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어렸을 때, 나는 꿈이 없는 아이였다. 아니, 꿈이 없다기보다 꿈이 너무 많은 아이였다. 청소부, 변호사, 교수... 어릴 때는 어른들이 가진 거의 모든 직업이 다 멋있게 보였다. 그래서 어른들이 네가 되고 싶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입맛대로 바꾸며 이런저런 직업들을 말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꿈이 바뀌는 꿈쟁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의 꿈이 곧 나의 꿈이었다. 부모님께서 엄선해 주신 나의 장래 희망 직업은 선생님, 외교관, 의사, 한의사였다.(학생생활기록부를 보고 알았다.)
태어나서부터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엄청난 양의 문학책들을 읽었다. 엄마가 문학전집 같은 것을 많이 사다 주셨다. 어린이 마을, 동물은 살아있다 같은 전집 세트도 재미있게 읽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엄마랑 같이 사온 글씨가 깨알만 하고 부피가 두꺼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2를 새벽까지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푹 빠져서 읽었다. 제인에어와 셰익스피어 4대 비극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독서 암흑기였다. 그때의 나에게는 독서보다 공부가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소설책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1등인 아이가 내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상실의 시대'를 읽는 것을 보았다. 그 친구는 '지', '덕', '체'인데 반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머리에도 안 들어오는 교과서와 문제집을 잡고 씨름이나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상위권학교의 의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최상위권의대로 가고 싶어서 반수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적응을 잘 못했다. 그 시기에 야한 영화를 참 많이 보았다. 남들은 미래를 준비하는데 나는 만사의욕이 없어 학점만 겨우 따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책을 보았는데 무려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란 책은 너무 위대하고 웃겼으며 호밀밭의 파수꾼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생긴 '책 취향'이었다. 그때부터 30살이 되기 바로 전까지 나의 꿈은 성인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대학교 때 많은 고전문학들을 보고 작가의 꿈을 키웠다. 나도 언젠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책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길은 바로 아동문학가였다. 그림책을 쓰다 보면 가끔 내가 문학가가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청년기 때 성인 문학을 쓰면서 느꼈던 심각함이 1도 없기 때문에.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이 작업이 너무나 즐겁다는 것이다. 글을 유려하게 쓰고 싶은 욕심도 접게 되고, 한마디로 폼(?)은 좀 안 날지언정 동심에 머무른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것이라는 걸 느낀다. 비유를 해보면 원래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를 하다가 진로를 틀어 병설유치원 선생님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 대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적성에 맞아서 대만족. 나는 동심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다. 그래도 나는 문학가다!
여태까지 그림책 써 놓은 것이 오랜 기간 출간이 안 되고 있다. (언젠가는 되겠지?) 그래서 에세이 쪽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몇몇 그림책작가들이 에세이 작가도 겸하고 있었다. 나는 고정순 작가의 팬인데 고정순 작가가 쓴 에세이는 다 읽어 보았다.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쓴 사노 요코도 에세이를 썼고 ‘파도야 놀자’의 이수지 작가도 에세이를 썼다. 이런 선례가 내가 에세이를 쓰는데 큰 용기를 주었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내 안에 있는 것을 많이 끄집어내고 싶다. 마음의 근력도 기르고.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좋다. 허락된다면, 계속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