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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od Transformation Feb 08. 2023

식품업계 M&A 시리즈 - 2. 크래프트 하인즈

사례로 살피는 시장의 따끔한 가르침!

[크래프트-하인즈, 식품계에 카테고리 킬러가 있다면 제가 아닐까요?]


오늘은 지금의 크래프트-하인즈를 있게 한 case에 대해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 다루었던 나비스코에 비해서 크래프트-하인즈는 그 자체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친숙하실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래도 혹시 그 이름이 낯선 분들이 계시다면 아래 제품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인즈 토마토 케첩, 필라델피아 치즈크림(!), 맥스웰 커피하우스 같은 브랜드들이 크래프트-하인즈에 의해 운영된다고 합니다. (혹시나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신 분이라면, Jell-O에 대한 추억이 더 강렬하실 지도 모릅니다.)


크래프트-하인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래프트와 하인즈의 합병으로 탄생한 회사입니다. 때는 2015년, 식품업계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인 $46 billion 의 합병이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잠시 후에 이야기하고 먼저 두 회사의 간단한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큰 딜은 2008년 발표된 약 $52 billion 규모 안호이저-부시와 인베브의 합병)


[하인즈, 케첩 그 자체]


H.J. Heinz Company(이하 하인즈)는 무려 1869년 펜실베니아 샤프스버그에서 태동하여 최초에는 겨자무(Horseradish)를 활용한 소스를 판매하며 시작하였지만 곧 피클, 케첩 등 다양한 조미료를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소스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또 다른 브랜드를 흡수하면서 Multi-national 기업으로 성장한 하인즈는 "57 varieties" 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광범위한 기업으로 인식되어 왔고 1950년대에는 이미 세계에 걸쳐 약 14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상태였습니다.

하인즈라는 이름은 높은 수준의 품질, 광범위하고 효율적인 공급망,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기반으로 진격하며 세계적으로, 특히 미국에서는 케첩과 완전히 동일시되었는데요, 알려진 수치 상 가장 높았을 때의 케첩 시장 점유율은 82%에 달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성공 가도를 달려온 하인즈는 2013년,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사모펀드 3G Capital과 그 유명한 버크셔 해서웨이에 최대주주 자리를 내어 준 것입니다. 이들의 원가 절감과 운영 최적화 노하우는 시장에서 정평이 나 있었는데요, 결과가 어땠는지는 잠시 후에 살펴보겠습니다.


[크래프트, F&B 외길 100년]


크래프트는 1903년에 J.L. Kraft & Bros. Co.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치즈 판매사로 출발하였습니다. 올해로 꼭 100년에 달하는 역사에 걸쳐 여러 인수/합병을 통해 세를 불려온 크래프트는 수십년간 F&B 산업에서 손꼽히는 위치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1920년대 확장기에 치즈 뿐 아니라 가공치즈, 마요네즈, 드레싱 등으로 품목을 확대한 크래프트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맥스웰하우스 커피, 나비스코(바로 그 나비스코), 오스카 마이어 등을 흡수하면서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외형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오랜 동안 선택과 집중을 놓치지 않아 왔다는 점인데요, 대표적인 사례로 브랜드 가치는 나쁘지 않았지만 회사의 핵심 카테고리가 아니었던 나비스코의 매각(2000)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크래프트와 하인즈, 두 역사적 브랜드의 역사적 만남]


두 브랜드는 2015년, 식품 산업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대형 합병소식을 시장에 전했습니다. 해당 거래에 대한 몇 가지 팩트를 체크해볼까요?      

거래 규모는 약 $49B (약 55조원, 연평균 매매기준율 1,131.49 기준)에 달하였습니다. 합병으로 탄생한 크래프트-하인즈는 연간 매출액이 약 $28B 이상에 달했습니다.

거느리고 있는 브랜드가 약 200개 이상, 연매출을 $1B 이상 올리는 브랜드만 8개에 달하는 세계 5위 식품공룡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합병법인의 주식은 크래프트 측 주주단에 49%, 하인즈 측 주주단에 51%가 배정되었습니다.

