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석에서 직관하는 너의 무대

다섯 살 세상

by FONDOF

2025년 말 ~ 2026년 초, 47~48개월 고 즈음









어느 주말 아침,

실컷 늦잠을 자고 10시 반쯤 일어나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켰다.

닫혀있는 안방 문 밖으로

거실에서 깔깔 웃는 남편과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안녕 김씨들아? 굳모닝! 하며 문을 열었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뒹굴뒹굴하던 큰 김 씨와 작은 김 씨가 나를 보며

환한 얼굴로 손을 들어 흔들어 준다.


“엄마! 내가 뭐 웃긴 얘기 하나 만들었어!”
“으응? 그래? 태은이가 직접 만들었어?”
“어 여보, 들어봐. 진짜 웃겨.”


아이는 수천 관객 앞에 서기 직전의 코미디언의 심경으로

두 손을 깍지 끼고 입에 한껏 힘을 주어 웃었다.

빨간 입술이 한껏 벌어져 하얀 치아가 다 보인다.

뭔데 뭔데? 하자 회심 가득한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말했다.




“말은 말을 못 해!”











요즘 나의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는

각양각색의 유아용품 알고리즘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어린이 소파.


마침 얼마 전 소파며 테이블이며

가구들을 전부 재배치해서 거실 분위기도 좀 달라졌고

아이도 아이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한 가격의 어린이 소파를 둘러보고 있던 차였다.


정해놓은 버젯 안에서 맘에 드는 걸로 몇 개 찾아놨었는데

그런 나의 활동을 감지(!)했는지

알고리즘은 나에게 새로운 소파를 보여주었다.

마치 내 성향을 전부 파악한 퍼스널 쇼핑 매니저가 "이건 어떠세요?"라는 듯.


나는 단번에 그 소파에 마음이 꽂혀버렸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다른 소파들은 시시해 보였다.

문제는 그 소파가 나의 버젯을 2배 가까이 뛰어넘는다는 사실,

그렇다면 한 번 가서 보기나 하자! 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매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유려한 곡선으로 아이가 어떻게 앉아도 안정적이었고,

톡톡한 질감에 너무 유아소파스럽지 않은 디자인과 색감..

원망스럽게도 실물로 보니 더욱 맘에 들었다.


"이 소파 어때, 태은아? 맘에 들어?"
"어! 좋아! 나 파란색으로 살래!"
"그래? 이 소파가 좀 비싸서 이거 사면 이제 당분간 장난감은 못 살 텐데 괜찮겠어?"
"어, 엄마. 나 이 파란 소파가 좋아."
"알겠어, 엄마도 맘에 들어. 그럼 이걸로 사자."


그래, 기왕 사는 거 눈에 밟히는 거 사야지.

이 참에 장난감도 좀 덜 사고 돈은 유한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좀 알려줘야겠다.

그렇게 나는 빛 좋은 경제관념을 다짐하며 소파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어김없이 아이의 [장난감 한 개만 사줘]가 시전 되었다.


"안돼, 태은아. 오늘 아주 비싼 소파를 샀잖아?
그래서 우리는 이제 돈이 없어."
"(울먹울먹) 그럼 내 장난감은?"
"장난감도 당분간 살 수 없어."
"(청천벽력) 아 안돼.
그럼 내일은? 내일 사러 가자!"
"내일도 없지,
돈이 모이려면 몇 날며칠 안 쓰고 아껴서 모아야 해."
"(궁여지책) 그럼 아빠가 사주면 되잖아!"
"아빠도 없지.
엄마가 돈 없으면 아빠도 없고,
아빠가 없으면 엄마도 없는 거야."
"(울화통) 아 그럼 돈 언제 생겨!"
"글쎄, 그건 며칠 지나야 해.
돈이 없는데 어떻게 사."







"... 아 그럼! 돈을 좀 사!"









그날도 아이는 [Blippi]라는 최애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벌써 몇 번을 봤는지 블리피의 말까지 전부 외워버린,

블리피가 캠핑을 간 에피소드를 시청 중이었다.


블리피가 캠핑 배낭에서 크래커와 마시멜로, 초콜릿을 꺼내서

스모어를 만들어먹는 장면이 나오자

"엄마! 나도 스모어 먹어봤는데!"

하며 입맛을 짭짭 다신다.


"맞아, 트리하우스 갔을 때 태은이가 직접 만들어먹었지?
맛이 어땠어?"
"너무 좋았어.
나 트리하우스 또 갈래!
나 스모어 또 먹고 싶어!"
"그렇구나,
스모어는 트리하우스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거니까...
다음에 또 가자."
"좋아,
나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도 스모어 만들어드릴 거야!"
"멋진 생각이네."


짭짭.

애꿎은 입맛을 하염없이 다시며

블리피가 부르는 캠핑 노래를 따라 부른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얘길 나누자~
그래서 캠핑은 즐거워
캠핑 가자, 모두 다 함께!
낚시도 배우고 사냥도 해보자~
캠핑 가자 모두 다 같이!



블리피는 특유의 뒤집어지는 웃음소리와 발랄한 말투로 아이들을 사로잡는데

중간중간 툭 툭 던지는 질문이 블리피 화법의 특징 중 하나이다.


"(영상 속 블리피) B! 이건 알파벳 B예요!
제 이름에도 있어요, 바로?"
"(화면에 대고) 블리피!"
"(영상 속 블리피) 맞아요! 블리피!
비 엘 아이, 피 피 아이!
첫 글자가 바로 B예요!"
"(나를 보며) 엄마! 나 B를 맞췄어!"


'와아 대단하네! 짝짝짝'


"(영상 속 블리피) 자, 그럼 스모어가 다 익을 동안 저는 무엇을 할까요?"
"(화면에 대고) 춤!"
"(영상 속 블리피) 바로바로~ 춤을 출거예요! 유후!"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는 잠시간 멈칫하더니

화면 속 춤을 추는 블리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에게 물었다.












"엄마 근데! 블리피가 내 말 들을 수 있을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