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생일
2026년 1월, 48개월
2023년 1월 20일,
첫 번째 생일의 기록
2022년 1월 20일은 목요일이었다.
나는 5층 입원실에 누워서
한시라도 빨리 6층 신생아실에 있는 우쥬를 보러 가기 위해
열심히 다리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눕혔다 일으켰다 하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면회시간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찍어온 영상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면서
'내가 아기를 낳았다.. 내가 아기를 낳았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이 담겨있는 한 문장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계절이 옷을 네 번 갈아입고
달이 얼굴을 열두 번 바꾸어
꼬박 1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목이 살짝 늘어난 반팔티에
고무줄바지를 즐겨 입으며
매일매일 요 뜨끈뜨끈한 장난꾸러기 녀석과
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마주 보고 까불고 노래하고
많이 많이 웃고
더 많이 많이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24년 1월 20일,
두 번째 생일의 기록
기는가 싶더니 어느새 쏜살같이 뛰어노는 태은이를 보시던 아빠가
다 자라 마흔 중반의 나이가 된 나와 나의 오빠를 가리키며
“너희들도 저런 때가 있었거든?….. 잠깐이야- 진짜 눈 깜짝할 새야”
라고 하시곤 한다.
그 ‘잠깐’의 위력을,
오늘로 두 돌을 맞이한 태은이를 보며
엷게 실감한다.
무거운 배를 감싸고 떨리는 마음으로 분만하러 갔던
그 차가운 새벽이
벌써 2년 전이라니.
우리는 대체로 까불고 깔깔 웃는 일상을 지내지만
그런 중에 어느 날은 서로가 야속하고 버겁다.
그래서 어느 날은 못 들은 척도 하고
어느 밤에는 등을 돌리고 자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 웃음에
내 마음속 사랑이 샘솟고,
안아주는 그 손길에, 폭 안기는 그 체온에
나는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빠랑 마주 앉아
배가 아프도록 웃어젖히는 태은이의
천사 같은 웃음소리,
그리고 그런 태은이를 바라보는
남편의 선한 얼굴,
그 장면 속 함께 자리하고 있는 내 마음은
온통 감사로 가득 찬다.
“감사합니다.”
숨 쉬듯 내뱉는 기도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이 되었고
또 내일을 만든다.
무탈히 오늘을 맞이한 너의 생일을 축하해!
너의 삶에 내가,
또 나의 삶에 네가 전부인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
너를 키우는 이 모든 일들이
네가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우뚝 설 날들을 위한 과정이란 걸
잘 알고 있어.
그런 날이 와도 너는 여전히 내게 1등이야!
그런 날들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랑하며 응원하며 곁을 지킬게!
고맙고 사랑해 우리 아들,
너의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해.
2024년 1월 20일,
세 번째 생일의 기록
얼마 전, 미피전시를 갔다가
14개월 남아와 둘이 온 엄마랑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가 태은이를 보며
“36개월이면 저렇게 말을 잘하게 되는군요”
라며 자신은 아직 까마득한 미래를 미리 보기 하듯
감탄 반 걱정 반을 토로했다.
“돌아보면 말을 못 할 때 오히려 더 아이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였던 거 같아요,
뭔 말인가 알아들으려고 더 애쓰고.
그러니 고만할 때가 되게 귀한 시기더라고요."
라고 하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가 예뻐 못 견디겠다는 듯 시선을 아이에게서 떼지 못한 채
내게 물었다.
"지금 요 때가 제일 예쁜 때라고도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그 말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채기처럼 대답했다.
"어휴 갈수록 더 예뻐요.
계속계속 또 예뻐요."
과연 나도 같은 걱정을 하곤 했었던 거 같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다! “라고들
스치는 어른들 마다 툭 툭 던져주셨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말은
태은이가 신생아일 때도 들었고,
돌일 때도 들었고,
18개월 때도 두 돌 때도
언제고 늘 들어왔던 말이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들을 말이겠지.
그게 참 그런 게
마치 [지금이 제일]이라고 하면
이제 정점을 지나 예쁨 내리막인 거 같아서
그래서 묘하게 조바심이 나는 말이다.
그게 아니고 그냥
어제는 어제대로,
오늘은 오늘대로
또 내일은 내일대로
아이는 영원히 제일 예쁜 존재라는 걸
엄마나이 세 살 정도 되니 알아진다.
영원한 빛을 뿜어내는 보석처럼 아이는
나와 남편 사이에서 갑자기 어느 날 뿅 나타나
가장 강력한 접착제가 되어줬고,
오차 없는 마지막 퍼즐조각이 되어줬다.
내 손과 남편의 손을 하나씩 가만히 가져가
자신의 무릎에서 만나게 해주는 모습에서
묘한 신비까지 느껴진다.
아이와 함께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그를 더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김태은,
형언할 말이 부족한 이 존재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었고
동시에 제일 겁 많은 걱정쟁이도 되었다.
세상 무모해질 수도 있고
세상 섬세한 면도 생겼다.
더없이 거칠었다가도
한없이 따뜻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나를 보며
제법 멋진 사람이잖아? 자기애가 솟구치기도 했고,
아이를 대하는 내 모습이
못나고 부끄러워 엉엉 울었던 날도 있었다.
이 존재는 분명 나를 몇 번이나 죽이지만
그 무수한 횟수에 꼭 +1을 더하여
끝내 나를 살려낸다.
1월 20일.
오늘은 태은이가 태어난 날이다.
2022년 1월 20일 목요일에 세상과 만난
태은이의 네 번째 생일.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반드시 엄마가 되고 싶었고
언제고 누군가의 엄마로 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내 인생 초유의 목표였다.
그렇게 맘고생 한 번 없이
마흔한 살의 나에게 찾아와
9개월 간 그 흔한 입덧도 않고
아무 문제도 없이
그저 말갛게 지내다
예정일 그대로 세상과 만난 아이.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 같았다.
긁어 부스럼 같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태은이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더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태은이 이렇게 셋으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차원의 어떤 신비로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만난 우리 세 사람이 맞이하는,
우리가 [우리]가 된 네 번째 기념일.
오늘 새삼
아이의 생일마다 썼던 기록들을 읽으며
이전까지의 결하고 조금은 다른
새로운 감정이 추가되었음을 깨닫는다.
뭐라 명명하면 좋을지 모를 이 감정.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나를 고이 접어
그 공간에 아이를 들였다.
아이는 그 안에서
안전하고 명랑하게 자라
뱃속에서 발차기를 했을 때처럼
어느새 좁아진 공간을 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 품 안에만 머물렀던 아이를
아이 스스로의 공간에 옮겨심기해줘야 하는 때.
그러면서 고이 접어뒀던 나라는 존재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공간의 주인이 천천히 바뀌어 가고 있다.
네 번째 생일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이만큼 성장한 너의 눈부심에 박수를 보내며
나도 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가꿔야지.
아이야,
우리 함께 영글어가자!
며칠 전
밤 새 눈이 내렸다.
아침에 커튼을 여니 세상이 온통 하얬다.
부스스한 얼굴로 까치머리를 하고선
창 밖을 한참 보더니
"엄마! 온 도시가 온통 눈으로 뒤집혔네!"
라던
이제 다섯 살이 된 아이.
그 의기양양한 한 마디에
나는 무방비상태로 웃음이 터졌다.
나의 세상도
아이의 사랑스러움으로 온통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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