합병법인의 최대주주는 3G capital(하인즈 51% 보유)과 Berkshire Hathaway(하인즈 27% 보유) 컨소시엄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두 거대 회사의 합병은 시장에 아주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큰 회사여도 더욱 커질 수 있고 규모의 경제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자신감의 발로, 그리고 이러한 전통적인 산업에서는 날렵하지 않더라도 우직하고,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한국의 역사로 보면 무려 조선시대 무렵부터 100년을 이어온 두 회사 성장의 역사가 하나로 합쳐져 막강해진 직후 두 회사는 가장 혹독한 계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비용 절감의 양면성 - 긴 겨울, 그 혹독함에 대하여]


행복한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두 회사의 만남은, 의외로 출발하자마자 거대한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어쩌면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된 사견임을 주지하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대주주로 등극한 3G 캐피탈과 버크셔 해서웨이는 2년 전인 2013년,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약 $17B 규모의 투자를 단행, 하인즈의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2015년 크래프트와의 합병을 이끌게 되는 것이죠.


두 주인은 2015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거대한 합병을 성사시키고 나서 비대해진 규모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나가기 위해 본격적인 Value Creation 작업을 추지하게 됩니다. 특히 3G 캐피탈은 인수 후 강력한 비용 절감을 통한 가치 제고 활동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사모펀드 하우스였습니다.

비용 절감 방법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실행했는데요, 정리해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인력 구조조정: 합병 직후 조직 개편을 통해 약 2,500명을 감원하였습니다. 이는 인건비 절감으로 즉각적인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공급망 최적화: 표현은 최적화입니다만 통상 현장에서 부르는 CR, Cost Reduction 관념에 입각한 공급망 조율을 과감하게 시도하였고 수많은 거래선이 사라지거나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마케팅 예산 삭감: 하인즈는 전통적으로 마케팅 캠페인을 매우 잘 하고 많이 하는 브랜드였습니다. 인력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3G 캐피탈은 즉각적인 이익 개선을 위해 마케팅 예산을 과감하게 삭감하였습니다. 심한 회계연도에는 경쟁사들의 평균적인 매출 대비 마케팅 비용이 4~5% 수준임에 반해 약 2.2% 수준만을 집행하는 파워(?)를 과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제로 베이스 예산 수립: 통상 오퍼레이션에서 경영 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전년 대비, 또는 매출 대비 하는 식으로 지표를 활용하여 반영하기 마련인데 제로 베이스 예산 수립 방법론은 기존 사항을 모두 무시하고, 백지에 다시 필요에 따른 우선순위로 예산을 책정해 보는 Bottom-up 방법론을 말합니다. 그냥 그래 왔으니까 계속해서 그냥 지출되고 있는 예산의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장점은 가집니다만, 어떤 측면에서는 꼭 필요한데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놓칠 수 있는 항목들이 상존한다는 데에서 함정 역시 공존하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뼈를 깎는" 비용 절감의 노력은 곧 달콤한 결실로 돌아오는 듯 했습니다. 무려 $17억 달러의 비용 절감 실적을 발표할 때만 해도 거대하고 육중했던 공룡이 공격성은 유지하면서도 아주 날렵한 랩터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2019년 2월 22일, 주식시장이 마감된 이후 2018년 실적을 발표하는 동안 크래프트-하인즈의 주식은 시간외 거래가격이 무려 27.5% 폭락하는 피의 금요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회사는 실적 발표에서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약 $25.4 규모의 손실(!)을 일으켰다고 언급하면서 연간 실적은 전년 대비 약 91% 감소한 약 $4B 수준에 불과함을 공개하였습니다.

