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스코를 아시나요? 식품업계 M&A의 시조새!
혹시 나비스코를 들어보셨나요?
어쩌면, 낯선 이름이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오레오나 리츠(Ritz) 같은 이름들은 어떠신가요?
꼭 선호하는 간식은 아니더라도 맛보았거나 적어도 마트에서 자주 본 기억은 있으실 겁니다. 오늘은 식품업계 M&A 역사 시리즈 1편으로, 식품업계 1호 M&A 사례로 알려진 나비스코의 탄생과 역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나비스코, 전국 비스킷 연합]
나비스코(Nabisco)는 사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회사인데요, 당시 미국의 전국구 회사답게 말하자면 전국 비스킷 연합(National Biscuit Company)의 줄임말을 채택하였습니다. [채택]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듯이, 나비스코는 독특한 탄생의 비밀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미국의 역사에서 1898년은 한 장을 장식해도 될 만큼 큰 이벤트들이 줄지어 일어났습니다. 당시 매해 역동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한해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시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을 두고 긴장감이 팽팽했던 쿠바의 아바나 항에서 일어난 메인호 침몰로 발발된 미국-스페인 전쟁이 있었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스페인은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 하와이 등지의 지배권을 대부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산업 측면에서는 당시 전국 석유 파이프라인의 84%를 점유했다는 그 유명한 석유왕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이 탄생한 해이기도 하고, 오늘 말씀드릴 나비스코가 탄생한 해이기도 합니다.
[나비스코 탄생의 배경]
나비스코는 미국 내 각 시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분산되어 있던 25개의 제분공장이 합병하여 탄생한 전국구 회사이고, 이러한 합병이 진행된 배경은 크게 아래와 같은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순서대로 조금씩 살펴보겠습니다.
1) 기계 기술의 발달로 인한 설비 대형화 촉발: 당시로서는 획기적 신기술이었던 베이킹 자동화 설비 등의 도입에 따라 설비 효율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로 인한 표준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2)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소비자 선호 변화: 당시 노예주보다 자유주가 속속 늘어남에 기반한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식품, 특히 비스킷에 대해서는 지역별 특성이 명확한 home-made 스타일보다 이동 및 보관, 섭취의 편의성을 공략한 제품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3) 투자은행의 본격적 활약: 남북전쟁 등 대내 이슈들이 대략 정리되고 아메리카 대륙 및 태평양 전역에서의 패권을 넘보기 시작한 미국의 상황에서, 산업 역시 대규모 패권에 걸맞는 형태로 재편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J.P. Morgan을 중추로 하는 투자은행들의 활약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는 형태가 다릅니다만) 파편화된 산업에 자본을 연료삼아 인수/합병의 로켓을 쏘아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 설비 기술의 발달
산업혁명 이후 우후죽순처럼 개발된 산업용 설비는 대부분 산업의 가치사슬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만, 비스킷을 만드는 공정에 해당하는 베이킹에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비들이 효율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 로터리 오븐: 로터리 오븐은 베이킹 산업의 효율성을 제고한 주역입니다. 균일하게 가열해야 하는 오븐 공정을 회전하는(rotating) 드럼을 활용하여 대규모화하였고 여기에 속도가 일정한 컨베이어 벨트를 결합하여 자동화까지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공장은 안전해졌고, 깨끗해졌고,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었으며, 그러면서도 투입 인력은 감소할 수 있는 마법을 제공하였습니다.
(2) 투입기: 디스펜서(Dispenser) 또는 디파지터(Depositor)라고도 부르는 투입기는 위에서 언급한 컨베이어 벨트와 오픈에 결합, 거의 자동화된 라인을 완성하는 모퉁이돌 역할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직접 투입하던 것보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양을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휴먼에러가 줄어듦에 따른 품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3) 몰드: 비스킷 제조 라인이 자동화됨에 따라 반죽을 예쁘게 다듬을 필요가(사실은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몰드에서 떨어지는 반죽을 받는 받침대와 모양을 잡아주는 성형틀을 하나로 제작하여 몰드(Mold)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몰드는 균일한 제품을 만들어내면서도 투입 공수를 줄일 수 있는 정말로,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4) 포장기기: 반죽의 투입과 분사, 성형과 오븐 가공을 모두 자동화한 엔지니어들은 쏟아지는 비스킷을 일일이 포장할 필요(여기도 사실은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투입기와 몰드를 통해 아주 균일한 형태와 크기의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왕 깔기 시작한 컨베이어 벨트를 조금 더 연장하여 정확한 개수만큼 똑같은 크기의 포장지에 똑같은 방법으로 포장하면 이마저도 자동화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는 머지 않아 실현되었습니다.
