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미래로 간다
고깃집 옆테이블
아직 본격 여름이 시작되지 않은 선선한 날이었다.
우리 세 가족은 저녁공기 쐬며 살랑살랑 걸을 겸 집에서 가까운 고깃집을 찾았다.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가 아이와 함께 걷다 보니 20분도 넘어갔지만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으려 깡충 뛰다가
풀밭에 들어가 "왕개미야!" 고래고래 외쳐대다가
"내가 먼저 가야지~" 하며 호다다닥 작은 보폭으로 뛰어가는 뒤를 쫓으며
나도 남편도 너그럽고 여유롭게 짧은 산책을 즐겼다.
조금은 이른 저녁,
넓은 식당이 한 테이블 빼고 휑하니 비어있었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께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시원하고 좋아요."
하며 다른 손님분들께서 앉아계신 옆 테이블로 손짓하신다.
60대 부부와 20대 아들로 보이는 삼 인 가족,
식사는 이미 중반을 넘어간 듯
짙은 고동색에 끄트머리가 말린 고기 몇몇 점이
불 판 위에 달궈지고 있다.
빈 소주병 옆 나란히 반쯤 비워진 소주병.
엄마는 안쪽, 아빠는 바깥쪽에 한 자리씩 앉았고
아들은 굳이 엄마 옆도, 아빠 옆도 아닌
테이블 사이드에 앉아있다.
'저렇게 앉으면 직원분들이 불편하다고 보통 싫어하던데..'
생각하며 나도 안쪽 자리에 앉았다.
태은이는 배가 고팠는지 의자에 앉자마자
"안녕하세요! 공깃밥 한 공기만 주세요!"라고 쩌렁쩌렁 질러대는 바람에
식당 안에 계신 분들이 모두 웃었다.
아이가 이렇게 끝간 데 없이 밝고 명랑할 때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아이를 향한 너그러운 시선도 감사하다.
약간은 민망한 마음에 괜히 두리번대다가
내 왼쪽으로 쭉 이어진 벤치 끝에 앉은 옆테이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노란 카디건에 꽃무늬 치마를 입고
핑크색 캡에 선글라스까지 얹은 모습,
굉장히 소녀감성이시다..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태은이를 향해 따뜻하게 웃어주신다.
그녀와 직각을 이룬 테이블 모서리에
우리를 등지고 앉은 아들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질 못하고
구부정하게 등을 둥글리고 앉아 한쪽 다리를 가볍게 털고 있다.
"그만 좀 해라. 식사 중에 얘기 좀 하자!"
벌써 두 병째 비워가는 소주를 쭉 들이키며 아빠가 볼멘소리로 아들을 찌른다.
하지만 아들은 의식적으로 아빠를 무시하며 스크롤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린다.
그런 아들의 무반응에 못마땅한 내색을 내비치며
이번엔 맞은편 앉은 엄마에게 시비조를 던진다.
"... 그래서 아니.. 그게 지금 아니잖아~"
"아휴 고만해 됐어."
엄마는 고개를 홱 돌리며 고기판을 뒤적이던 젓가락을 버리듯 내려놓는다.
멋쩍은 듯 굴리는 커다란 눈동자,
'저 아저씨 지금 화내려나 어쩌려나..'
나는 조금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안들을 수 없는 대화를 엿들었다.
아빠는 다 타버린 고기를 한 점을 집어 입에 털어놓고는
물방울 맺힌 소주잔을 쭉 들이켠다.
그리곤 다시 아들 쪽으로 몸을 돌리며
“아이고~ 훈아! 핸드폰 좀 고만하면 안 돼?!"
아들을 보지 않고 아들 손에 쥐어진 핸드폰을 노려본다.
"아... 뭘 얼마나 했다고 그래~"
아들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한 번 응시하더니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인다.
아빠는 애꿎은 소주병을 더듬으며 볼륨을 조금 낮춰본다.
"얘기를 해, 대화 좀 하자고, 대화르을~”
아빠는 조금은 장난기를 섞어 보지만 아들은 전혀 못 느낀다.
어쩌면 정확히 느꼈을지도, 그래서 더 싫었나.
“하.. 아, 해~ 뭐~”
아빠랑 아들이 많이 닮았다,
특히 커다란 광대골격과 기다란 얼굴형이.
어디 가면 부자가 참 많이 닮았다는 소리 자주 들었을 법한 유전자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대각선 멀찍이 앉아 태은이를 내내 바라보던 엄마가
“우리 훈이도 너무 이쁘지 않았어 저 때?”
한 마디를 테이블 위로 슬며시 내려놓는다.
태은이 너머로 자신의 어린 시절 아들을 보고 있는 듯 눈이 가늘어진다.
“너무너무 이뻤지~ 요놈이 아빠를 얼마나 좋아했다고!(쩝쩝)”
아빠는 다시 소주를 쭈욱 들이켠다.
소주를 참 맛있게도 먹는다.
아들의 어깨를 괜히 한 번 꽉 잡으며
"너 기억나? 아빠랑 응? 너가 아빠 막 쫓아다녔다고~"
그의 벌게진 얼굴이 까만 피부에 가려진다.
"아빠가 인제.. 어? 아빠가 너한테 인제 인마인마 안 할게"
그 말에 핸드폰을 쓸어 올리던 아들의 오른 엄지가 멈칫한다.
"... 지키는 걸 못 봤어."
아들의 대꾸에 아빠는 술기운을 빌려 다시 볼륨을 높인다.
"할 때마다 만원! 어? 아빠가 인제 너한테 인마소리 하면 만원씩 준다!"
아빠는 점점 혀가 꼬이고 말을 더듬는다.
목소리는 슬슬 주변에서 쳐다볼 정도로 커졌다.
“가자 고만 이제!”
익숙한 듯 맥을 끊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엄마의 한 마디에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며 아빠가 묵직하게 일어선다.
때맞춰 아들이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넣으며 일어나
다른 한 손으로 아빠의 손을 잡아준다.
그제야 아빠는 만족한 듯 "체헷!"
웃음인지 기침인지 내뱉으며
아들 손을 꼭 잡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일부러 비틀거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리게 걷는 아빠를
그 아빠 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이 군말 없이 잡아주며 걷는 뒷모습.
널찍하니 딱 벌어진 직각어깨와 조금 긴 팔,
두 남자의 체형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