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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추속 천둥 Mar 18. 2020

누구나 치과는 싫다

치과 가자.

라고 했을 때 눈이 커지면서 몸이 경직되고 그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이 돌아가는 현상은 아이와 어른 모두가 그럴 것이다.


어릴 적 기억 속에 치과는 그냥 두려움 자체였지만 뚜렷한 기억은 그리 없다.

이를 뽑아야 할 때는 으레 집에서 뽑아야 하는 것이었고 통증이 오기 전까지는 치과를 가야 하는 의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스물네 살쯤, 신경치료라는 극강의 고통을 느껴보았고, 금으로 이를 도포하는 시술(?)로 인해 부모님의 지갑을 또 한 번 열리게 만들었다.

아무튼 현재 남아있는 치과의 가장 진한 기억은 스물네 살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다.

아이를 치과로 데려가게 되면서 그 고통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해졌다.

아프다고 하면 분명 서로가 힘든 대치 상황이 될 터이고 안 아프다고 하면 분명 부모로서의 신의를 잃게 되는 상황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일 테니 말이다.


치과는 그렇다.

아프다기보다 청각의 귀신의 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몇 가닥의 차가운 도구들이 입속에 들어오면서 치잉거리는 기계음은 충분히 뇌를 공포스럽게 만들어준다.


아이에게 말한다.

무서운 것을 이해한다.

아빠도 어릴 적 너무 많이 무서웠지만 자주 다니지 않았음에 후회한다고.

덕분에 나이가 들어서 더한 고통을 맛보았다고.

좀 더 과장을 보태어.

이가 하나씩 썩다 보면 모든 이가 다 썩게 되고 그러면 넌 이를 모두 뽑아야 할 것이며 그러면 어찌 살아가겠느냐.

라고 치과를 다니던 초창기에 이야기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그리 힘들게 거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한 살의 어느 날.

흔들리는 이를 만지며 먼저 치과를 가자한다.

톡 하면 뽑힐 듯한 이가 겨우 매달려있지만 아이는 아빠의 손보다 의사의 손이 믿을 만 한가보다.


이를 뽑고 숨어있던 충치를 치료해야 한다는 말에 아이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치과를 방문해 아무런 소리 내지 않고 충치 치료를 마친다.


컸구나.

잘 참아내는구나.

그 나이가 열한 살이다.


- 아들, 네가 열한 살 아들을 데리고 치과를 가게 되면 이 글로 어릴 적을 기억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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