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슥, 하면 너는 착!

다섯 살, 우리의 아침

by FONDOF

2026년 1월, 47개월










부스럭 인기척에 잠에서 깬다.

내 왼쪽 겨드랑이에 머리를 파묻고 자던 아이가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엄마... 아침이야?"

나는 감은 눈으로 더듬더듬 머리맡에 있을 핸드폰을 찾았다.

한쪽 눈만 겨우 가늘게 떠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8시 13분.

"아니야, 태은아. 조금 더 자야 해."
"힝 나 그만 자고 싶은데..."
"어제도 늦게 잤잖아, 한 시간만 더 자자. 자자..."

나는 칭얼대는 아이를 품으로 끌어안고 등을 몇 번 토닥이다 다시 잠이 든다.

.

.

.


"... 엄마 나 이제 다 잤어."

좀 전 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아이가 다시 나를 깨운다.

또다시 손을 더듬어 네모 묵직한 핸드폰을 쥐어들고 시간을 본다, 오전 9시 8분.

"그래... 많이 잤다, 이제 고만 자고 되겠어."
"엄마아... 히힣"

아이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내 얼굴에 바짝 갖다 댄다.

내 시야는 온통 아이의 머리통으로 검어진다.

"아이고 탱탱이, 잘 잤어?"

나는 양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감싸 쥐고 뽀뽀를 해준다.

나를 닮아 톡 튀어나온 이마의 곡선을 따라 이어져 내려오는

코가 시작되는 지점, 눈과 눈 사이 그곳.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아이의 미간에서 항상 예쁜 냄새가 난다.


"엄마, 나 이제 나가서 놀아도 돼?"
"으응. 근데 엄마는 조금만 더 자야 하니까 혼자 놀고 있을래?"
"어, 알겠어!"


아이는 어쩌면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저렇게 금방일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그대로 다시 누워 잠이 드려다가

"아, 태은아! 쉬! 쉬 하고 놀자."
"나 쉬 안 마려운데?"
"에이 그래도 자고 일어났으니까 쉬 해야 해. 얼른."


나는 주섬주섬 겨우 몸을 일으켜 아이 손을 잡고 화장실 앞으로 가서

아이를 들여보내고 문간에 몸을 기대어 드드드 주저앉는다.

아이는 혼자서 바지를 내리고 까치발을 들어 변기에 쉬를 한다.

밤새 참은 쉬가 제법 많이 나온다.

매일 들어도 귀여운 소리에 옅게 웃음이 난다.


"다 했어, 이제."
"응, 잠깐만 기다려."

나는 다시 문간에 몸을 기대어 끙차 일어나서

아이를 몇 번 털어주고 바지춤을 올려준다.


"이제 놀고 있을게?"
"그래... 고마워..."

.

.

.


"... 엄마아."

나를 깨우는 세 번째 목소리,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 할 때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9시 47분.

"응 엄마 일어났어. 태은이 혼자 잘 놀고 있었네, 너무 고마워."
"엄마, 나 뭐 먹고 싶어. 배고파."
"배고프지? 엄마가 얼른 밥 줄게. 잠깐만!"


겨울 이불은 커다랗고 묵직하다.

바작바작 기분 좋은 소리가 나는 이불 속,

봄처럼 포근한 공기를 박차며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오늘 메뉴는 김밥으로 하자.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 멸치볶음, 치즈 한 장을 꺼낸다.

나는 먼저 달걀을 그릇에 풀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다.

그 사이에 냉동실에서 김밥 김을 한 장 꺼내

깨끗한 도마 위에 깔고 김밥을 말 준비를 한다.

밥을 한 주걱 퍼서 들기름과 소금을 한 꼬집 넣고 잘 섞어준다.

김밥 김에 밥을 고르게 퍼뜨리고

먼저 치즈를 반으로 잘라 기다랗게 깔아준다.

그 위에 따뜻한 스크램블 에그를 얹어주면

치즈가 기분 좋게 녹아 속재료들을 어우러지게 해 준다.

마른 멸치를 김밥 위에 솔솔 뿌리고

김밥을 꾹꾹 눌러 말았다.

마지막으로 들기름을 숟가락에 조금 덜어 김밥 등에 발라주고

새끼손톱 정도의 두께로 썰어준다.


포크를 챙겨서 아이 자리 앞에 놔주고,

"태은아 이제 식탁 의자로 와. 물도 가지고 올라와."
"알겠어."


아이는 밤 새 침대 머리맡에 뒀던 물병을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는다.

나는 포크를 아이 손에 쥐어주며,

"태은이 이거 먹고 있어. 엄마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어, 엄마. 패드 봐도 돼?"
"그래 밥 먹으면서 봐. 밥 잘 먹고 있어야 해?"
"알겠어! 엄마, 퍼피구조대 틀어줘!"


나는 아이용 패드를 틀어주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한 번 보고 나왔다.

어젯밤에 샤워해두길 잘했다.

오늘은 머리 매무새만 대충 만져주면 된다.


화장실에 갔다 나오니 아이가 밥을 반쯤 먹었다.

"태은이 밥 잘 먹고 있었네? 응가 마려우면 엄마한테 얘기해."
"어 알겠어."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나도 밥을 차린다.

딱히 먹을 게 없네, 오늘도 그냥 맨밥에 고추참치인가.

참치캔 하나를 뜯어서 들기름이랑 같이 비벼줬다.

