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소의 곁 08화

평화로운 장면 속, 익숙한 언어

by FONDOF

2025년 1월

베트남 푸꾸옥, 어느 리조트





여행 3일 차,

매일 객실 내 프라이빗 풀에서만 놀다가

오늘은 야외 키즈풀에 한 번 가보자, 해서 나선 날.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삼삼오오 세네 가족 정도.

프라이빗풀은 어른 가슴께까지 물이 차있어서 늘상 아빠 등에 매달려 놀았는데

널찍한 야외풀은 60cm 정도 깊이의 키즈존이 있어

95cm 작은 인간이 스스로 발을 딛고 걸어 다니기 적당하다.

걷는다기 보다 물속에서 통 통 튀어 오르며 슬로모션처럼 뛰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지켜보는 내내 눈이 부셨다.


두 눈 가득 들어차는 평화로운 장면 속으로

익숙한 언어가 들려온다.




자매로 보이는 여자 둘이

한국엄마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유사아이템들로 치장하고

(챙이 깊은 라탄선캡, 바스락 소재의 긴 원피스)

함께 온 아이들 몇몇이 드문드문 흩어져 노는 모습을 시야에 붙든 채

둘 중 한 명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맹렬히 삼인대화를 나누는 중.


내용인즉

내일 열두 시 반에 픽업차량이 오기로 했으니

뭐 마사지를 가네 마네.. 시장을 가네 아니네..

뭐부터 하네 어디는 꼭 가야 하네.. 등의 화두로 설전을 벌이는 건데,

그렇게 하면 애는 누가 보냐는 둥 나는 마사지는 꼭 받고 싶다는 둥

아웅다웅 언성이 조금씩 높아진다.



언어를 알아듣기 때문에 더 거슬리는 걸까.




동생으로 보이는 여자는

무릎에 돌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을 앉혀놓고

언니로 보이는 여자 허벅지에 손을 척 얹더니 말을 막으며

“아니 언니 진짜 내 말 한 번만 들어봐, 아니 아니 한 번만 들어봐.”

원천봉쇄의 기세로 따박따박 자기 할 말에 열을 올린다.

몇 번 하려던 말이 잘린 언니의 미간이 선글라스 위로 잔뜩 몰렸다.


남편으로 보이는 자는 야트막한 풀에 쪼그려 어깨까지 몸을 담그고

이따금씩 '어 난 상관없어 어 난 좋아~' 하며 둥둥 떠다닌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 보이는데도 뭐가 대수냐는 듯 한가하게 대꾸하는 모습이

어떤 차원으로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엄마 무릎에서 울기 시작한다.

갑자기 남편이 물을 뚝뚝 흘리며 풀에서 나오더니

엄마 품에 잘 앉아있던 아이를 들쳐 안고

뜨거운 땅을 맨 발로 몇 걸음 데일세라 가더니

'저런 곳에?' 싶은 바닥에 내려두고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도망치듯 다시 혼자 풀로 들어간다.


엄마는 언니와 설전을 이어가는 중.


영문을 알 수 없는 아이는

맨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엉엉 울고 있다.

접점을 찾지 못했는지 언니와의 대화는 잠깐 멈춘 채

못마땅한 얼굴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의 엄마.


선크림이 덕지덕지 발린 허여멀건한 얼굴로 히죽거리며

물속에서 고개만 내놓고 느릿느릿 아들이름을 부르는 아빠,

자신이 연출한 이 상황이 퍽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지호야~ 왜 울어? 이리 와~ 이리 오라니까 지호야?”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엄마는 그제야 일어나며 하던 폰을 신경질적으로 앉아있던 자리에 내려놓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아이에게 다가가

말없이 아이를 들어 안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그리곤 마주 앉은 언니에게는 시선 한 번 안 주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무릎이 닿을만한 사이를 두고 앉아

그런 동생을 말없이 보는 언니의 팔짱은 풀리지 않을 거 같다.

아이의 아빠는 물 위에 누운 채로 둥둥,

불러도 들리지 않을 지점까지 흘러가버렸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엄마 무릎에 잘도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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