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그리울 너와 나의 네 살

손잡고 가보자, 다섯 살

by FONDOF
2025년,
[엄마 나이 네 살]을 돌아보며.







과연 올해가 시작되며

우리의 일상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훈육]이 되겠다.




페이스북에 [과거의 오늘]이라는 기능을 통해

작년 요맘때의 사진과 내가 썼던 글을 보니

“너는 내가 믿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증거야.”라는 글귀가 있었다.

그 마음은 물론 지금도 변함없고 1년만큼 키가 자라기도 했지만

1년 전의 일상에서처럼

매일같이 그 감사함을 곱씹는 요즘인가? 하는 자문에

씁쓸한 자답이 나온다.




내게는 30여 년의 인연으로 묶인 좋은 언니가 있는데

얼마 전 그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언니의 딸은 이제 10살,

태은이가 내 뱃속에서 쌀알만 할 때부터

한결같이 태은이를 사랑해 주던 아이이다.

자주는 못 봐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온 신경을 태은이에게 쏟아주는

그야말로 사랑 가득한 누나,

그런 지안이가 그날 나에게 물어왔다.


“이모, 태은이도 이모한테 혼이 난 적이 있어?”
“어휴, 그러엄. 태은이도 이모한테 호오오오온난적 많지!”


나의 대답에 지안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었던 눈치,

그리고 곁에 있던 언니가 첨언하기를

“요요 요 이쁜 애를 혼낼 게 뭐 있다고?”


아이고 언니, 몇 년 지나서 언니도 다 까먹었나 본데

요맘때의 아가도 혼날 일은 투성이라우.

하며 웃어넘겼지만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이 순간을 붙들고

씁쓸한 감정에 머물러 있었다.





'혼내는 것도 혼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구나.'

'혼 좀 그만 내고 싶다, 혼내다가 우울증 올 거 같아.'

'방금 혼낸 게 과연 정당한 훈육이었나? 아니면 내 분풀이었나?'

.

.

.

아이가 네 살이 되면서부터

속으로 수없이 해왔던 혼잣말들.



결국 나의 씁쓸함은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

매일같이 커져만 가는데

아이를 대하는 내 목소리도

커져만 갔다는 데에 있다.



아이를 보며 세상의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을 실감하던,

내동 웃는 낯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고

마냥 예뻐만 할 수 있었던 시기.

이를테면

그때의 아이가 그립다는 게 아니라,

그때의 내가 부럽다는 기분이랄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혼기 시작한 해,

아이를 만나고 처음으로 혼기 시작한 해.

우리에게 2025년은

그렇게 갈무리될지도 모르겠다.








올 초 1월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16kg를 구가하던 단단하고 꽉 찬 93cm 인간 태은이가

와다다다 달려가 남편에게 안겼는데

그 중량가속도가 얼마나 센지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태은아, 하지 마! 라고 했다.


그때 태은이는 약간 서운한 듯 민망한 듯

“히잉 이것도 하지 말라고 하네..?”

라고 혼잣말을 하며 돌아섰다.


“태은아, 엄마 아빠가 요즘에 태은이한테 하지 말라는 게 좀 많아졌지? 그래서 좀 어려워?”

하고 남편이 물으니

아이는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태은이가 이제 많이 컸고
하면 안 되는 것도 늘어나긴 했지.
엄마 아빠가 어떨 때 태은이한테 안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지
딱 세 개만 정해줄게.
어때, 같이 기억해 볼래?”
“좋아!”


“첫 번째는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야.
태은이가 지금처럼 막 뛰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하면 다치고 아플 수가 있어.
그리고 태은이가 누군가를 밀거나 때리거나,
누군가에게 뭘 던진다거나 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야.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가 있거든.
그러니까 위험한 행동은 안돼,
이게 1번이야.”


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해서 들었다.

검지손가락을 꼿꼿하게 펴 들고 1번! 이라며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거 같았다.


“두 번째는 [무례한 행동]을 했을 때야.
엄마나 아빠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다른 모든 어른들에게
태은이가 버릇없이 굴거나 못되게 말하거나 그러면 엄마 아빠가 혼낼 거야.
태은이는 이제부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선을 지키는 게 뭔지에 대해
많이 많이 배우게 될 거야.
이게 2번이야.”
“무례한 거! 이게 2번!”