이러한 설비 기술의 지속적인 발달은 공장의 자동화와 투입 공수의 절감이라는 나비의 날개짓을 시작하였고, 이는 곧 제품의 표준화에 기반한 규모의 경제를 획득하기 위한 산업의 대형화라는 태풍을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2. 소비자 선호 변화
19세기 말, 20세기로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소비자들이 포장 간식(Packed snack foods)를 선호하게 된 배경은 아주 명확하게 인과가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아래와 같은 요인들이 직접적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1) 편의성: 포장 간식은 물류(이동)이나 저장에 있어 탁월한 편의성을 부여하였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태동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먼 거리를 안심하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간식이 필요했고 이러한 기회를 포장 간식이 파고들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2) 표준화: 비스킷은 표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소비자들이 표준화를 원하지 않고 각양각색의 특색 있는 비스켓만 선호했다면 결코 오레오와 같은 표준화된 제품이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제조사가 표준화된 공정을 도입하고 그에 따라 표준화된 제품을 생산함에 따라서 맛과 품질, 그리고 그 형태 자체를 해당 제품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를 신뢰성과 결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 마케팅: 그런 특성이 생겨나면서 비스킷 회사들은 마침내 강력한 브랜드를 구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균일한 형태, 검증된 품질, 완성된 맛을 담보하는 브랜드로 모든 것을 인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 나비스코는 (놀랍게도!) 더 편리하고 더 건강한 간식이라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사상 최대의 캠페인을 전개한 결과 타 캔디 및 간식 제품에 대해 완승을 거두게 됩니다.
(4) 라이프스타일: 수많은 신화를 남긴 산업화는, 슬프게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했고 더 적은 시간만을 가사를 위해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간식을 만들기 위해 반죽을 하고 오븐에 굽고, 이를 다시 썰고 잘라 가지고 나가는 시간은 곧 워킹아워가 되었고 홈메이드 쿠키는 그 자리를 포장 간식에 내주고 말았습니다.
3. 투자은행의 활약
나비스코의 탄생은 25개 제분소의 합병이라는 소개를 드렸는데요, 이는 (또!) J.P. Morgan의 활약을 기반으로 하여 추진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월가의 기반을 닦고 있던 모건은 틈만 나면 각 산업에서 지역 사업자 간 합병을 일으켜 대규모화를 통해 효율성을 달성하고 이러한 Transaction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어내는 일(즉, M&A 자문)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나비스코 케이스는 전형적인 합병 건으로, 모건은 합병의 구조를 설계하고 이를 각 회사에게 설명하여 성공에 대한 꿈을 꾸게 하였으며 막강한 자본력과 갓 생겨나기 시작한 월가의 신디케이트를 활용하여 이러한 합병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비스코 탄생의 영향]
19세기 말 갓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용광로처럼 뜨거운 시기에 25개 제분소가 연합을 형성하여 나비스코가 탄생하면서, 20세기 식품 산업은 몇 가지 중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1) 스낵 시장의 확장: 나비스코의 탄생은, 조금 과장하면 스낵이라는 카테고리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지속적인 메가히트 제품의 출시와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20세기 내내 그 영향력을 확대해오는 데에도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공을 위해서 나비스코는 쿠키 한 품목에 안주하지 않고 크래커, 웨이퍼(웨하스) 등으로 카테고리를 다양화했고 이러한 카테고리 확장이 미국의 스낵 시장 성장 동인이 되었습니다.
2) 제조 및 포장 기술 향상: 나비스코는 막대한 규모를 기반으로 효율성을 확보하면서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추구하였습니다. 이에 오븐과 같은 제조 설비가 지속적으로 향상되었고 더욱이 포장에 있어서는 셀로판 랩핑을 활용한 방식을 도입하면서 시장을 지속적으로 선도할 수 있었습니다.
3) 브랜드 마케팅의 대중화: 나비스코는 브랜드 마케팅과 매체 광고의 선두주자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맛과 품질에 대한 보증으로서의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로열티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오레오, 리츠 같은 브랜드는 이러한 소비자의 사랑을 통해 생명력을 얻어 현재까지도 미국 식품 시장, 특히 스낵 시장의 상징물로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정리]
나비스코는 19세기 말, 25개 제분소의 합병을 통해 탄생하여 규모의 경제 달성, 지속적인 생산기술 개발, 브랜드와 마케팅의 적극적인 활용을 기반으로 스낵 시장의 아이콘으로 우뚝 섰습니다. 몇 차례의 소유권 변경은 있었습니다만 그 누구도 "나비스코"라는 이름을 포기하려고 하지는 않았답니다!
[참고자료]
[1] 미국-스페인 전쟁 관련 내용
"The Spanish-American War: A Complete Handbook" by Joseph L. Strout
"The Spanish-American War: An Affair of Honor" by J. Michael Miller
[2] 스탠더드 오일 관련 내용
"The History of Standard Oil" by Ida M. Tarbell
"Standard Oil: An Empire of Wealth" by John D. Rockefeller Jr.
[3] 나비스코 관련 내용
"Biscuits, Spoonbread, and Sweet Potato Pie" by Lonnie G. Bunch III
"Nabisco, America's Favorite Snack Food Company" by Debra J. White
"The Biscuit Industry and the Formation of Nabisco" by Robert P. Dav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