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는 질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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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아이파크 몰 레고 스토어
주말이라 사람들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주차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려 겨우 들어왔는데
들어와서도 공기 반 사람 반이다.
몇 걸음 앞으로 가려는데도 인파에 밀려
맘 같지 않게 방향을 여러 번 틀어야 한다.
이 인구밀도 높은 곳에 내가 왜 와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었지만
아이는 까치발을 들고 자동차 장난감 사이를 신나게 휘젓고 다니며 신이 났다.
발그레한 볼따구, 휘둥그레 눈을 뜨고
테슬라다! 루비콘이네! 우와 엄마 사이버트럭이야!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니 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아이의 표정에 따라 내 마음이
삭막한 벌판에도 있고
초록 가득한 봄동산에도 있다.
“레고다! 엄마! 나 레고 보고 싶어!”
“그래, 가보자. 근데 태은아, 너 덥지 않아? 옷 벗을까?"
"어 알겠어!"
아이는 두 팔을 뒤로 뻗어 탈출하듯 패딩에서 빠져나간다.
나는 뒤집힌 팔 소매를 다시 뒤집으며 아이를 뒤따랐다.
남편이 보이지 않아 잘 따라오고 있나 두리번대니
빼곡한 검정 뒤통수들 사이에서 뿅 얼굴을 내밀고 손짓한다.
과연 레고스토어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들어서자마자 덥고 텁텁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아휴 괜히 들어왔나'
하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아이는
나가자 할세라
요리조리 사람들 속을 미꾸라지처럼 헤치며
안으로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레고체험 테이블은 끼어들 틈 없이 아이들로 빽빽하다.
돌이 갓 지나 보이는 아기부터 초등학생 형아누나까지
엉덩이를 쑥 빼고 기대 서서 각양각색의 레고를 조립하느라 정신없는 아이들과
두꺼운 옷가지들을 양팔에 걸고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어른들,
아이 옆에 허리를 숙이고 서서 함께 조립하는 부모들까지
도저히 끼어들 틈이 보이질 않는다.
태은이는 엉덩이들 사이를 기웃거리다
운 좋게 구석 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다람쥐 같기도 하지, 우리 아들.
'아이고 서 있기도 힘들다, 모르겠다.'
나는 태은이의 패딩과 나의 코트를 쿠션처럼 끌어안고
바닥에 아빠다리를 하고 자리 잡았다.
남편은 아이 등 뒤에 서서 그런 나를 보며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채아야, 이제 갈까?"
"아니. 나 이거 더 할 거야.”
초등학교 3학년 즈음? 되어보이는 여자 아이,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연보라색 후드티로 흘러내리고 있다.
무표정으로 자신이 만드는 레고 자동차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에게
팔짱을 끼고 서서 채근하는 엄마,
웃고 있는 얼굴이지만 미간에 힘이 들어가있다.
“그만 가지 않을래? 아빠랑 오빠가 기다려.”
“…나 이거 하고…”
“채아야.. 집에서 레고 테이블에 앉아줘, 제발.
아니 집에서는 생전 안 하다가 왜 여기 와서 이래?”
아이의 엄마는 누군가에게 동조를 구하는 듯
주위 사람들을 훑으며 말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집에 있는 레고 테이블은 거들떠도 안 보면서
레고 스토어에만 오면 체험 테이블을 떠나지 않는 아이가
어디 저 아이뿐이랴.
싶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기 그런 애 한 명 또 있습니다.
아이의 고개는 점점 숙여지고 눈동자는 점점 올라간다.
볼멘 얼굴로 레고 자동차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음 조각을 만지작 거린다.
“채아야, 가서 이제 또 딴 거 구경해. 그만 가자고.”
“……”
“엄마는 가고 싶은데? 여기 다른 것도 볼 거 많아.”
“……”
“아빠 전화 해볼까? 어?”
타르륵.
양손에 쥐고 있던 레고 조각들을 미련 없이,
아니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아이가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뒤를 돌아 그대로 나가버렸다.
아이가 만들던 레고 자동차가 힘없이 쓰러졌다.
바로 뒤 서있던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쌩 하니 나가버리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괜히 레고조각을 다시 집어 들고는
"야! 이거 완성하고 가! 채아야!
끝까지 해야지!"
하며 넘어진 레고 자동차를 들어 조각을 하나 끼운다.
"아휴. 쟤 진짜.. 왜저래..."
엄마는 혼잣말처럼 읊조리며 어정쩡하게 웃어 본다.
아무도 그녀를 보고 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듯
서툰 손길로 레고 조각을 끼우는 시늉만 하다가
이내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아이 뒤를 따라나선다.
“우와! 레고 자동차다!”
태은이는 주인 없는 레고 자동차를 냉큼 집어 들고
탄성을 지르며
기쁜 얼굴로 미완의 조각을 이어 붙인다.
#사소의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