아이는 중지손가락을 마저 펴서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힘차게 2번! 하고 돼 내었다.



“마지막으로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뭐지?
그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렇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야.
태은이가 아침에 아빠가 준 비타민 하나 먹었는데
또 먹고 싶어서 엄마한테는 오늘 비타민 안 먹었다고,
하나 달라고 하는 그런 거 말이야.”
“어, 또.. 내가 뭐 쫌.. 친구 거 가져갔는데 안 가져갔다고 하면? “
“그렇지, 그런 것도 다 거짓말인 거야. 알겠니? 이게 3번이야.”
“3번, 거짓말하는 거..”


아이는 검지 중지 약지를 빳빳하게 힘주어 펴고는

3번.. 하고 돼 내었다.



“이렇게 딱 3개에 대해서만 앞으로 엄마 아빠가 안된다고 할게.
잘 기억할 수 있겠지?”


우리 가족은 그렇게 연초에 훈육계약 같은 걸 맺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언젠가 태은이와 함께 얘기해 보자, 하고

일찍이 아이를 혼내는 기준에 대해서 우리 부부는 많은 대화를 해왔었다.

언제라고 딱히 정해놓진 않았었지만

언제고 이런 말을 꺼낼 때가 있을 거라고.



1번 2번 3번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기억하는 게

태은이에게는 잘 맞는 방법 같았다.

그리고 나도 남편도,

잔소리와 훈육의 경계에서

좀 더 집중해서 아이를 가르칠 수 있었다.


“태은아, 안돼! 멈춰! 위험해!”
“어..! 엄마 미안! 위험한 거야? 1번이지?”
“태은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다시 말해봐.”
“어어.. 아빠, 이거 무례한 거야? 2번이야?”


우리의 매일매일에

이런 장면들이 많아졌다.








사람 많은 곳에서 엄마아빠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지 말 것,

자고 일어나면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 줄 아는 것,

식사할 때는 일어나거나 돌아다니지 않을 것,

줄을 서서 차례를 지킬 것,

친구가 싫다고 하면 안아주고 싶어도 멈출 것...

.

.

.

.

.

네 살은

이 모든 것들을 할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하는 나이였다.



주차장에서 호기심에 뛰어가는 아이를
불호령으로 멈춰 세웠던 날이 떠오른다.
아이의 놀란 표정이
뒤통수에서도 보였던 날이다.


만나자마자 반갑다고
달려가 친구를 안아주다가 그만
뒤로 꽈당 넘어트린 날도 있었다.
엉엉 우는 친구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미안해! 엄마 미안해!
안절부절못하던 눈빛에
나도 속으로 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단지 내에서 마주치는 이웃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난 한 해이기도 하다.
예쁘다 신통허다 쓰다듬어주시는 손길,
용돈이며 간식이며 황송하게 받아 들던
고사리 손도 있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하나 사주니
계산대에 까치발로 올려놓으며
"여기 있습니다." 하고는
깐 비닐을 어디 버리나 두리번 대다가
"혹시 쓰레기통에 좀 버려주시겠어요?"
하던 모습은
나보다 성숙했다.



네 살이 배워야 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광대하고 방대했다.




아이가 조금씩 나의 품을 떠나며

세상을 자신의 품에 품는 법을 배운다.


나는 소원등을 밤하늘에 띄우듯 그렇게

아이를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놓아주고 싶다.

등불의 온기로 두둥실 훤하게 떠올라갈 아이의 뒷모습을

나는 두 손 모으고 서서 언제까지고 응원할 것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또 혼내고

또 혼나야겠지만

그 때가 되어 이런 나날들을 돌아봤을 때

아이의 얼굴이 너무 짠하지는 않았으면,

내 목소리에 눈살 찌푸려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엄마 나이 다섯 살을 살아야겠다.




이 시기를 큰 상처 없이 잘 지나온 우리에게

수고했다고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독려하고 다독여주고 싶은

2025년의 끝자락이다.














#크느라애썼다

#너도나도

#엄마나이네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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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