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정리

8월 첫째 주 독서정리

by 광호

01. 나쓰메 소세키,『도련님』, 유미진 옮김, 디자인이음, 2018

20대 초반. 시골 학교에 첫 부임받은 도쿄 토박이에게 벌어지는 일들.

02. 김종갑,『혐오-감정의 정치학』, 은행나무, 2017
'개고기 혐오'에서의 '혐오'와 '여성혐오'의 '혐오'는 다른 단어다. 필자는 미소지니가 혐오로 번역된 것이 적절치 않았음을 지적하나, 미소지니는 사회현상에 가깝기 때문에 완벽하게 대응되는 단어가 한국어에 존재할 수 없음을 함께 언급한다. 애초에 '혐오'라는 번역은 전략적, 정치적 선택이었다. 온건한 표현으로는 사회의 주목조차 받지 못하다가 혐오라는 표현이 화두가 된다. 그러자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마치 동등한 것처럼 대립 구도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혐오라는 단어의 차이를 안다면 남성혐오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18년 7월 24일 방영된 <MBC 100분토론 790회 - 「남혐 vs 여혐...대한민국을 흔드는 위험한 이분법」> 에서 이택광 교수도 '남혐, 미소지니의 반대말은 사실 없어요'라고 말한다. (42분 50초 이후) 그러나 아직까지도 두 '혐오'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진행자인 김지윤 박사가 바로 '남혐이라는 용어가 있었던 거 같은데요.' 라고 이어받은 것만 봐도 그렇다. '백래시로 만들어낸 말'이라는 이택광 교수의 답변이 있었으니 다행. 이전까지는 혐오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이니 수정해서 사용해야 한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표현에 대한 지적이 논의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사와 공부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의 핑곗거리가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가 발전해야 미소지니도 개선된다는 말에 십분 동의한다.

03. 이민경,『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봄알람, 2016
과제로 조선시대 여성의 삶을 조사한 적이 있다. <여학교 설시 통문>을 발표한 찬양회가 만들어졌다는 종로 및 한옥마을 근처로 가보았다. 찬양회는 1899년 느릿골에 설립되었다고 하나 현재는 느릿골이라는 명칭도 남아있지 않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김수영 전집 2 산문』 편에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대문 안의 동아골이라는 골목에 있었고, 서쪽으로 올라오면서 한 50미터가량 떨어진 다음 골목이 양사골, 그다음에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다음 골목이 느릿골이고, (후략)’라는 언급을 찾았다. 김수영 생가 터 표석은 종각역 출구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니 현재의 종각역, 탑골공원 근처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어의동(현재의 효제동)이라고도 했다. 혹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북촌 내 안내센터에 찬양회와 관련된 유적지 등을 문의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찬양회가 무엇이죠?’라는 대답이었다. 물론 관련 정보를 검색해가며 친절히 대답해주셨으나 미리 조사한 내용 이상의 것을 얻지는 못하였다. 뒤편에 있는 교육박물관은 아쉽게도 휴관 중이어 도움을 얻지 못하였다. 기록되어 남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이 책은 잊혀진 여성들의 역사와 계보를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04. 은유,『쓰기의 말들』, 유유, 2017
펜을 잘 휘두른다고 '잘 쓴다'고 할 수 있을까. 펜도 칼과 같아서 끝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기쁨과 위로를 전달할 수도, 상처를 입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데. 글을 잘 쓰려면 좋은 글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연스레 글을 잘 쓰게 되지 않을까. 라는 고민에 힌트를 준 책. '맛깔나게 쓰는 비법' 같은 노하우는 없지만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글의 힘을 마주할 수 있다. 작가의 삶과 글을 엿보다 보면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는 부제를 느낄 수 있다. 어떤 글이던 사람과 사회를 위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죽비로 내려치듯 명료하면서 따뜻한 자극.

05. 은유,『글쓰기의 최전선』, 유유, 2015
글로 벌어먹고 살 생각은 실수로라도 하지 말아야지.

06. 서중석,『6월 항쟁』, 돌배개, 2011
6월이 가기 전에 다 읽으려 했지만 벌써 8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했던 역사. 그리고 방대한 분량. 책꽂이에 꽂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읽어야겠다. 한 번에 완독은 절대 불가.

07. 김희경,『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7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죽인 후 자살한 부모의 행동을 '동반자살' 혹은 '일가족 집단자살'이라고 표현한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자신을 죽였을 뿐이다. 자녀가 죽을 의도가 있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 맞다. 사실 자녀를 살해한 부모만을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크게 두 가지이다.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가족과 같은 혈연 혹은 학연 지연 관계에 의존하는 것. 하지만 전자를 택하면 노오-력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향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그리고 사회가 변한다는 보장도 없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한다. 동시에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이 전적으로 본인의 탓이라는 논리를 내면화한다. 그러나 혼자 남겨질 자식을 케어해줄 공동체는 상실된지 오래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식마저 책임지지 못했다는 자책이 자살하기 전 자녀를 살해하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지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구조가 함께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08.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혁명이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혁명의 전망 없이 어떻게 진보적으로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작가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김승섭 작가는 사회적 약자들을 연구한다. 폭염 앞의 재난 불평등, 낙태 금지로 인해 벌어질 일들, 해고노동자 건강 등. 전공의 근무환경을 조사한 파트에서는 한쪽 눈에 시력을 거의 잃고, 세월호 현장에서는 어깨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도 응급헬기를 오르내리는 이국종 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의사가 건강하지 못하면 진료를 받는 환자도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국종 교수 또한 김승섭 작가처럼 세상이 바뀔 거라는 기대를 쉽사리 하지 않는다. 국민 청원으로 중증외상센터에 지원이 확정되었을 때도 '곧 이러다 말 것'이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인터뷰를 하다가도, 광고를 찍다가도 환자가 들어오면 지체 없이 뛰어나간다. 야간에는 비행 중 사고가 나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소방헬기에라도 탈 수 있지만 환자에게 향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해가 가지 않아 졸린 눈 비벼가며 이국종 교수가 나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김승섭의 책을 반복해 읽었다. 이상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현실에 발 디디고 살아가야 함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책은 읽기 편하다. 대중을 겨냥하고 쓴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어려운 전문용어나 의학용어는 최대한 피하고 있다. '~요.'체를 쓰고 있어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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