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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Dec 14. 2016

무당(巫堂)시대 지고, 무당(無黨)시대 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무당층

무당(無黨) : 신령을 섬겨 길흉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람
무당(巫堂)층 : 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 집단


국민의 주권을 되찾아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 오방낭 주머니를 등장시키고, '우주의 기운'과 같은 당혹스러운 화법을 사용해 국민들을 당혹케 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의문으로만 남을 뻔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영세교'와 연관된 일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권이 '신정정치', '샤머니즘', '제정일치'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마저도 색 배치가 엉망이어 액운이 꼈다는 후문이 있다_ⓒ중앙일보


선무당이 정권을 쥐고 흔든 '무당의 시대'였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은 종교와 민간에 의해 좌우됐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박관천 전 경정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은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 모였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촛불과 함께 날로 뜨거워졌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증가한 것과 달리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지지 정당이 없다'라고 밝힌 '무당층'이 24%에 달해 새누리당 지지자들보다 많았다. (12월 1주 차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조사기관 리얼미터)


12월 1주차 정당지지도 _ⓒ머니S


'무당' 일가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무참히 부숴버렸다. 국민들은 정부와 정당을 향하던 지지를 중단하고 주권자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민의 주권을 대리하는 대리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리고, 그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광화문, 헌법재판소, 새누리당 당사, 국민의당 당사, 김진태 의원 사무실 등 각지에서 탄핵을 요구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고, 탄핵안은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그들은 특정 정당의 지지자들이 아니었다.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시민들도,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들도 함께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쳤다. 무당의 시대는 그렇게 막이 내려졌다.


보수와 진보는 어디에 있나

'헌정 질서 유지'와 '국가 안보', '국민 안전'은 보수 진영의 핵심 가치다. 새누리당이 보수 대표 정당을 표명한다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 보장에 실패한 세월호 사건과, 헌정 질서를 유린한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을 묵인해서는 안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 편'이라고 하더라도 당 차원의 공정한 평가와 진상조사가 필요했다. 그게 진정한 보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감싸기에만 바빴고 이에 배신감을 느낀 '보수 지지층'들은 등을 돌렸다. 새누리당이 아닌, 보수의 가치를 지지한 자들에겐 당연한 순서였다. 


보수층마저 떠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17%까지 떨어졌다. 이 상황에 친박과 비박은 서로를 '배신자'라 부르며 당파 싸움마저 벌이기 시작했다. 비박은 친박 8인을 '최순실의 남자들'로 지목해 탈당을 요구했고, 친박은 심각한 명예훼손과 모욕을 당했다며 황영철 의원을 고소했다. 하지 친박과 비박 어느 쪽도 먼저 탈당하 않고 상대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다. 진짜 보수를 가려내기 위함이라 하지만, 500억대에 이르는 새누리당의 재산을 두고 벌이는 집안싸움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무성 전 대표는 “당 해체하면 모든 재산은 국고에 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_ⓒ서울경제


'촛불 민심',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던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혹은 '탄핵'을 요구했다. '야당의 차기 대선 당선'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조건 없는 하야/퇴진을 요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야당은 차기 대선에 불리할 것 같자 탄핵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끼리도 분열하며 탄핵안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대선 가능성을 계산하며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심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치는 결국 어느 정당이 더 많은 의석을 보유하느냐, 주요 관직을 누가 차지하는가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만으로는 이를 보장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집권 후 국민의 뜻을 반영한 정책을 반영하자니,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대통령제이며 사실상 양당제인 한국 정치의 오래된 문제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이제 지쳤다. 더 이상 기득권 정치 세력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지지 정당 없음'을 표명하기 시작한 건 결국 이 때문이다. 과정과 결과 모두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정치를 기대하기에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는 너무 견고해졌다. (巫堂)의 시대는 갔지만, 무당(無黨)의 시대가 열렸다.


