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소의 곁 16화

엄마의 딸

딸의 엄마

by FONDOF

롯데 아웃렛, 야외 정원







저녁 8시 30분경,

아웃렛 클로징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

놀이터 곳곳에서 "가자~" 소리가 튀어 오른다.

아쉬운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철봉에 매달려 몸을 축 늘어트리거나

한 번이라도 더 뛰려고

무릎이 가슴팍에 닿도록 맹렬하게 마지막 트램펄린을 구르고 있다.

"어디 있어? 이제 집에 가야 한다니까!"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의 엄마가 눈살을 한껏 째푸리자

놀이터에서 놀기에는 많이 커버린 듯한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헤실거리며 터덜터덜 뛰어나온다.


"우리도 가자, 태은아~"

가로등 주황 불빛으로도 보이는 선명한 땀방울,

"우리 이제 어디가? 엄마! 편의점 갈 거야?"

"이제 늦었어, 집에 가야지."

"힝!"


그렇게 신나게 놀아놓고도 집에 갈 때가 되면 매 번 아쉬워하는 존재,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력이 최고치에 달한 네 살 남자아이에게

"아빠가 그럼 무등 태워줄게!"

달래는 남편과 아들을 뒤로하고

나는 천천히 앞장서 걸었다.






"아니이.. 그러지 좀 말라고.."

나지막한 한숨 섞인 목소리에 시선이 따라가 보니

30대 초반 정도 젊은 엄마와 그녀의 엄마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유모차 한 대를 사이에 두고 서있다.


둘이 안경 쓴 모습부터 호리호리한 체격에

평균을 훌쩍 넘는 큰 키까지

누가 봐도 모녀지간이다.

나는 그들 곁을 일부러 빙 둘러 지나며 흘끗 곁눈질로 훔쳐봤다.

'하관이 특히 닮았구나!'

얇은 입술이 기다란 입매가 인상적인 생김새,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뭔가 실랑이를 한창 벌이고 있다.



"... 하지 말라고 했잖아. 엄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요즘 그렇게 안 한다고."

유모차에 탄 아이는 가림막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짐작으로 돌을 조금 지난 거 같았다.

아이에게 얇은 담요를 덮어주며

애꿎은 담요 끄트머리를 내내 만지작 거리는 아이 엄마와

그런 딸의 핀잔을 우두커니 서서 온전히 다 들어주고 있던 친정 엄마.


“아니이 아직 아기잖아. 좀 봐줘도 되지.”

“엄마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많이 찾아본 줄 알아? 그러면 안 좋대.”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이제."

아, 저건 더 이상 싸우기 싫어서 하시는 소리다.

제삼자인 나도 단박에 알아들을 정도로 또렷한,

대화 종결 의지.






하지만 이미 물꼬를 튼 대화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고,

천천히 유모차를 밀면서 주차장 쪽으로 가면서도

야트막하게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아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가르쳐 줘야지.. 다 받아주지 말라고 진짜.."



짧은 순간,

나는 그녀의 마음이 그냥

[알아져] 버리는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sns만 열어도

유용하고 양질의 육아팁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무자비하게 뜨는 세상이다.

자극적인 썸네일, 죄책감을 찌르는 제목들..


저 엄마도 그런저런 육아 관련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접했을까,

잠든 아이 옆에서 어슴프레 핸드폰 불빛을 끄지 못하고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

[우리 아이, 이기적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훈육,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하는 류의 영상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겠는가.


그렇게 잠을 쪼개가며 동냥한 육아지식들을

일상 속에서 적용하려고 애쓰는 하루하루,

매뉴얼도 프로토콜도 정답도 없는 육아의 길 위에서

가까운 이가 협조하지 않는다는 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피로와 두려움, 부담 등의 감정이 깔려있다는 것을

동지애로 알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는 어느새 내 앞을 질러 저만치 가고 있다.

나는 이 모녀가 불고 있는 풍선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터질세라 긴장으로 발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 그래 알겠어. 인제 안 그럴게."



담요 밖으로 삐져나온 아기의 발을 한 번 만지작,

다시 담요를 덮어주며 하시는 말씀에

'와...'

모를 안도가 들었다.


원래 쏟아 부운 쪽이 늘 머쓱해지는 법,

아기 엄마이자 딸인 여자는 그제야 입을 멈춘다.


"가, 고만. 가자."

엄마가 된 딸을 타박하지 않으신다,

초보 엄마인 딸의 볼멘소리를 오롯이 다 받아주신다,

등을 토닥여 주시네...



엄마는 왼 손, 엄마의 엄마는 오른손.

모녀가 한 손씩 유모차를 나눠 잡고

어깨를 맞닿으며 걷는다.

내 곁을 지나 천천히 걸어가는

두 사람의 닮은 뒷모습을 보며

싱긋, 웃음이 났다.





그리고 언제 저렇게까지 간 건지

저 멀리에서 얼른 오라며 유리문을 붙잡고 손짓하는

남편과 그 머리 위로 쏙 나온 아이를 발견하곤

어 미안! 하며 얼른 뛰어갔다.






#엄마딸

#딸엄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