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소의 곁 10화

한쪽 봉우리가 더 높은 하트

너희는 모르길

by FONDOF

키즈카페, 유아 클라이밍존






"잠시 안내말씀 드립니다. 곧 클라이밍존이 오픈됩니다.
클라이밍을 원하시는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클라이밍존으로 오세요."



"클라이밍 한다! 우리도 가볼까?"

"어 좋아!"

명랑한 한마디에 나는 태은이의 손을 잡고 냅다 뛰었다.


우리 앞으로 두 명이 벌써 장비를 착용하고 대기 중이다.

제일 먼저 단발머리 여아가 도전을 앞두고 있다.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위아래 핫핑크 민소매 셋업을 입고

앞머리는 땋아서 귀 뒤로 넘겼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엽다.

안전장비를 착용해 주느라 장정 두 명이 달라붙었다.

아이는 미동도 않고 우뚝 서서 이 지루한 시간에 잘 협조 중이다.

큰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두리번두리번,

자신의 뒤로 몇 명이나 왔나 살펴도 보고

곧 도전할 코스를 올려다도 본다.


땅에서 5미터 정도 올라간 지점에

짧은 클라이밍의 끝을 알리는 은색 종이 달려있다.

나는 태은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올려다보며

“다 올라가면 저거 땡땡땡 치는 건가 봐” 귓속말했다.

태은이는 고개를 젖히다 못해 정수리로 나를 밀어내면서

자신의 몸 보다 다섯 배는 더 올라간 지점을 까마득히 발견하고는

"히야아"

감탄한다.


드디어 안전장비 착용이 끝나고 이제 도전의 시간.

갑자기 어디선가

"그렇지! 잘한다 우리 은우!"

박력 있는 목청으로 아이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순간 소리가 뒤통수를 후려치는듯한 느낌이었달까.


할머니의 목청이 은우라는 아이에게 닿아 전기가 오른 듯

아이는 잠깐 멈칫, 하더니 몇 발 더 올라보기로 결심한다.

이전보다 현저히 느려진 속도로 아슬아슬,

어른 정수리 높이 정도까지 올라가더니 불현듯 뒤를 돌아본다.

이내 땅을 내려다보더니 표정에 순식간에 엷은 공포가 오른다.

아이의 커다란 두 눈이 흔들렸다.


“밑에 보지 마 보지 말어! 은우야 위에만 보고 계속 가 계속!”

응원인지 다그치는 건지 헷갈리는 할머니의 성화,

하지만 아이는 바로 다음 순간 도전을 멈추고

단단히 잡고 있던 로프를 놓아버리며 미끄러지듯 하강한다.


'그래도 꽤 높이 잘 올라갔다, 그치? 누나 멋지다~'

태은이의 귀에 속삭이는데

폭격처럼 쏟아지는 은우할머니의 무자비한 피드백,


“왜 밑에를 봤어 그르니까 못허지, 밑에 보면 겁먹어가지고..
아니 지난번에는 좀 더 올라갔잖어~ 그때는 밑에 안 봤잖아 그쟈?"


은우는 땅이 아니라

잔소리로 가득한 뾰족뾰족한 글자더미 위로 떨어진 거 같았다.

그러는 사이 은우라는 아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의 또 다른 손주, 윤우라는 아이가 안전장비를 착용한다.


"인제 윤우형아 봐봐 형아는 이제 종 친다?
형아는 저 꼭대기까지 가서 종 치는 사람이여.
저 봐봐 형아는 밑에 안 보잖어.
형아가 종 칠 거여, 형아 종 치는 거 보자잉?


'... 내가 다 서운하네.'


은우는 몸을 베베 꼬며 할머니의 손을 살살 돌려 뿌리치고는

그래도 할머니 곁에 서서 멀뚱히 오빠를 올려다본다.

할머니는 앉아서 시선은 윤우에게 고정시킨 채

허공으로 더듬더듬 은우의 손을 찾는다.


"형아처럼 할 수 있겄어? 못허지?
아이고 그러게 밑에를 보지를 말라니까는."


나는 홱 한 번 뒤돌아서 '그만하시죠?'

해버릴까 말까

찰나의 시간에 억겁처럼 머물렀다.


드디어 윤우가 첫 발을 디뎠다.

자신을 향한 할머니의 무한찬사가 귀에 때려 박혔을 텐데

한 번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 숙인 채 안전장비가 채워지는 것만 응시하던 아이,

그러고 보니 은우도 윤우도,

키즈카페에 온 예닐곱 살 아이들 치곤 너무 차분하다.


한쪽 봉우리가 더 높은 할머니의 하트를

은우가 모르길,

그리고 윤우도 모르길.


"봐 인제 윤우형아가 갔지 갔지!
오매 벌써 저까정 올라간다, 봐라 인제 종 친다, 종 친다!
은우야! 은우야아! 어디가! 형아 봐야지!”


내 곁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은우가

저기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쌩 가버렸다.

찰랑이는 단발머리가 참 예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종을 울리지 못한 채 윤우가 로프를 놓아버렸다.






#누구를위하여종은울리나

#종치려고왔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