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우리 집 거실
한문철티비를 보던 중,
1차선 국도에서 역방향으로 추월하다
반대편에서 오던 차랑 박은 차량이 나왔다.
앞지르기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굳이 앞지르고 싶어 하는,
누구나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안달이와 복달이.
평소에도 제일 위험하다 생각하고 싫어하는 운전 스타일인 데다가
마침 남편이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던 게 떠올랐다.
이때다 싶어 기대 있던 등을 일으키며
“여보도 저렇게 한 적 있지?”
장난 섞인 타박, 흘끗 남편을 살폈다.
팔짱을 괜히 한 번 고쳐 끼며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로 답하길,
“… 나는 저렇게는 안 하지~”
회피하려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뻐기는 말투,
약이 바짝 오른다.
“저렇게고 뭐고 어떻게 한다는 게 포인트가 아니잖아~”
아예 남편 쪽으로 돌아 앉으며 말하려는데
“아 알았어 안 할게 안 할게”
돌아오는 귀찮은 말투, 대충 좀 넘어가자는듯한.
나는 이 사람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순간을 안다.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인 주제에 결국
마음이 확 상해버렸다.
“아니 왜 그렇게 말을 해?"
그제야 남편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내 쪽으로 한 번 옮기면서
"아, 그래서 물어본 거 아니야?"
나는 다시 정면으로 돌아 앉으며 입을 닫아버렸다.
마음도 닫혀버렸다.
말없이 계속해서 화면을 응시했지만 보고 있지 않았다.
머릿속은 어떡할까 확 들어가 버릴까 지금? 조금 있다가?
하는 생각으로 바빴다.
"여보는 저거 어떻게 생각해?"
방금 전 대화가 대수롭지 않았다는 듯
이어지는 다음 케이스를 보면서 흥미롭게 남편이 물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는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몰라, 모르겠어. 난 들어가서 잘게”
남편은 앙 다물려 있던 팔짱을 풀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뭐야 싶은 표정으로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래.
나 이것만 치우고 먼저 잘게, 마저 보다 들어와."
먹던 잔과 남은 쓰레기를 주섬주섬 담아
깜깜한 부엌 속으로 가 버렸다.
그런 내 뒷모습을 남편이 보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며 이 기분도 집어 버리고 싶었다.
어둑한 거실을 가로질러 자러 들어가기 전에
눈을 마주칠까 말까, 인사를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벽을 메꾼 프로젝터의 어슴프레 불빛으로
의연한 척 앉아 나를 보지 않는 남편의 얼굴이 낯설다.
“나 잔다- ” 인사했지만
사실 어떻게 나오나 보자 반응을 살폈다 하는 게 맞다.
씁쓸한 듯 답답한 듯 “어어” 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들어와 버렸다.
울퉁불퉁한 마음을 꾸역꾸역 눌러 베고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태은이가 아홉 시 조금 넘어부터 깨서 성화였고
남편이 그런 태은이를 데리고 조용조용 나가는 걸 알았지만
못 들은 척 계속 자버렸다.
열한 시가 조금 넘어서야 일어나 나갔더니
가드룸 안에 태은이 혼자,
사운드북의 버튼을 누르며 놀고 있다.
밥 다 먹이고 옷까지 갈아입힌 상태,
“이쁜 아기야~ 혼자 잘 놀고 있네? 아빠 어디 갔어?”
하는데 남편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다.
몇 걸음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직진해 말없이 안아준다.
"여보 미안해"
토닥토닥.
시야에 천장이 들어오게 턱을 들어 남편의 어깨에 걸친다.
내 턱모양이 움푹 파인 듯 자리 잡힌,
막직하고 따뜻한 어깨.
"나는 그런 식의 대화가 싫어.
으레 하는 부부간 흔한 말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싫어 무례한 거잖아."
"응 맞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응 사과해 줘서 고마워, 나도 미안해. 못되게 말하지 말자."
밤새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이던 미운 얼굴이 무색하게
새로운 날이 되어 소소한 화해를 이뤄낸다.
이 반복을 살면서 이 사람과 셀 수도 없이 많이 하게 될 거다.
그래, 얼마든지!
부부싸움 한 번 없는 부부이고 싶진 않으니까,
전장에서 승리를 위해 생활과 전투를 함께하는 동료
라고, [전우]는 정의된다.
전장만큼이나 치열한 매일의 일상 속에서
승리보다 소중한 가족의 가치를 위해
생활과 전투(!)를 함께하는 동료라니
[부부]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지금
[전우애]라는 사랑의 스펙트럼 어디 즈음에서 투닥이는 중.
대신에 미울 때에도 미워(美WAR)하자.
정말 잘 싸우자.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보자, 어디 갈까?!
방으로 들어와 기꺼운 마음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문 틈 너머로 뭔 장난을 치는지 깔깔
큰 김 씨, 작은 김 씨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구석구석 굴러다니며 까부라진다.
#김전우씨
#잘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