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지늉, 『멀리서 보면 푸른 봄』, 책들의 정원 , 2017
등장인물과 나를 동일시하며 읽었다. 가만히 있는 게 불안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과제를 하던 생산적 활동으로 채워 넣으려 하고, 아무도 믿지 않은 채 스스로 모든 걸 책임지려는 남수현에게 6할 정도. 웃는 모습,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여준에게 4할 정도.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다. 남수현과 여준은 성격 말고도 대비되는 게 많은 캐릭터다. 복학생인 남수현은 고학번, 여준은 신입생이다. 대학 내 위계질서를 고려한다면 남수현이 상위다. 하지만 박수현은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순직하고, 동생은 시험 준비 중이라 쉬지 않고 일을 해야만 한다.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한다. 반면 여준은 고급 원룸에서 부족한 것 없이 대학을 다니는 금수저 집안의 아들이다. 남수현이 권위적인 캐릭터가 아니기에 나이차, 학번 차는 금세 극복된다. 하지만 경제적 차이는 둘의 관계를 통해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이 둘이 친구가 되는 걸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요인으로 남는다. 지금까지는 너와 나의 소비가 다르기 때문에 삶이 다르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끼리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을 깨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최근 연재되고 있는 시즌3은 남수현이 집을 나간 이후의 내용이 전개된다. 연재 중인 작품이라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는 모르지만 감정선이 더욱 섬세해져서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 손가락에 꼽는 인생 웹툰.
+ 『그런 남자는 없다』 중 「브로맨스 vs ‘형제’ 로맨스 : 포스트 밀레니엄 남성은 친밀성을 꿈꾸는가」 파트에서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 언급된다. 남성의 신체를 부수고 찢는 방식이 아니라 의심, 계산, 가식 등의 감정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 친구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성애자 커플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점 등을 새로운 특징으로 꼽는다.
02.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편, 『그런 남자는 없다』, 오월의 봄, 2017
개꿀잼. 시기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글들이 묶여있다. 구술 서사를 비롯한 문학이나 영화,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남성성에 대한 접근이 특히 재미있다. 시기적으로는 식민지, 전후시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룬다. 뒤에서부터 읽는 걸 추천한다. 앞쪽에는 역사적 사실이나 개념들이 등장해 찾아가며 읽어야 할 부분들이 조금 있다. 뒤쪽이 시기적으로도 최근이고 디지털 세계와 같은 친숙한 소재를 통해 말하기 때문에 비교적 술술 잘 읽힌다. 다만 '그런 남자는 없다'는 제목이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남성성에 대한 허구를 지적한다는 의미임은 알겠지만 남성성에 대한 비판보단 분석에 가까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고 읽는 오월의 봄 질문의 책 시리즈.
+ 「우익 청년단체와 백색테러의 남성성」에서 지적하는 가톨릭과 남성성의 연관성은 『권력과 교회』와도 이어진다. 성기가 절단된 남성은 군대에 갈 자격이 없었다는 건 군대가 요구하는 '남성성'이 일그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생식능력과 군 복무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는 것인가.
03. 송경동,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 2016
송경동 시인이 세월호 추모 집회에 목발을 짚고 나타나 추모시를 낭송하다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버스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오마이뉴스 영상에 잡혔는데 시인을 잡아가는 국가권력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한 한 편의 시였다. 송경동은 거리의 시인이라 불린다. 책상보단 집회 현장에 마이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더 어울린다. 그는 희망버스를 기획했고,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원하다가 크레인에서 떨어져 발목이 부서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김수영의 표현이 꼭 맞다. 그의 존재와 그의 시는 나에게 감사한 일이다.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 혹은 외면한 세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시의 언어로 펼쳐낸다. 삶과 글이 하나가 되어 전해지는 울림은 시가 꼭 서정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음을 역설한다. 자기 자신과 국적을 넘어 세계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송경동의 시를 읽으며 나 또한 일상의 안락함에 중독돼버려 포기하지도 시도하지도 못하는 기득권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04. 송경동, 『꿈꾸는 자 잡혀간다』, 실천문학사, 2011
송경동의 산문집.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다. 시와 교차되는 내용들이 많다. 시적 화자가 사실상 송경동 본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철도노조 조합원이었던 장인어른, 노동운동에 몸담기 시작한 형제들의 이해, 연대가 있기에 그의 활동과 시가 이어질 수 있지 않은가 싶다.
