긋지긋하고 복잡한 일상에서도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답답한 마음을 안고 냅다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퇴근하고 멍하게 있으면 자꾸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와, 달리기가 이렇게 숨차다니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달릴수록 심장이 요동쳐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요. 달리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저질체력. ‘괜히 뛰나?’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죠.
하지만 달릴 때 힘든 구간을 지나고 나면, 심장이 잦아든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몸이 달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그럼 발로 땅을 박차면서 ‘저기까지만 뛰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달려보게 돼요
뛰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조금만 더 뛰자고 마음먹고 발을 움직이니, 어느새 나는 피니시 라인까지 와 있었습니다. 힘든 걸 알지만 한발 더 내딛는 것, ‘조금만 더, 더, 더’ 하다가 더해진 실력들이 쌓여 진짜 내 실력이 된다는 것을요.
“어렴풋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네, 달리기를 하면서 알게 된 느낌이 바로 이 느낌이에요. 어렴풋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자기를 믿고 달려가는 감각‘ 그것을 나는 ‘달리기가 준 자신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달리기로 다진 자신감은 살면서 닥치는 문제들에도 적용되었어요.
술과 스트레스로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공격하는 사람들을 대면할 힘이 없어요. 하지만 체력이 되고 용기가 받쳐주자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이 생겼습니다.
힘든 미션이 와도 ‘어렴풋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일을 합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화를 내는 대신 해보자는 마음으로 바뀌고, 내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전히 술을 먹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여전히 달리지 않는 사람이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계속 마음은 문드러지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거예요. 체력이 안되니 금세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이제 술을 먹지 않고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세상을 대하게 돼요. 술이 내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고, 내가 술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말이죠.
술요? 먹고자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요. 하지만 먹지 않습니다. 달린 게 아까워서라도 술을 더 안 먹게 돼요. 술생각 대신 달릴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나도 신기해요. 만약 남이 술을 먹지 말라고 했다면 오히려 먹고 싶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는 술을 안 먹는 거지, 못 먹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삶이니까요.
‘달리기를 통해 나는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을
내가 원하는 곳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 조지 쉬언 (George sheehan) -
오늘도 자신을 믿고서, 배에 힘 딱 주고, 어렴풋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느낌을 찾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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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달리면 달라져? 어쩌다 보니 거저 얻은 달리기 나비효과
1부 몸이 고장 났을 때 달렸더니
-잠이 안와서
-술이 술술술
-20년 전 마라톤
-아이스크림 홀릭
-루틴의 뒷덜미
2부 마음이 고장 났을 때 달렸더니
-거리를 잘게 썰기
-펀런이 유행이래
-보고싶어 달려가기
-궁하면 통한다
-방해꾼 손절하기
에필로그
달리면 달라져! 숫자 기록 대신 인생이라는 길에 나다운 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