기성 정치권에 투표하지 않겠다

일본에서는 '지지정당없슴당(支持政黨なし)'이라는 이름의 당이 7월에 열린 참의원 선거에서 64만7071표를 얻었다. 이 정당은 스스로 내세우는 정책 없이, 오직 인터넷을 통해 당원들의 여론을 모아 투표를 대리하는 역할만을 자처했다. 당선된 후보는 없었지만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세력에 표를 주지 않겠다는 의식이 시민 사이에서 싹트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지지정당없음'을 적으면 '지지정당없슴당'을 지지하게 된다_ⓒ경향신문


국회는 절대 국민의 뜻을 오해해선 안 된다. '지지정당이 없다'는 건 정치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진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표시다. 또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국회의원과 정당을 찾다 찾다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릇은 음식을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민심을 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이를 숨기려고 화려하고 멋있게 보이려고만 했다.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거라면서 이렇게 차린 게 많다고 자랑까지 했다. 하지만 온 국민이 그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며 내실은 하나도 없었다는 게 들통났다. 가짓수만 많고 보이기에만 화려했지 먹을 건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 국민을 속일 수 없다. 국민들은 어떤 재료를 썼는지 찾아보고, 직접 맛을 보고, 문제가 있으면 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회가 살 길은 차라리 조금 투박하고, 볼품없이 보여도 국민의 열망을 소박하게 잘 담아내는 거다.  그렇지 못한다면 어느 정당이든 파리만 날리다 문을 닫아야 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할 거다. 국회는 명심해야 한다. 이미 24%의 '무당층' 은 '이럴 바에 차라리 굶겠다'며 불매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 영세교는 무당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사용하는 무당이라는 표현 또한 '선무당'이 더 적절하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무당으로 표현했습니다. 수행과 고행을 통해 신을 모시는 무당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해를 돕기 위함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본문 중 사진 출처 (위부터 순서대로)


01. 「규방공예 전문가 "'최순실표 짝퉁 오방낭'때문에 액운 붙은듯"」,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0784391

02. 「[정당 지지율] 민주당, 당명 교체 이후 최고치 경신… 새누리당·국민의당 하락세」, monryS,

http://www.moneys.news/news/mwView.php?type=1&no=2016121214328088962&outlink=1

03.「김무성 "새누리당 재산은 재벌 등쳐 모은 돈..당 해체시 국고 귀속"」, 서울경제

 http://v.media.daum.net/v/20161213103722230

04.「일본 정계 흔든 ‘지지정당없음당’ 사기 논란」,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30939001&code=970203


* 참고자료


01.「최태민, 박근혜에게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채널A 돌직구쇼,

http://tv.ichannela.com/culture/strike/clipvod/3/0401/20161028/81053153/1

02. 「“최순실 측근, 취임식때 숭례문을 ‘오방색 천’으로 덮자며 압력”」, 동아일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0&aid=0003014645

03. 「朴대통령-최씨 부녀 연결고리 '종교?'…24년전 일기 보니」, 뉴스원,

http://news1.kr/articles/?2815952

04. 「[국회] 야 "박 대통령, 최씨 일가 사교에 씌인 건가?"」, JTBC,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42343

05.「[TV조선 단독] 최태민, 박근혜 영애 때부터 '국모' 주입」, TV조선,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1/09/2016110990240.html

06.「[정당 지지율] 민주당, 당명 교체 이후 최고치 경신… 새누리당·국민의당 하락세」, moneyS,

http://www.moneys.news/news/mwView.php?type=1&no=2016121214328088962&outlink=1

07.「일본 정계 흔든 ‘지지정당없음당’ 사기 논란」,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130939001&code=970203

08.「[유레카]'지지정당 없'당」,한겨레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52223.html

09.「새누리당 친박과 비박, 560억대 당 재산싸움 본격화」, 비즈니스포스트

http://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693

10.「새누리 ‘친박 vs 비박’ 왜 이렇게 싸우나 했더니… 알고보니 ‘1000억원’ 돈 싸움」, 팩트올

http://www.factoll.com/page/news_view.php?Num=3768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2802.html

11.「김무성 "새누리당 재산은 재벌 등쳐 모은 돈..당 해체시 국고 귀속"」, 서울경제

 http://v.media.daum.net/v/2016121310372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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