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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logic Jan 11. 2018

싸이월드 웹폰트를 추억하며...

싸이월드 웹폰트에 대한 소회

아주 오래전 도스용 조판 에디터를 만들던 때 처음으로 나에게 폰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해 준 것은 비트맵 폰트였다. 또한 비트맵 폰트 에디터가 내가 만든 최초의 폰트 관련 유틸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아웃라인 폰트가 기본 폰트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비트맵 폰트는 그 설 자리를 잃었고, 1990년 중반에 한메소프트가 수입하여 팔던 Palm Pilot의 한글 OS용 글꼴과 모 핸드폰 업체의 비트맵 화면 폰트를 제작한 이후에 다시 상업용 비트맵 폰트를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싸이월드 글꼴 샵에 전시된 글꼴들...


그런데 한동안 웹폰트가 유행을 한 적이 있다. 


싸이월드가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소통 창구가 되었던 시절에 글꼴 제작 업체들에게 적지 않은 고정 수입을 보장해 주었던 아이템이 바로 싸이월드 전용 웹 폰트였다. 아웃라인 글꼴의 고해상도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비트맵 폰트의 생태계를 잊고 있었고, 16X16 심지어는 그 보다 적은 공간에 한글을 우격다짐으로 집어넣는 작업이 디자이너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을 만큼 비트맵 폰트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져 새로운 시장이 생겼고, 나는 시류에 올라탔었다.


싸이월드에는 사용자의 아바타를 위한 공간인 미니홈피를 꾸미는 아이템들과 웹폰트 등 다양한 아이템을 도토리라는 결제수단으로 구매할 수 있었는데, 당시의 싸이월드 운영사는 결제 대금의 상당수를 그들의 이익으로 가져가고 제작사들은 현재 구글이나 아이폰의 앱 판매 수익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수익으로 지급받았다. 

그래도 당시로서는 나름의 운영 수익이 보장되기는 했지만, 싸이월드가 시장을 만들어준 공헌자라는 그들의 입장에서 절대 "갑"의 모습으로 싸이월드의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것에도 약간의 불만이 있었고, 아이템 제작사의 입장으로 보자면, 오픈되어 있지 않은 제작 환경에서 싸이월드가 만든 틀 안에 모든 상상력을 집어넣는 폐쇄형 환경을 기반으로는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도 힘들었었다. 


매월 2개씩의 새로운 비트맵 폰트를 작은 사각형 틀 안에 밀어 넣듯이 디자인하는 글꼴 디자인에 대한 상상력은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계가 보였고, 대부분의 글꼴 업체들은 어떻게 보면 점 몇 개 달라진 것 이외에는 별 다르지 않은 재탕, 3탕의 글꼴을 다른 이름으로 발표하는 일들이 생겼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새로운 글꼴은 글꼴 업체와 싸이월드에 새로운 매출을 제공하여 주었고, 디자인의 좋고 나쁨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새로운 이름의 글꼴이 사용자의 미니홈피를 장식해 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모양이다.


차후에 다양한 SNS들이 등장하며 싸이월드 역시 구조 변화를 꾀했지만, 이미 모바일로 변모한 시장에서의 추진 동력을 잃었고 수많은 이용자들은 추억을 뒤로한 채 미니홈피를 떠나고 있었다. 

오픈 플랫폼에서 새로운 SNS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나는 글꼴 서비스를 제공하던 제작자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소회를 이야기했지만 싸이월드는 좀 더 일찍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모바일 세계에 적응했다면 세계적 플랫폼이 될 수 있는 좋은 서비스였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용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플랫폼이 그들의 수명을 다하는 것은 오래전에 살던 동네가 재개발로 없어지는 것만큼이나 가슴 저린 일이었고, 그때 수많은 글꼴 디자이너들이 힘겹게 만들었던 작은 점들의 집합인 싸이월드 웹폰트 글꼴도 다시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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