그리고 김을 두 개 꺼내와서 아이 옆에 앉아서 나도 식사를 한다.


"엄마 나 이제 더 이상 못 먹겠어. 배불러."
"에엥? 벌써? 그러네, 두 알 밖에 안남았잖아?"
"이것 좀 봐. 배가 꽉 찼잖아. 배가 뽈록 나왔지."
"응, 잘했네. 물 한 입 마시고 가."


아이는 빨리감기 버튼이 눌린 만화 속 주인공처럼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고 눈을 까뒤집더니 혀를 내밀어 "맬랠랠래~~~"

신나게 까불어주고 하이체어에서 내려갔다.


나도 대충 식사를 마무리하고 일어나

밥그릇에 물만 대충 끼얹어 싱크대에 담가둔다.

엊저녁 설거지거리도 한가득이지만 테트리스라면 자신 있습니다!

나는 심란한 눈으로 싱크대를 한 번 돌아봐주고 아이를 부른다.


"태은아, 응가할래?"
"아, 아니! 아직 안 마려워!"
"그래 그럼 조금 더 놀고 있어.
근데 너 나가기 전에는 응가해야 해, 알지?"
"어어 알겠어!"


놀이방에서 모래놀이 삼매경에 빠진 아이,

포크레인 덤프트럭 불도저 등 중장비친구들을 잔뜩 올려놓고

공사장 일이 바쁜지 나를 쳐다도 안 보고

대답만 어어 한다.






오늘은 뭘 입힐까?

외출 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육아를 하며 알게 되는 나라는 사람은 옷 욕심이 많더라는 것,

바비 인형 갖고 놀 때도

옷 갈아입히는 게 제일 재미있었던 기억이다.


"언제까지 내가 입으라는 대로 입겠어~
아직 입혀줄 수 있을 때 실컷 인형놀이 할라구!"

"그래 연주야, 그런데 남자애들은...
열 살 스무 살, 서른마흔 되어도
입으라는 대로 입긴 하더라."

"아...?"


언젠가 중학생 아들을 둔 친구와 나눈 이야기,

과연 작은 남자를 중학생까지 키워놓은

그녀의 내공이 돋보이는 한 마디였다.

스스로 뭐든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아이를 응원하면서도

옷 정도는 내가 원하는대로 입힐 수 있는 지금이 애틋하다.




오늘은 날이 제법 추우니

안감 기모가 들어간 진녹색 조거팬츠에

팔은 노랑, 몸판은 브라운, 칼라는 하늘색이 조합된

플리스 아노락을 입혀야겠다.

여기에 베이지색 털부츠를 신겨야지!


아이가 입을 착장을 바닥에 놓아두고

나는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머리를 매만진다.

드라이 뜨거운 바람으로 머리를 몇 번 뒤집어서 속아주고

고데기로 앞머리를 한 번 말아 정리해 주면 끝이다.


드라이를 하는 중에 거울 속에 아이가 웃으며 등장한다.

"태은이, 왜?"
"엄마, 나 뭐 하고 싶어."
"아 그래? 알겠어. 가자!"


나는 아이를 앞장서서 화장실로 데려간다.

아이 변기를 놓아주고 스스로 올라갈 수 있게 계단도 놓아줬다.


"혼자 가서 바지 내리고 응가할 수 있지?"
"응! 내가 혼자 할게."
"그래, 다 하고 불러. 엄마 밖에 있을게."


나는 소파에 풀썩 반쯤 누워서

핸드폰을 잠깐 보며 기다린다.


"엄마 나 이제 다 했어."
"어 알겠어. 잠깐만 좀만 앉아 있어 봐."


아이가 다 했다며 부를 때 갔다가

막상 가면 아직 조금 더 하고 싶다고 할 때가 다반사다.

그래서 나는 이제 속지 않는다.

2분쯤 지나 다시 엄마를 부른다.

잠깐만~

1분쯤 지나 이제 정말 다 했어! 한다.

"오케이, 이제 갈게!"


응가 안녕~ 인사하면서 아이가 물을 내린다.

샤워기 따뜻한 물을 틀어 아이 뒤를 닦아주고

수건으로 몸을 감아준다.


"태은아, 수건 잘 잡고 나와.
이제 팬티 입고 나가자.
태은아 얼른 와. 옷 입어야지...
태은아!"


두세 번 불러야 아이가 온다.

웃으면서 까불대면서 온다.

엄마아! 하면서 그 작은 팔로 내 목을 감아 힘껏 안아주는데

그 힘이 제법 세다.


"켁켁 아이고 태은아 엄마 목 졸려.
옷 입자 이제. 뒤돌아.
아니 가만히 서 있어야지 옷이 돌아가잖아.
태은아!"
"어 알겠어 엄마. 가만히 있을게!"
"양말은 혼자 신을 수 있지?"
"어 양말은 내가 혼자 신을 거야."
"됐다 이제. 얼른 나가야 돼.
약속시간 늦겠다.
가서 신발 신어!"


아이가 신발을 신는 동안

나도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간다.


"엄마, 반대로야?"
"오, 아니. 제대로 잘 신었네!
이제 엘리베이터 버튼 눌러줘.
가자 가자."



23층에서 지하3층까지 내려가는 동안에도

노래를 부르며 까부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 사진을 찍는 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아이에게 손을 슥 내민다.

작고 따뜻한 아이의 손이

자석처럼 착,

내 손을 붙잡는다.














#하루시작

#엄마나이다섯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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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