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잘 쓰자-아까워서가 아끼자의 탈을 썼을 때
돈이 없을 때의 단점(돈이 많을 때 어떤지는 돈이 많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은 매사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하다보니 아껴야 하지 말아야 할 때 아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기분을 매우 안 좋게 만든다. 감정 소모가 심각하다. 사실 인간의 힘으로 이게 잘 아끼고 있는 건지, 돈을 정말 써야 할 때 안 쓰고 있는 건지를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실수는 반복 된다고 하지 않나. 상황이 다 종료되고 나서야 내가 근검절약을 한 건지 아껴야 하지 말아야 할 때 아낀 건지 알 수가 있다. 그건 감정과 분위기가 말해준다. 니가 가난하든 말든 아껴야 하지 말아야 할 때 아끼면 오히려 감정적으로, 물질적으로 엄청난 낭비를 하게 된다.
오늘 가족끼리 고깃집에 갔다. 우리 집 유일한 아들인 막내가 뒤늦게 합류했다.
막내는 우리가 고기를 다 구워 먹은 뒤 음식점에 도착했다. 막내는 휴게소에서 대충 저녁을 떼웠단다.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 막내는 말했다.
“된장찌개를 2개 시키고...”
나는 그 순간 돈을 아끼려고 된장찌개를 하나만 시켜서 옆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막내가 먹는게 어떠냐고 했다.
“다 같이 먹으려고 했지. 그럼 그렇게 하자. ”
막내는 말했다. 나랑 희경이는 물냉면을 하나 시켜서 둘이 나눠 먹었고 아빠는 비빔냉면을 드셨다. 나는 솔직히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는 뜻이다.
“이제 그만 가자.”
막내가 일어섰다. 엄마와 막내 둘 다 밥과 된장찌개를 절반 이상 남겼다. 나는
‘안돼는데...’
하면서 일어섰다. 나와 희경이를 제외한 가족이 다 일어섰다. 마음은 음식점에서 엄마가 남긴 된장찌개를 먹고 있는데(된장찌개의 두부도 다 남았다.) 몸은 아빠와 엄마, 막내를 따라 계산을 하고 음식점을 나서고 있었다. 내가 희경이에게 된장찌개랑 밥이 너무 아까웠다고 하니 희경이가 웃어넘겼다. 나는 아무한테도 이해받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혼자 터덜터덜 집에 들어왔다. 나는 아직 배가 차지 않았단 말이다!! 막내가 시키라는대로 3000원을 더 주고 된장찌개를 시키고 나도 밥을 하나 시켜서 먹고 했으면 천천히 아주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나왔을 것이다. 막내의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이쁜 막내 한테 3000원짜리 된장찌개 하나 못 시켜준단 말인가. 그런데 이게 또 돈을 아끼려고 하면 돈 밖에 안보인다는게 문제다. 그 때는 3000원이 나의 전부였다. 3000원이 300000원의처럼 보였는지도. 그 때는 그 3000원이 그렇게 크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남은 건 후회뿐.
지금 배가 고파서 야식인 맛밤과 우유를 먹으며 글을 쓰고 있다. 돈이 우정과 사랑을 대신 해 줄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정과 사랑이 돈 앞에 상처받는 일은 얼마나 또 흔한가. 그런 상처를 계속 받다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되버리기도 하지 않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한 돈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갈수록 더 단단하게 자리잡는다.
오늘 도서관에서 가서 책 7권을 빌려왔다. 김이나의 작사법, 오늘 뭐 먹지?(권여선 저),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저),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저), 여행의 이유(김영하)이렇게 빌렸다. 안녕 주정뱅이와 계속해보겠습니다는 큰 글자 책으로 빌렸다. 권여선 작가와 황정은 작가의 책은 야학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내가 아까워하는 건지 아끼는 건지를 잘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을 갖췄으면 좋겠다. 내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