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
착한 사람에게 독하게 살라고 했다. 바보같이 당하고 있지 말라고 했다. 남을 도와줬는데 돈이 안되면 잘한다고 격려하지 못했다.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면 혀 끝을 찼다. 나와 다른 것을 보면 다른 게 아닌 ‘틀리다’고 답했다.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른 ‘날 것’을 가지고 있다. 내 기저에 깔린 기본 성격과 성향, 성품이 모두 다르다는 얘기다. 거기에 삶의 지혜가 붙고 각기 다른 경험과 고생의 살이 붙어 그 사람의 생각을 결정짓고 결국 행동으로 발휘된다. 같은 현상을 봐도 모두 다른 행동을 하는 이유다. 나의 ‘날 것’은 당최 바꿀 수가 없다. 그러나 성장시킬 수는 있다.
내 ‘날 것’을 먼저 알고, 이를 인정하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릴 뿐이다.
“더 잘 알게 되면, 더 잘하게 된다”
-마야 안젤루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대학생 때 친구들이 나를 “역주행 선영”이라고 불렀다. 또는 “자유로 선영”. 남들이 앞으로 갈 때 역주행한다는 소리다.
어렸을 때부터 청개구리라는 소리도 많이 들어왔다. 엄마가 ‘이거’ 하라고 하면 ‘저거’를 했다. 남들이 많이 가고 붐비는 길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 길 말고 빙 돌아서 다른 길로 갔다. 남들이 이 가방이 이쁘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안 예뻐 보였고, 인기 많은 남자를 만나도 나는 시큰둥했다. 참 이상한 성격인 나를 주변에서 몇몇은 받아들이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고 신기하다고도 했다. 그렇게 20대 때에는 나란 사람에게 스스로 도전하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많이 했었다. ‘난 왜 혼자 이러고 있을까? 튀려고 하는 게 아닌데, 이게 못난 성질 탓일까? 그래도, 성격은 나쁘지 않은데.. 왜 이 정도에서 만족을 못하고 굳이 고생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요즘 세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참 기가 차지. 통장의 잔고도 얼마 없는 상황에 또 고생을 돈 주고 샀다. 남들처럼 직장 생활만 꾸준히 했어도 이 정도까진 아녔을 텐데 왜 스스로 사업을 결심한 계기가 뭐였을까? 대체 나란 사람에 대해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그런데 요즘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다행히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아직 살만 하다는 것이다. 시국이 이래서 (COVID-19) 다들 예민하고 자기 잇속 차리기 바쁜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이다.
계산에 약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과외 알바를 하면 학생들이 예뻐서 생일이면 생일 케이크를 사주고, 공부 열심히 하면 책 사주고, 공부 못하면 힘내라고 선물 사주고, 그렇게 다 퍼주다 과외비를 또 탕진한다. 사실 창피해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다. 돈 벌기 위해 알바를 시작했는데 돈이 안 모였으니까, 물론 주위에서 과외 입소문이 났지만 결국 다 못하고 끝났으니까 결국 나에겐 손해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삼십 대 중반인 나는 여전히 바뀐 게 없다. 사업을 준비하면서도 남들보다 계산적이지 못한 나를 가끔 스스로 자책한다. 그러고 이제와 본성(:타고난 성질)이 이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 중 하나는, 그래도 나는 인정머리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내 돈 내고 고생하면서 사기도 당하고 남들이 날 이용하기도 했었지만 나이가 차니 이제 제법 분별이 가능하다. 내 잇속 차리면서 살기엔 우리는 서로 부대껴 살아야 하고 남의 도움 없이 절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란 사람을 인정하고 믿어보기로 했다. 계산에 약하다는 단점이 사업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해서 더 독하게 내 감정과 표현을 감춰왔지만.. 참 못할 짓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자니 마스크만큼 답답하다.
그냥 그 따뜻함의 성품을 내 사업에 녹여도 된다는 자신감이 최근에야 들었다.
세상에 돈 있는 사람은 자주 거론된다. 측정 가능하기에 순위가 메겨진다. 자연스레 그런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성공하지? 잠을 줄이는 7가지 방법? 성공하는데 필요한 22가지 방법? 대체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이런 방법들은 내가 취해야 할 가면의 일부일까, 전략일까? 성공하는데 정답이 있을까?
그런데 유일하게 따뜻한 성품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 있다.
“오프라 윈프리 Oprah Gail Winfrey”
[타임] 선정 ‘20세기의 위대한 인물’,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등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리더십 여학교 설립, 2013년 하버드대학 명예박사학위 수여, 미국 대통령 오바마로부터 ‘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상 등
그렇다. 이 사람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남의 어려움과 힘듦에 공감을 하고 따뜻함을 발휘해 자신이 얻은 부와 명성을 세상에 나누는 일에 열정적이다. 솔직하고 감동적이고 강력한 힘을 내뿜는 사람. 우리가 ‘이 사람 리더십이 있다’고 할 때 대부분 공격적이거나 추진력이 있을 때 ‘리더십이 있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오프라 윈프리는 지금까지의 리더들과 달랐다.
나는 좋은 리더로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성공한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 하려고 많은 시도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20대 때는 내 안의 충돌이 많았고 스스로에 대한 인정보다 부정이 많았던 것 같다. 세 번째 사업에 들어서니 다양한 대표님들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내가 감히 말할 수 있는 성공 궤도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 생각), 본인 스스로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기저의 성품이 무엇인지, 이를 기반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에 대해 너무도 확실히 잘 알고 있었다. 남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생하면서 그 길을 개척해 나가고 이를 그대로 회사에 녹여내고 있었다. 나는 지금껏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성품을 거론하는 사례는 거의 못 봤던 것 같다. 왜냐면 성품은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귀감이 안되서일까.. 물론 성공과 성품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좋은 성품이라고 해서 바보 같은 순진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착한 일을 했는데 돈이 안돼서 손가락질받을 이유가 있을까? 내 돈 내고 고생해보니 이 또한 돈으로 살 수 없는 성품이더라.
우리는 좀 더 마음을 열어 그 사람의 내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게 되는 법이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오프라 윈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