05. 김진호, 『권력과 교회』, 창비, 2018
대한민국 건국에는 반공이라는 굵은 뿌리가 존재하는데 이 뿌리는 가톨릭이라는 잔가지를 뻗으며 동반 성장했다. 이승만 집권 시기 우리나라의 개신교 인구는 1퍼센트였다. 그런데 장차관 자리의 42퍼센트를 개신교도가 차지했다. 미군정 때는 처장의 46퍼센트, 민주의원에서 35퍼센트. 역대 국회의원 가운데서는 20퍼센트가 넘었다 한다. 반공국가를 필요로 한 세력들이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준 것이다. 공권력의 묵인 아래 공산주의에 강한 반발감을 가진 '서북청년단'이 백색테러에 동원하기도 했다. 14년 말쯤에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가 출범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군대에 가서 '진짜 사나이' '진짜 애국자'임을 보여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진짜 사나이들은 나이가 들자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다. 국가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가와 본인의 삶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좌절과 분노가 국가를 향할 일은 없다. 애국에 몸 바친 청춘을 무시한다며 사회적 약자들에게 분노를 내뿜을 뿐이다.
이들에게 태극기 집회는 반공 사상을 공유할 수 있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공간이자, 사회적으로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최후의 공동체이다. 이들을 단순히 보수라고 분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명박은 버리고 박근혜만을 취하는데 박근혜를 박정희의 분신이자 자신들의 메시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승만, 미군정 시기의 부활 그러니깐 가톨릭과 반공의 부활을 꾀한다. 그것이 진짜 애국이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에 이용당한 뒤 철저히 버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돈을 지원받아 나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발적으로 집회에 나서는 이유다. 이들은 이스라엘 국기와 성조기를 손에 쥐고 힘차게 흔든다. 삼성 로고도 박혀있다. 반공-가톨릭의 부활을 진심으로 꿈꾼다면 그다지 어색한 조합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을 배척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시에 혐오와 폭력이 아스팔트 위에서 춤을 추는 동안 이를 방조하고 더 나아가 이용하려 했던 세력들은 반성해야 한다. 특히 주요직을 세습하고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한 '일부' 교회들. 건국 이후 지속적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본인들의 이득을 위해 내부 개혁에는 눈 돌리고 정치에 개입했던 이들. 성서에서는 우리 몸이 곧 성소라는데 건물은 그만 키우시지요.
-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고린도전서」 6장 20절) *p.196에서 인용
06. 홍세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창비, 1995
'똘레랑스'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책. 당시에는 정치적 문제로 육체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홍세화가 있었다면, 현재는 대학의 자본화, 기업화로 대학 시간강사를 포기하고 맥도널드 알바, 대리운전기사가 된 김민섭이 있다. 둘 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일하게 된 인텔리라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답게 경험을 책으로 풀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있었는데 2016년 나온 김민섭의 『대리사회』 뒷표지를 보니 홍세화의 추천사가 있다. 역시. 홍세화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세계평화의 준말이라 한다. 2013년 <말과활>을 창간했다. 창간호부터 6호까지는 말과활 홈페이지에서 이북으로 제공 중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07. 하승우, 『희망과 사회 윤리 똘레랑스』, 책세상, 2003
똘레랑스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어째 하승우 씨를 자주 만난다.
08. 한성우, 『노래의 언어』, 어크로스, 2018
노랫말에서 우리말의 가치를 찾기 위한 시도. 책에서는 근 100여 년 동안의 대중가요 26,000여 곡을 분석하고 있다. 덕분에 형태소 분석기의 존재도 알았다. 하지만 분석의 노고와는 달리 재미는 없다. 노랫말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는 이야기들이다. 분석이 기존 논의에 근거를 보충하고는 있지만 새로운 해석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노래가 된 김소월의 시, 금지곡, 노래에 담긴 시대상 등은 이미 자주 논의된 주제다. 노랫말을 형태소나 단어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는 것 자체가 효과적인 지도 의문이 든다. 분석이 활용된 내용도 많지 않다. 국문/한국어문학전공 교수가 모국어 노랫말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실망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