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지. 난 죽은 아내를 자주 생각하지만 한 번에 많이는 생각할 수 없다네." 그때부터 "자주, 하지만 한 번에 조금씩, 불쌍한 아버지 스완 씨식으로"
프루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가 문득 생각나는 점이 있다. 왜 하필 조금씩 자주일까? 조금씩 하니까 자주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지? 나는 이 조금씩 자주라는 문구를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았다. 어떤 사람이 돈을 쓰는 패턴이 조금씩 자주라면 좋은 소비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란. 내가 나름 잘 살았을 당시에는 여기저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면서 돈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자주 소비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다지 잘 살지 못한 요즘의 소비를 들여다보면 조금씩 자주와는 반대되게, '많이씩 드물게 돈을 쓰고 있다'라는 것이다. 내가 부자는 아니기 때문에 정말 부자가 된다면 이러한 소견을 넘어선 소비에 관한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이유
나 자신부터 뒤돌아보자.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설사 그 사람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분명 당신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취향의 문제일 따름이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싫어할 수 있음을 상처받지 말고, 아프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