부단한 노력으로 체질을 단련하고, 비대한 몸집에 가려져서 새어 나가는 비용을 싹 잡아내고 땀방울을 훔치는 체질개선의 기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시장의 변심 - 그건 니생각이고]


회사는 3년간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었습니다. 차분하고 냉철한 분석, 과감한 결단, 일사불란한 실행, 그리고 모든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감내하는 모든 일을 충실하게 견뎌낸 회사에게 따스하게 꽃피는 봄이 아닌 혹독한 추위의 겨울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분석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만, 뒤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비자는 변하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돌보아 주지 않았던 것이죠. 소비자들은 현명하고, 변덕스럽고, 냉정하기 마련입니다. 100년간 사랑에 빠졌던 브랜드더라도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습니다만) 모멸차게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크래프트-하인즈의 성장 정체, 시장 점유율의 지속적인 감소, 이익성장률의 감소를 통해 따끔하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동안 경쟁자들은 싹트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엔진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대표적인 흐름은 유통업체들의 Private Brand 상품 강화인데요, 소비자들이 더 낮은 가격에 반응하는 특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거대 유통업체들을 중심으로 자체 브랜드 상품을 제공, 유통 마진 및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비용을 절감하면서 경쟁 제품 대비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하였고 이는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회사의 비용 절감은 많은 cost center의 통폐합, 수익성이 낮은 브랜드의 매각 또는 폐지, 마케팅 캠페인의 표준화 같은 활동을 통해서 달성되었는데 사실 이 시기 소비자들은 더 건강한 먹거리를 찾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크래프트나 하인즈의 제품이 덜 건강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찾는 그 먹거리가 바로 우리 제품이라는 사실을 새로운 제품, 새로운 브랜딩, 새로운 캠페인을 통해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비용 절감에 집중하는 동안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주지 않아 소비자의 돌아서는 마음을 붙잡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 하면 떠오르는 식물 기반 단백질, 대체육은 어떨까요? 나중에 한번 따로 다루겠지만 사실 크래프트-하인즈 외 식품 공룡들은 대부분 대체육 업계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터줏대감들이랍니다. (유니레버도, 네슬레도, 켈로그도, 닭고기 황제 타이슨도, 심지어 옥수수 제왕 ADM까지도!) 하지만 크래프트-하인즈는 내부에 절감할 비용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이 기간 시장에서 새로이 싹트는 기회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리 - 왕도가 없는 시장의 가르침]


크래프트-하인즈 사례는 20세기를 가로지르는 식품업계의 정점임과 동시에, 마찬가지로 20세기 금융의 역사를 만들어 온 M&A 방법론의 정석과도 같았습니다. 유명하지만 오래되었고, 거대한 수요-공급 시스템을 구축하였지만 그 사이 사이 비효율적으로 연소되는 연료가 아주 많이 보이는 회사를 인수하여 개선한다(Value creation). 기회가 된다면 동종 회사를 함께 인수하여 규모를 확대한다(Bolt-on). 매출 증가보다 이익 증가가 중요하다(즉, 외형 성장보다 비용 절감이 기업가치 제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크래프트-하인즈의 새로운 주인은 마치 정언명령같은 이러한 선언들을 정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실행해 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보란듯이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일견 겸손하게 반성문을 써서 제출한 것 같은 크래프트-하인즈의 향후 행보는 어떨까요? 오마하의 현인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몇 안되는 손실로 남을지, 아니면 여기까지가 전반전이고 후반전에 극적인 드라마가 남아있을지 함께 지켜보시죠.





[참고자료]      

"Kraft and Heinz: The Merger That Created a Food and Beverage Giant." Forbes, Forbes Magazine, 22 July 2015

"Kraft and Heinz to merge in $49bn deal." BBC News, BBC, 25 Mar. 2015

"Kraft Heinz Company (KHC)." Reuters, Thomson Reuters

"Kraft Heinz: The Story Behind The Merger" (Forbes, 2018)

"Kraft Heinz: The Problems With Mergers Of Equals" (The Motley Fool, 2019)

"Kraft Heinz merger: What went wrong?" (BBC New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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