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정리

8월 마지막 주 독서정리

by 광호

8월 마지막 주 독서정리


1.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16

<송곳 7화>를 보며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났던 날이 떠올랐다. 이제 어떻게 살지 싶기도 했지만,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이 지옥에서 누군가는 탈출해야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당시에 그랬던 건지 지금의 기억인지 정확힌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날 새벽 어머니께서는 집으로 돌아오실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좀 들어 들은 이야기로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 마음이셨다 했다. 하지만 집을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새벽까지 공원에 앉아있는데 연락할 곳도 돈도 없었다. 갈 곳도, 갈 방법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이 글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적인 수익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사람답게 살려면, 최소한의 돈과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 다음은 <송곳 7화> 에서 이 과장의 차를 타고 경찰서로 가는 도중 한여사가 독백조로 남긴 말.


"내가 친정이 없어요. 어려서 부모님들 다 돌아가셔갔고. 그래서 결혼 빨리 했지. 남편이란 작자가 만날 돈 벌 궁리만 하고 돈을 갔다 줘야 말이지. 그래서 만날 싸우고. 근데 싸워도 짐 싸들고 갈 친정은 없고. 푸르미 들어오니깐 살겠더라구요. 남편 욕 들어줄 언니들도 있고. 나 따르는 동생들도 있고. 돈도 벌고. 첫 월급 타서 봉투째 들고 짜장면집 가서 짜장면 시켜먹는데. 이게 꼭 울 아버지가 사주시는 거 같은 거야. 영실아 수고했다. 장하다. 장하다. 나한테는 친정이에요. 푸르미가."

2.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김소영 옮김, 더스토리, 2017

누가 내 이야기를 써놨어.


3. 한은형, 『거짓말』, 한겨레출판, 2015

업적을 이루고 젊은 나이에 자살한 천재들이 있다. 그들이 남긴 글이나 음악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난다. 어떻게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미 그들이 생을 마감한 나이를 넘어버렸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그들에 비하면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건 너무나 하찮다. 주인공 세연도 마찬가지다. 언니는 이미 죽었다. 자신이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자살을 수집하고 연구한다. 컴퓨터에는 '자살 수집가'폴더가 있다. 언젠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나 또한 류노스케를, 다자이 오사무를, 버즈니아 울프를 읽으며 무언가를 찾았다. 나의 것이어야 할 관심과 사랑을 그들이 가져가 버렸다고 하면 지나칠까. 세연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죽어서라도 사랑이라는 걸 듬뿍 받고 싶었(p.183)"는지도 모르겠다. 세연이 "내가 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즉 부모의 관심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죽는 것이 유일했다. 언니보다 더 일찍. 그리고 더 애절하게”(p.184)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4.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

청년들의 연쇄 자살을 통해 사회에 타격을 주자는 매력적인 제안. 무엇을 해도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모든 가능성이 제거된 사회. 표백,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 이 사회엔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큰 업적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기회도 없다. 성공신화는 극소수에 불과한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꾸며진 이야기다. 비슷한 시스템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지 않도록 한다. 실패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고 낙오된 개인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방법은 단 하나다. 청년들의 연쇄 자살.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소비하며 미래의 주축이 될 개체들의 소멸.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가장 완벽한 순간에. 경제적 문제라던가 취업 문제로 자살했다는 국가와 사회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 순간에만 자살이 허용된다.


5.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문학동네, 2010 (초판 1996)

조력자살에 관한 이야기. 주인공은 누군가의 인터뷰나 글, 행동 등을 보고 자신의 고객이 될 사람을 찾는다. 인간의 목숨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치 신의 영역인 것처럼 묘사된다. 하지만 내 눈엔 '조력자살 서비스'를 제공하는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 보인다. 인간을 초월한 통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을 요하지도 않는다. 자살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해주고 최소한의 뒤처리를 해 줄 뿐이다. 벌이도 쏠쏠하고 진상도 거의 없는 괜찮은 사업 아이템에 신비로움까지 부여했으니 96년도에는 굉장히 힙한 소설이었을 듯.


6. 토머스 조이너,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 지여울 역, 베이직북스, 2011

자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자살 사망자에 대한 이해를 방해한다. 며칠 뒤 누군가를 만날 약속도 잡아뒀고 예약해둔 것도 있다. 그러니 자살 일리가 없다. 타살 일지 모른다. 이런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살자라고 해서 오직 죽음만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죽음의 욕망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도 삶에 대한 욕구가 지속될 수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 자료실의 <누가 유서를 남기나>항목에 따르면 2,936건의 자살 중 유서를 남긴 사람은 18.25%에 불과했다고 한다.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뒤르켐의 『자살론』 또한 현실과 맞지 않거나 과한 해석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자살은 충동적으로 행해진다'는 것인데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 실제 사례와 연구를 통해 반박한다. 많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이 책 안에서 저자의 주장을 검토하긴 어렵다. 추가 자료를 찾아볼 필요성이 있다. 우리나라 책이 아님에도 우리나라 사례가 여러 번 언급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7. 에밀 뒤르켐, 『자살론』, 황보종우 역, 청아출판사, 2008

뒤르켐은 자살은 사회현상임을 주장한다. 외국 저서이고 시기도 오래되었다 보니 지금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과 숙명적 자살 등의 구분은 수정 혹은 보완을 거치며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니 지루하더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 고 해도 꼼꼼히는 못 읽겠다.


8. 서종한, 『심리부검』, 학고재, 2015

부검은 크게 물리적 부검과 심리적 부검으로 나뉜다. 자살 사망자의 경우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물리적 부검을 실시한다. 반면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의 심리상태를 파악해 원인을 분석한다. 이미 사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없으니 유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을 통해 심리부검이 이루어진다. 이를 데이터로 하여 자살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 더 나아가 주변인들의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건강한 애도를 돕는다. 한국에도 심리부검센터가 있다. 3개월 이후, 3년 이전에 상담받기를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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