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면 주먹 날아온다.
2025년 10월, 45개월
이 즈음부터는 키즈카페에 가면
내가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친구와 구석구석 누비며 잘 놀게 되었다.
나는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 없이
같이 간 친구의 엄마와 앉아
떡볶이와 감자튀김 정도 시켜놓고
커피를 홀짝이며 몇 시간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야말로 키즈카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다가
이따금씩 자리로 달려와
목구멍까지 들어찬 숨을 쉬느라
콧구멍이 한껏 커다래진 웃긴 얼굴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다시 전력질주로 놀러 가기를 반복할 뿐이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또다시 어디선가 달려와
감자튀김을 몇 개 집어 입 안에 욱여넣고
기름기로 미끌해진 손을 옷에 아무렇게나 슥슥 닦으며
"우리 또 놀러 가자!"
"좋아!"
하며 뛰어나간다.
엄마들은
땀으로 반짝반짝한 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어 그래, 또 와~"
하고는 다시 수다를 이어간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같이 왔지만 몇 마디 얘기도 못 나누고
각자의 원숭이를 좇아다니며
카페놀이 손님 역할도 하고
장바구니에 장난감 채소를 잔뜩 담아주고
좁다란 미끄럼틀에 어른 몸을 낑겨 같이 타주고
그러면서도 그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느라
핸드폰을 들이대 사진 찍기 바빴던 시절이었는데
이만큼 커버린 아이들을 실감하며
그런 때가 있었다니... 새삼스러워진다.
그날도 나는
같이 간 유하의 엄마 혜미와 마주 앉아
이 사소한 격세지감을 논하며
감격에 겨워 신명 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엊그제 있었던 일들부터 시작해서
주말에는 뭘 하고 보냈는지,
아이 옷은 요즘 어디가 예쁜지,
내년부터 시작될 기관생활은 어떨런지...
외동아들 키우는 처지의 공감대로 빚어지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버금가는 마마비안나이트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 그래서 남자 애들은
일단 진정하는 법을 계속 연습해야 하더라고."
"그래 맞아,
혼내는 것도 진정시키는 게 반이야."
"반 이상이지.
진정만 되어도 반 이상 온 거야."
"맞아 맞아.
아니, 흥분한 상태에서는 아무 말도 안 들리나 봐?"
"당연하지.
그래서 나는 요즘 일단 눈부터 감으라고 하거든.
그리고 심호흡 한 열 번 하고."
"우리 애는...
눈 감으라고 하면 안 감아. 싫대.
어떻게 해야 해?"
"천 번 했으니 이제 만 번 더 해야지, 뭐..."
"아..."
우리는 작고 불안정한 키즈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몸을 기울여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누구 보다 서로의 고충을 잘 알고 이해하기에
매 번 반복되는 레퍼토리도 그저 새롭다.
"아니 그래도 진짜 많이 큰 거야.
작년 이맘때 생각해 봐.
우리 이렇게 마주 앉아서 얘기도 못했어."
"어. 그치.
유하가 나 안 보이면 일단 울고 봤으니..."
"너 어디 있나 하고 찾아보면
맨날 애들 타는 미끄럼틀 같은 데 올라가 있었지.
이렇게 어른 의자에 앉아보기나 했냐고."
"맞다 맞아. 휴. 많이 컸다 진짜...
어, 언니...? 태은이 혹시...?
아이고 태은아!"
마주 앉아 나를 보던 커다란 혜미의 두 눈이
내 왼쪽 어깨너머를 보며 더 커다래지기에
나도 놀라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 내 아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정지마법이라도 맞은 듯
빳빳하게 멈춰 서서
엉덩이를 쑥 내밀고
새빨개진 얼굴,
아랫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어...? 어어어 태은아! 태은아태은아!"
강력한 슬픈 예감이 섬광처럼 나를 뚫고 지나갔다.
이건 백퍼 응가다...!
나는 그대로 일어나 태은이에게 갔다가
아, 아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가방에서 여벌옷과 물티슈를 꺼내 겨드랑이와 목에 끼고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대로 들어 올려
화장실로 달려들어갔다.
'그래, 오늘 변을 못 보고 나온 게 영 맘에 걸리더라니...
하... 아까 화장실 한 번 데려올걸...'
뒤늦은 후회만 염불처럼 되뇌며
맨 안쪽 칸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갔다.
바지를 내리자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진 아닌 것이,
이 와중에 변질이 좋아서 속옷 빼고 다른 곳에 묻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를 아이용 변기에 앉히고
타이슨의 주먹같은 변을 예의주시하며
신중하게 속옷과 바지를 벗겨내는 데 성공했다.
'... 됐어! 대참사는 면했어...!'
태은이가 볼일을 마저 보고 나면 일단 물티슈로 닦아주고
그다음에 나머지 변도 변기에 같이 내려버리고
그다음으로... 팬티는 휴지로 뚤뚤 싸서 지퍼락에 넣어 버려야겠다...
찬찬히 머릿속으로 순서를 시뮬레이션하고 있는데
"엄마 미안해! 화 안 났어...?"
현장을 발각당했을 때부터 내 눈치만 살피던 태은이가
내게 묻는다.
괜찮다고, 잘했다고, 옷이야 갈아입으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이런 순간에 아이를 혼내고 다그치면
그거야말로 평생에 걸친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들었다.
무엇보다
화는커녕
지금 이 순간이
언제고 유쾌하게 회자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 왜 나, 태은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근데 앞으로는 너무 노느라 정신 팔려서 응가 마려운 것도 참고 그러면 안돼, 알겠지?
다음부터는 엄마랑 꼭 화장실부터 들렀다가 놀자?"
"어! 알겠어!"
태은이는 한결 씩씩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내가 뒤처리를 마무리할 동안 뒤돌아서
화장실 안쪽 문에 붙은 안내문의
글자를 검지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아기가! (수압이)
실수! (약해)
할 수.. 있으니? (변기가 자주)
너무! 많이! (막힙니다.)
혼내지.. (휴지는)
말으시구? (휴지통에)
쪼꼼.. (넣어)
헤헤헤 (주세요.)
#브라보
#엄마나이다섯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