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식자의 기본 지식 쌓기
30여 년 전만 해도 필름이나 인화지에 글자를 직접 감광하여 인쇄에 이용하는 수동 식자판을 사용하지 않으면 출판 , 인쇄를 할 수 없었다.
글꼴 회사를 처음으로 출범시켰던 1992년에도 컴퓨터를 이용한 전산 사식이 보급되었음에도 일부 인쇄물이 수동 식자기를 통하여 인쇄되었다.
"태-영화체"만 해도 처음 만들어질 때에는 수동 식자판으로 만들었었다.
많은 수동 식자판 글꼴들은 저작권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에 크게 확대, 인화되어 여러 글꼴 업체의 디지털폰트 원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 다른 세상을 위한 아픔의 과정이라고 할까...
처음으로 수동 식자기로 사식 하던 장면을 보았던 때의 충격은 대단했다. 넓은 식자판을 상하좌우로 밀어가면서 사식을 하던 오퍼레이터의 재주는 신기에 가까웠다.
때로는 같은자리의 글자를 조금씩 밀어 사진을 찍어 두껍게 만들기도 하고, 수식을 입력하기 위하여 축소 확대의 과정을 자유자재로 하는 그들은 그 시대의 진정한 인쇄 "달인"이었다.
당시에 집 한 채 값과 맞먹던 수동 식자기는 세월이 흘러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고, 고철 덩어리로 거래되었으며,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수동 식자판이 없었다면 대량 생산 체제가 갖추어진 출판 시장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에 회사 창고에 쳐 박혀 있던 수동 식자판 1000여 장을 국립 한글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아무도 무겁고 쉽게 깨어지는 유리판을 보관하지 않고 있을 것이고, 후대에 추억의 산물로라도 이 물건이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여서 이다.
얼마 전 파주 출판 도시의 "지혜의 숲"이라는 곳을 방문하여 그곳 활판 인쇄 학교에 전시된 활자들을 보았다.
사진 식자기도 만들어지기 전에 인쇄를 위해 사용되었던 활자들을 보며,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내었던 우리 민족이 "배달의 민족"이기 이전에 "문자의 민족"이라고 불릴 만하다고 생각했다.
수기 / 목판 / 활자 / 사진식자 / 전산식자 / 프린터 등으로 이어지는 인쇄를 위한 글자의 형태 변화가 문화 발전의 척도라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